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1] 일야삼탈구기

일야삼탈구기 

 

일야삼탈구기

 

글. 함현지 판사(대전지방법원)

 

고통은 존재를 증명한다. 맹장이 아프기 전까지 우리는 맹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산다. 코가 막히기 전까지는 숨 쉬는 행복을 모른다. 내 팔은 어젯밤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다. 마치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처럼. 다음 주에 선고할 판결문 초고도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쟁점이 있는 한 사건을 빼놓고는 다 완성하였고, 테니스장에서는 탑스핀이 왕창 걸린 강력한 포핸드를 팡팡 쳐댔다. 졸업논문도 거의 논문같이 생긴 외관을 갖춰 가고 있었다. 그리고도 체력이 남아서 체육관에 나갔고...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으로 땅을 짚었는데(원래 이러면 안 된다. 손목이나 쇄골 나가기 딱 좋다),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왔다. 엄살 안 부리는 편인데, 순간적으로 “으으으윽!”하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관장님이 갖다 준 얼음팩을 어깨에 끼고 있었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해졌다.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어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나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임시 팔걸이에 팔을 걸고 가려고 했지만 팔이 몸 안쪽으로 접혀지지 않아서, 멀쩡한 왼쪽 손으로 오른쪽 팔을 ‘들고’ 갔다.

접수표를 뽑는 동안에도 통증이 계속해서 강해졌다. 통증과 팔 움직이는 각도를 봤을 때, 인대 손상은 100%이고 운수 나쁘면 파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파열이면 수술해야 하는데. 완성하지 못한 내 판결문, 완성하지 않은 내 논문은 어쩌나. 휴직해야 하나, 우리 법원은 판사도 부족한데. 아니 그 전에 내일 재판인데 어쩌지. 대직을 구해놔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어깨가 완전히 빠졌네요. 한번 맞춰봅시다. 안 되면 큰 병원 가셔야 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차라리 구원 같았다. 아, 탈골인가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수술은 안 해도 되겠네요. 침대에 누울 때도 각도가 안 나와서 끙끙거리며 누웠다. 의사 선생님이 이리저리 팔을 돌리는데 상당히 편해진다. 그러다가 혼자서 못 하시겠다며 “팔 잡고 계세요”라며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러 간다. 두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만 고통스러웠다. 잠깐 안 아픈 행복을 맛봤었는데. 선생님 살려주세요! 두 분의 콤비플레이로 우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맞춰졌다. 신기하게 한 방에 통증이 사라진다.
계산하고, 약 받고,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화 받고 온 남편이 도착했을 땐 이미 팔을 맞춰 놓은 터라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운동할 때 좀 조심하라는 타박을 받고, 집에 가서 조심스럽게 샤워를 했다. 오른쪽 손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땀이 많이 났던 터라, 못 씻고 잘 걱정도 했었는데 잘 씻으니 너무 좋았다. 그리고 행복하게 새로 꺼내놓은 티셔츠로 갈아입으려고 팔을 들다가 오른쪽 어깨에서 다시 끔찍한 통증이 찾아왔다. 으으으윽!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놀라서 뛰어온다. 내 팔 좀 받쳐줘요... 부축 받고 안방으로 가 바닥에 앉았지만 통증이 심해진다. 어깨를 만져 보니 역시 어깨 관절과 팔뼈가 딱 붙어있지 않고 서로 간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정도로 떨어져 있다.

