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읽다
글 신동열(시인/작가)
마음이 맑아지고 효율이 높아지는
정리의 힘
소유는 늘어나지만 만족은 줄어드는 게 이 시대의 역설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역설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참여자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버리고, 치우며 ‘정리의 힘’을 경험하는 집안 살림 정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시청자들이 정리의 가치를 공감하기 때문이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고 치우는 일 그 이상이다. 정리는 때로는 미학이며 심리학이며, 때로는 경영학이다. 공간이 아름다워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일의 효율도 높아진다.
옷장에서 질식하는 옷들
소유는 인간의 본능이다. 쓰지 않아도 잘 버리지 못한다. 잡동사니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다. “잡동사니란 미뤄두고 아직 내리지 못한 결정이 물질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쓰지 않으면서도 버리기로 결정하지 못하고 미뤄둔 물건이 잡동사니다.
당신의 옷장 안을 들여다봐라. 옷들이 빼곡해 숨을 쉬지 못한다. 한데, 당신은 이옷 저옷을 들추다 입을 옷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찬장도 마찬가지다. 그릇이 겹겹이 쌓여 천장에 닿지만 수년째 자리만 지키는 그릇이 수북하다. 시한을 단정하는 건 무리지만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쓰지 않은 그릇은 잡동사니로 질식한 채 공간만 차지할 확률이 아주 높다.
인간의 소유욕은 욕심과 닿아 있다. 제나라의 15대 군주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인간에게 만족이 있는가.” 관중이 답했다. “욕심이 멈추는 곳에 만족이 있는데, 욕심이 쉬이 멈추겠습니까.” 인간은 자주 소유를 자기 정체성과 연결 짓는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도 껴안는다.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인간에게는 재산 사업, 예술품, 친구, 여행, 신(神), 심지어 자신의 자아까지도 모두 탐욕의 대상”이라고 했다. 비우기보다 채우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잡동사니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다.
버릴 때는 과감해라
추억과 ‘혹시나’는 정리의 방해꾼이다. 물건마다 사연이나 추억이 있다. 결혼 선물로 남편이 사준 옷, 아들딸이 직장 첫 월급으로 사준 넥타이, 친정어머니가 용돈 모아 사주신 신발…. 버리면 그 추억도 함께 지워질까 입지 않고 신지 않아도 구석구석에 쑤셔 넣는다. 하지만 버려도 추억은 남는다. 그러니 잡동사니는 미련 없이 버려라. 정리의 제1원칙은 정렬이 아니라 숫자를 줄이는 일이다.
‘혹시나’는 잡동사니에 대한 미련이다. 언젠가 입을지 모르고, 사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쌓여간다. 하지만 두어 해를 넘긴 ‘혹시나’는 거의 ‘역시나’로 끝난다. 미련을 껴안으면 정신이 산만하다. 집은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잡동사니들의 창고여서는 안 된다.
정리의 시작은 버림이다. 버릴 때는 과감해야 한다. 삶과도 한 번은 이별하는 게 인생이다. 버리기로 결단하고, 불필요한 것은 즉시 버려라. 옷도 버리고, 그릇도 버리고, 신발도 버리고, 책도 버려라. 불필요하게 쌓여 속도만 느리게 하는 문서나 메일, 앱도 미련 없이 휴지통으로 보내라. 주변이 너저분하면 마음도 산란하다. ‘중간 정류장’은 가급적 줄여라. 다 읽은 신문은 책상이나 소파에 놓지 말고 바로 종량제 박스에 버려라. 안경이나 TV 리모컨, 마스크는 자리를 정해둬라. 사소한 것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의외로 많다.
정리는 일의 효율과도 직결된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다. 늘 책상 위가 어수선하다. 참고한 책들이 켜켜이 쌓여 다시 들춰보려면 책들이 우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 작은 책꽂이를 책상 위에 놓고 자주 꺼내 보는 책들을 입체로 꽂아두니 읽고 쓰는 게 훨씬 편해졌다. 이참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장서를 차지한 책들도 미련 없이 버렸다. 정리는 버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물건이나 순서를 바르게 배열하는 일이기도 하다. 뒤죽박죽된 것들을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나열하면 일의 효율이 곱절로 높아지고 소비의 효용성도 훨씬 커진다. 허둥대는 사람의 주변은 하나같이 너저분하다.
취함과 버림을 아는 지혜
정리는 눈에 보이는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에 가득한 욕심, 지나친 집착, 과도한 허명(虛名)도 버려야 한다. 물건이든 욕심이든 과하면 화(禍)가 된다. 버리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취함과 버림을 아는 게 지혜다. 필요한 것, 필요하면서 욕구적인 것, 단지 욕구적인 것을 구별하는 게 혜안이다.
도가(道家)의 비움은 ‘텅 빈 상태’가 아니다. 그건 불필요한 것을 버려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비워야 크게 담는다. 여백은 문학과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소한 삶의 공간에도 여백이 있어야 정신이 신선하고 기분이 가볍고 마음이 맑아진다.
정리는 태산을 오르고 대서양을 건너는 것처럼 거창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소하고 귀찮은 일에도 인생의 숭고한 의미가 있다. 스트레스 해소의 제1법칙은 귀찮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비우면 가볍다. 집이 가볍고 마음도 가볍다. 이치는 단순하고 명백한데, 정리하려는 몸이 무거운 게 문제다.
‘가장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다는 변명’이라고 했다. 내일의 약속보다 오늘의 실천이 중요하다. 잡동사니를 치우고, 엉킨 순서를 바로잡고, 욕심도 조금 줄여라.
내일 말고 오늘, 옷장을 살펴보고 찬장을 열어봐라. 잡동사니들은 미련 없이 솎아내고 진짜 필요한 것들이 편히 숨 쉬게 해라. 제자리를 못 찾은 것들은 제자리로 보내줘라. 오늘 정리가 되면, 내일도 그 정리를 유지해라.
정리의 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 그 힘은 당신이 먼저 ‘정리하는 자’가 되어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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