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와 잉여로운 삶 - 일과 놀이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잉여와 잉여로운 삶 - 일과 놀이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최근 젊은 세대에서 쓰이는 ‘잉여’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다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으로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을 낮게 지칭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의미와는 달리 잉여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잉여롭다’는 표현에는 어딘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잉여와 잉여로움. 그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 것일까.    

  

오디션 무대 위에 선 청춘들

최근 종영한 <쇼 미 더 머니> 시즌5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확실히 요즘 청춘들에게 ‘돈을 번다’는 건 내놓고 추구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이고 또 당당한 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도끼 같은 래퍼는 <나 혼자 산다>나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가를 공공연히 밝히고 자랑한다. 과거 같으면 이런 이야기는 위화감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정한 일로 번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 번 돈을 제 맘대로 쓰는 도끼의 행적에 대해 대중들은 오히려 찬사를 보낸다. 그럴만하다고 긍정하는 것. 하긴 프로그램의 제목 자체가 <쇼 미 더 머니>다. 그러니 돈 벌러 나왔다고 말하는 참가자들의 솔직함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미덕이 된다. 이들이 이렇게 돈 이야기에 당당해지는 이유는 그저 욕망 때문만이 아니다. 음악이 전부일 수 있는 가수들은 때로는 그 음악이 비생산적일 때(돈을 벌어주지 못할 때) 잉여로 치부되기도 한다. 오디션 무대는 다름 아닌 현실의 축소판이고, 그 음악이 생산적인가 비생산적인가를 당락으로 결정한다. 자신이 하는 음악이 잉여가 아닌 생산적이므로 증명하는 잔인한 시간.

 

하지만 음악 자체가 잉여의 산물

하지만 그 유명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우리에게 일찍부터 알려주었듯 음악이란 본질적으로 ‘잉여’의 산물이다. 개미 모두가 일할 때 음악을 하는 베짱이는 그래서 게으른 잉여적 존재가 된다. 음악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이처럼 생산성과는 상관없는 행위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물론 이 잉여적 행위가 의외로 엄청난 돈을 벌어주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본질적으로 잉여적인 속성을 가진 음악을 오디션이라는 틀에 집어넣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그 경쟁의 틀은 음악이 본래 잉여적 산물이라는 걸 살짝 지워버리고 대신 살아남아야 잉여가 되지 않는다는 강박을 심어놓는다.
하지만 어디 음악이라는 예술이 순위가 매겨질 수 있을까. 그저 다양한 저마다의 가치와 개성이 있을 뿐이다. 이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스펙의 차이가 얼마나 나든 상관없이 누구나 저마다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생산성과 경쟁력이라는 심사기준으로 우리는 여전히 잉여인가 아닌가가 판단된다.

 

 잉여와 잉여로운 삶 

 

니체적 관점으로 보면 잉여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잉여는 어떤 기준점이나 중심점을 세워뒀을 때 그 자투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다. 하지만 애초에 기준과 중심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잉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뀔 수 있다. 기성사회가 세워놓은 성공의 시스템과 기준점들이 있기 때문에 잉여라 치부되는 것이다.
하나의 진리와 참을 추구하는 서양 철학의 전통은 잉여가 탄생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하나를 유일한 참(진실)으로 세우고 나면 나머지는 거짓(허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잉여다. 하지만 이런 서양 철학의 전통을 전복시킨 철학자가 니체다. 니체는 이데아 같은 하나의 진리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길’이 있음을 설파한다. 즉 하나를 중심으로 세우는 관점이 아닌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시각과 길들이 있음을 다양성 관점으로 얘기했던 것. 그의 관점으로 보면 길을 벗어나는 건 또 다른 길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니체에게 잉여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취해야 할 것이 된다.

 

장기하의 잉여가 아닌 잉여로운 삶

장기하는 일찍이 그의 정규 1집에 수록된 ‘별 일 없이 산다’라는 곡에서 기막힌 잉여의 반전을 보여준 바 있다. 중의적 의미를 가진 제목의 이 노래는 ‘일 없이 사는 자’가 그로 인해 ‘별 고민 없이 산다’고 말하는 노래다. 이 일 없는 자가 일을 좇지 않고 일 없음을 즐기는 태도는 실로 (아마도 일이 있는 자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면서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로 전복된다. 장기하는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바로 이 ‘일 없는 상태’가 오히려 ‘즐겁고 신나고 재밌다’고 말함으로써, 먼저 상황을 뒤집고 그런 상황을 만든 그 누군가의 의도가 실패했음을 통쾌하게 역설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장기하는 잉여가 아니라 잉여로운 삶을 영위하는 예술인이다.
잉여가 탄생하는 건 일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놀이를 하나의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던 시대의 유물이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일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금과옥조로 교육받아오던 이들은 최근 들어 많은 베짱이들의 삶이 보다 행복하고 때로는 성공을 일궈주기도 하는 달라진 현실에 당황해한다. 즐기는 자들을 열심히 일하는 자가 이기기 어렵다는 건 이제 성공담에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글_정덕현(대중문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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