어깨 또 빠진 것 같아. 병원 가자. 119를 부를까 했지만, 팔걸이와 남편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는 데 성공했기에 남편의 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고통이 아까보다 심하다.
“아니 왜 또 오셨어요!” “팔이 또 빠졌어요. 옷 갈아입다가.” “벗을 때는 안 다친 팔부터, 입을 때는 다친 팔부터 입으셔야 하는데...” “흑흑 그거 좀 일찍 가르쳐주시지...” “아 그런데 외과 선생님이 퇴근하셨어요. 내과 선생님은 계시는데 못 하시겠대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흑흑 그것도 좀 일찍 가르쳐 주시지…
충남대병원 응급실로 가는 길은 지극히 고통스러웠다. 어깨는 불이 붙은 것 같았고, 최대한 안 아픈 각도를 찾아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팔을 팔걸이로 감아서 잡고 있었는데, 손에서 계속 식은땀이 났다. 입술을 깨물면서 참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입술 안쪽이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 가는 길에 웬 고양이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드는 바람에 차가 급정거를 했는데, 끼이이익 소리와 함께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으아악!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면서 나는 운명을 예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기준으로 나는 전혀 응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죽느냐 사느냐지, 고통스럽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다. 주관적으로 나는 엄청나게 고통스럽지만 탈구 상태로 몇 시간 더 있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접수하고 이름과 나이가 적힌 종이 팔찌를 끼고, 응급실 직원분들이 시키는 대로 혈압을 쟀다. “혈압 꼭 재야 하나요. 저 오른쪽 어깨 탈구인데…” “왼쪽도 탈구된 거 아니면 재두세요. 이거 안 재면 절차 진행 안돼요.”
입구에서 준 휠체어에 앉은 채로 남편한테 밀려갔다. ‘아, 아무리 그래도 휠체어 타는 건 오버 아닌가요’라는 생각은 몇 분도 안 돼 사라졌다. 고통이 계속 심해져 갔다. 경환자 분류구역으로 밀려가면서 많은 것을 보았다. 환자를 데리고 온 119 대원들, 뭘 싸오셨는지 큼직한 보따리를 들고 있는 할머니, 울부짖는 어린애를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 여러분 이 밤중에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네, 저도 아픕니다. 하지만 잘 참아볼게요. 전 죽을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으니까요.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물도 안 돼요.” ‘예 알겠습니다. 근데 전 어깨 빠진 거예요.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아까 저녁 때 맞췄는데 다시 빠진 거예요. 다른 병이 아닌데 믿고 처치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응급실에서 자기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환자는 되기가 싫어서.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소변컵이 나왔을 때는 넋이라도 있고 없고였다. 지금 왼쪽 팔로 오른쪽 손 잡고 있어야 해서 소변 받아오기 힘든데요.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세요? 하더니 채뇨관을 준비한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소변컵 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대체 의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저녁 때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순식간에 어깨를 맞췄던 추억이 잊히지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 남편에게 핸드폰을 받아서 재미있는 유머글이라도 읽어볼까 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쯤 오시나요. 벌써 새벽 한시가 넘었단 말이에요. 식은땀을 흘리면서 휠체어 안에 거의 무너져가던 중, 파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인턴이든, 레지든, 그분들을 뭐라고 부르든 오늘 나에게는 모두 의느님들이시다.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파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간이침대에 눕고, 팔을 이리저리 돌리자 좀 편해졌지만, 맞춰지지는 않았다. 도움을 받아야겠다며 다른 분들을 부르러 가신다. 아,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아. 완전 데자뷰네. 그 와중에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이 처치 끝났으면 이 침대를 써야 하니까 비키라고 하신다. 저 처치 안 끝났어요…
파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 몇 분과 하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탈골이 처음이세요?” “네 오늘 처음이에요. 아 굳이 말하자면 오늘 두 번째인데... 저녁 때 맞췄는데 옷 갈아입다가 다시 빠졌어요.” “어 진통제 없네. 진통제 투약하세요. 이거 골절 아니라고 안 아픈 거 아니에요. 엄청 아픈 거예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친구라고 한다면, 오늘 나는 저 의사 선생님의 평생의 친구가 되련다. 제 고통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진짜 아파요.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다시 빠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처치를 기다리면서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링거 바늘이 꽂히고 수액과 진통제가 링거줄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왔다.

