○ 재판장 대법원장
지금부터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오늘 선고할 사건은 2건입니다. 민사사건을 먼저 선고하고 이어서 형사사건 판결을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다232918 청구이의의 소
원고, 피상고인 ○○○ 씨. 피고, 상고인 ◇◇◇ 씨.
이유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93년경 피고에 대해 채무를 지고 있던 원고의 아버지가 사망하여, 원고의 어머니와 미성년인 원고가 채무를 공동으로 상속하였습니다. 피고는 1993년과 2003년 두 차례 원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는데, 당시 원고의 어머니가 친권자로서 원고를 대리하였습니다. 원고가 성년에 이른 다음인 2013년에도 피고는 원고를 상대로 공시송달로 승소 판결을 받았고, 2017년 원고의 예금채권에 대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에 원고는 곧바로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하고 위 판결에 대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제1심은 원고의 특별한정승인이 유효하다고 보아 청구이의를 인용하였고, 원심은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심 판결에 대해 피고가 상고하였습니다.
상고심의 주요 쟁점은, 원고가 성년에 이르러 한 특별한정승인이 유효한지 여부입니다. 상속인이 미성년인 동안에는 법정대리인이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의 제척기간이 지나면 특별한정승인이 불가능합니다. 이때 상속인이 성년에 이른 다음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자신이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지 문제됩니다. 결론적으로,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더라도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다수의견입니다.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리행위는 본인이 행위한 것과 같이 직접 본인에 대해 효력이 생깁니다. 2002년 신설된 특별한정승인의 적용 기준 시점인 1998. 5. 27. 전에 법정대리인이 이미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아 특별한정승인이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특별한정승인 규정이 적용되더라도 3개월의 제척기간이 지나 법정대리인이 더 이상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면, 그 효력은 상속인 본인에게 직접 미칩니다. 그 상속인에 대하여 단순승인의 법률관계가 그대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상속인이 성년에 이른 다음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하여 기존의 법률관계를 번복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대리의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반합니다. 제척기간은 법률이 정한 권리 행사기간으로 제척기간이 지나면 권리가 소멸됩니다. 상속인이 당초 미성년자였다는 이유로,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었던 제척기간이 지난 다음 성년에 이르면 다시 새로운 제척기간을 부여받아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법률관계를 조기에 확정하기 위한 제척기간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고 법률의 체계에도 반합니다. 법정대리인이 착오나 무지로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미성년 상속인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하여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입법론으로 바람직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현행 민법상 특별한정승인에 관한 법정대리의 경우만을 예외적으로 취급할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이 이러한 특별한정승인을 허용하면, 현행 민법에서 정하지 않는 새로운 특별한정승인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법률의 근거 없이 상속인이 미성년인 동안 법정대리로 생긴 기존의 효과를 무시하게 될 뿐만 아니라 법적 안정성과 형평에도 반합니다.
이상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의 결론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상속 개시 당시 원고는 미성년자였으므로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 등을 판단할 때에는 법정대리인인 원고의 어머니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원고의 어머니는 피고가 소를 제기하여 승소한 1993년과 2003년경에는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원고의 어머니가 1993년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았다면 원고에게는 특별한정승인 규정이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소송인 2003년경 비로소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았더라도 이미 3개월의 제척기간이 지났습니다. 따라서 원고가 2017년에 한 특별한정승인 신고는 어느 모로 보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의 특별한정승인이 유효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이의를 인용한 제1심판결을 정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특별한정승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습니다.
이상의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민유숙,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의 반대의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이동원의 보충의견과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그중 반대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러 채무초과 사실을 알고 특별한정승인을 하려고 해도 이미 제척기간이 지나 상속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 등과 달리 미성년자를 보호할 다른 제도도 없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상속인의 자기결정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정승인 제도의 입법취지에 어긋나고,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인 상속인을 위해 특별한정승인을 하지 않고 제척기간을 지난 데 대해 상속인 본인에게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따라서 ‘상속인이 중대한 과실 없이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경우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는 민법 제1019조 제3항의 문언에 따라, 상속인이 성인이 되면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별한정승인은 단순승인 효력을 사후적으로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법정대리인이 특별한정승인 제척기간을 지나 단순승인의 효력이 유지된 경우에도, 상속인이 스스로 특별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법의 문언에 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상속채권자는 거래 당시 피상속인의 신용과 재산 상태를 고려하여 법률관계를 맺습니다. 미성년 상속인이 성년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여 얻은 재산에 대해서까지 상속채권자가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별한정승인 관련 규정은 특별한정승인 전에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하거나 상속채권을 변제한 경우 그것이 모두 유효함을 전제로 이해관계를 조정합니다. 따라서 특별한정승인을 인정한다고 하여 거래의 안전을 해할 우려도 없습니다. 따라서 상속인이 미성년인 동안 법정대리인이 제척기간 도과 등으로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더라도,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면 본인 스스로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수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11.19.(목) 아래 사건의 판결선고를 실시하였습니다. 본 동영상은 이 사건의 판결선고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입니다.
▶ 대법원 2019다232918 청구이의의 소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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