탈골 하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팔을 몇 번 돌리자 우두둑! 하고 순식간에 고통이 줄어든다. 처음 팔 맞췄을 때처럼 기적적0이진 않았다. 아마 붓기도 더 붓고 인대도 좀 더 늘어났겠지.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내가 맞췄지롱~.” 정말 저 대사를 남기고, 하얀 옷을 입은 오늘밤의 내 친구는 어딘가로 쌩하니 사라졌다. 사람 많이 살려주세요. 정말 좋은 일 하셨습니다.
엑스레이 한 번 더 찍고 잘 맞춰졌는지 보고, 진통제 다 넣고 가라고 하신다. 예예, 마땅히 그래야지요. 한층 평온해진 마음으로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얼굴이 하얘진 소년이 아버지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탈의실로 들어가 환자복으로 환복한다. 아까 보따리 들고 있던 할머니도 저 쪽에 앉아 계신다. 몇 대의 이동 침대가 엑스레이실로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
그리고 나도 엑스레이를 찍으러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까보다는 제 상태가 한층 좋죠. 처음 찍을 때는 못 했던 허리 쭉 편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방사선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몸을 움직이다, 아픈 자세에 이르렀다. “팔 이렇게 들어보세요.” “아 저 이거 좀 자신 없는데요. 아픈데요.” “찍으셔야 돼요.” 방사선사 선생님이 내 팔을 잡아 위로 올리는 순간, 파국. 우두두둑!! 아아아악!!

세 번째 탈골이었다. 지금까지 눈물을 잘 참아왔는데, 여기서 정말 억울해서 울 뻔했다. 선생님, 저 어깨 또 빠진 것 같아요. 오래오래 참다가 이제 맞췄는데요. 또 오래오래 참아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미워요... 다시 휠체어 안에 구겨져 한쪽 팔을 잡고 고통 속으로 들어갔다. 와 이건 진짜 너무 아파요. 첫 번째는 사고였고, 두 번째는 무지로 인한 제 불찰인데, 세 번째는 뭔가. 이건 진짜 너무 억울하지 않나. 어딘가에서 ‘누가 탈골 환자 팔을 올려서 찍어!’라고 혼내는 소리가 들린다.
송곳니에 닿는 아랫입술이 부어오를 때쯤 다시 파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타나서 내 팔을 돌렸다. “팔이 또 빠지셨다고요.” 이번에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처치를 했다. “힘 빼세요. 힘 빼야 맞출 수 있어요.” 그래 이 팔은 내 팔이 아니다. 우두두둑. 으으으윽!! 내 팔이 어떻게 나 자신이 아닐 수가 있어! 응급실 복도에서 정말 아픈 티 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워낙 오픈된 곳이라 온갖 환자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이번에는 뼈를 맞춰도 완전히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자꾸 탈골되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외래진료 예약하고 가세요.” 아니 그런데 저 정말 탈골된 거 오늘이 처음이에요. 습관성 탈골이라고 확진하시긴 일러요. 그리고 그중에 한 번은 제 팔 잡아당기신 건데요.
진통제 한 팩을 다 맞고 집에 오니 세 시가 넘었다. 엄청나게 피곤해서 바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어깨가 아프고, 팔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몇 시간 동안 겪은 격통이 몸의 아드레날린이란 아드레날린은 다 일깨운 것 같다. 내일 병가를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재판기일이고, 내가 수명법관으로 심문하는 심문 기일도 넣어놨고, 무엇보다 당일 새벽 세 시에 아침부터 대직으로 들어가 줄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 팔걸이를 하고 출근했다. 한 손으로는 법복을 입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붓기 때문에 팔이 목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팔 올릴 엄두도 안 난다. 이것은 네 번째 탈골을 막기 위한 진화의 산물일까? 옆 방 판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아 타이를 매고 법복을 입었다. “판사님 저 좀 도와주세요...” “어멋 판사님!” 앞으로 저 판사님이 법조생활을 하시며 옷 입혀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을 또 만나실 일은 없겠지? 재판하다가 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젯밤 세 번이나 뺐다 끼웠다를 반복한 조립식 어깨가 계속 고통과 아드레날린을 공급해주는 덕분에 그런 일은 없었다. 고통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지독하게 실존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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