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대선배의 지혜를 잇는 시간, 김재형 전 대법관과 판사들의 대담 권한의 무게가 치우치지 않도록 부디 올바르고 공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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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강권신

대선배의 지혜를 잇는 시간, 김재형 전 대법관과 판사들의 대담
권한의 무게가 치우치지 않도록
부디 올바르고 공정할 것

지난 9월 임기 6년을 마치고 퇴임한 김재형 전 대법관과 윤성진, 최태진, 이창현, 박연주 네 명의 판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김재형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고, 사안의 실체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었다. 이번 대담에서도 그는 어떤 문제든 정면으로 부딪쳐볼 것을, 올바른 판단을 위해 늘 스스로 경계하고 자문해볼 것을 권했다. 앞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후배 법관들의 고민과 질문에 길 끝에 도달한 대선배는 정답이 아닌 해답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모두를 납득시키는 훌륭한 판결문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였다.

 

김재형-안녕하세요, 다들 바쁠 시기에 이렇게 참석을 하셨네요. 반갑습니다.
윤성진-마침 재판이 없는 주라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김재형-다행입니다. 일이 많죠?
윤성진-아무래도 10월, 11월은 다들 분주해집니다. 추수를 앞둔 느낌이에요.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만나 뵈어서 영광이고 다른 판사님들도 반갑습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민사단독 재판을 하고 있는 윤성진 판사입니다. 법원 들어온 지 8년 차이고, 배석판사 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단독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재형-단독판사 첫해군요.
윤성진-예, 그래서 많이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김재형-하고 싶은 대로, 하던 대로 열심히 하시면 잘 될 겁니다.
윤성진-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도, 신경 써야 될 것도 많아서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드는 중에 이렇게 대담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형-오늘 이 시간이 좋은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다음 분은…
이창현-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이창현 판사입니다. 저는 2017년에 판사로 임용됐는데요, 그 전에 대법관님을 가까이에서 몇 차례 뵈었어요. 2016년 대법원에서 청년연구관으로 근무했거든요.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재형-아, 그랬군요. 그때 어느 조였나요?
이창현-형사 근로조였습니다.
김재형-그때는 근로조가 독립하기 전이었죠? 2016년에는 형사 사건 안 하고 근로 사건만?
이창현-형사 사건도 토론에는 참여했고요, 또 형사 신건 검토도 몇 달 정도 했고요. 그때 대법관님께서 청년연구관들 몇 차례 밥도 사주시고 저희 퇴직 후에도 불러서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최태진-맛있는 거 드셨나요?
이창현-네,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즐겁게 식사했어요.
김재형-최근에도 그곳에 한 번 다녀왔어요. 올해 임관한 판사인데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가지고 와서 어디에서 만날까 하다가 거기에 갔어요. 안 그래도 여길 언제 왔었지 하다가 연구관들과 갔던 생각이 났습니다. 벌써 6년쯤 됐네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최태진-이제 제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조세 도시정비 전담합의부 배석으로 있는 최태진 판사입니다. 사실 저도 대법관님과 인연이 있는데요. 법학도로 처음 들었던 강의가 대법관님의 수업이었습니다. 저희 교수님이셨어요. 대법관님의 민법 총칙이 전공 첫 수업이어서 지금도 사실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더 입에 붙습니다.
김재형-아주 반갑습니다. 연구관들 중에 학부 수업 들은 학생도 있고 대학원 수업 들은 학생도 있고, 석박사 지도 받았던 연구관도 있었어요.
박연주-인연이 있는 제자들은 좀 눈여겨보셨나요?
김재형-굳이 따로 눈여겨보지 않아도 다들 잘하고 있어서. 그저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연구관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태진-그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좀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법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대법관님 수업이었는데, 이렇게 뵙게 된다니까 감회가 좀 새롭더라고요. 예전 생각도 나고, 잘 정진하고 있나 부족한 건 아닌가 돌아보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박연주-안녕하세요. 앞서 두 분께서 대법관님과의 인연을 자랑하셔서 저도 뭐라도 하고 싶은데 저는 사진으로만 뵈었어요. 저는 인천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배석으로 있습니다. 박연주 판사입니다.
이창현-이제 인연이 생기셨네요. 하하.
박연주-그렇네요. 저도 이제 다음부터는 오늘의 인연을 이야기해야겠어요.

대담현장대법관으로서의 경험
김재형-좋습니다. 이렇게 젊은 판사들을 만나게 돼서 저도 무척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눴으니 무엇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세요.
최태진-제가 먼저 여쭙겠습니다. 교수직과 대법관을 모두 하신 분이 사실 많지 않으시잖습니까? 두 개의 직업을 다 해보셔서 확실히 비교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달랐나 그게 가장 궁금했습니다.
김재형-이미 알고 있겠지만 저는 판사를 3년 6개월 하다가 1995년 9월에 교수가 됐어요. 그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교수가 좋아요? 판사가 좋아요?’였죠. 21년간 교수로 생활하다가 2016년 9월에 대법관이 됐는데 그때도 비슷한 질문을 들었어요. 제 대답은 교수할 때는 교수가 좋다고 했고 법관을 할 때는 법관이 좋다, 였어요.
박연주-현답이시네요. (일동 웃음)
김재형-두 직업의 다른 점에 대해 답하자면 교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죠. 어떤 과목을 강의할지, 어떤 주제로 연구할지 자유롭습니다. 그에 반해 법관은 주어진 일을 하죠. 이것이 가장 큰 차이예요. 공통점이라면 법률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 법적 사고와 법적 사유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는 결론을 내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도 됩니다. 자기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될 필요도 없고, 동료를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 부담도 없죠. 법관의 경우에는 합의부 구성원이라면 본인 생각만으로 할 수 없고 동료 법관을 설득해야 하기도 하죠.
박연주-대법관을 퇴임하신 지금은 뭐가 더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김재형-글쎄요. 지금은 교수도 대법관도 아니니 뭐가 좋은지 더 모르겠네요.
윤·최·이·박-일동 웃음
최태진-교수 시절에 교수직의 장점을 충분히 알고 계셨을 텐데 대법관으로 임용돼 다시 법관의 자리로 가겠다고 결심하신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재형-대법관의 일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또 법학 교수의 일과 대법관의 일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하고 공부한 것이 재판하고 판결문을 쓰는 데 도움이 되고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창현-그렇다면 대법관으로서의 경험이 대법관님의 가치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또 향후 삶이나 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재형-교수로서는 민법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강의를 했습니다. 대법관으로서는 민법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형사 사건, 행정 사건, 조세 특허 등 다양한 사건을 처리했죠. 대법관으로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좀 더 폭넓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교수로 있을 때도 형사판결 등을 읽기도 합니다만 대법관으로서 형사 사건을 처리할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해결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려고 했던 경험은 매우 중요하잖아요. 행정 사건이나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법 이외의 법 분야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죠. 이 시간들은 당연히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연주-그러시면 대법관으로 재임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셨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든 때는 언제였는지요?
김재형-어려운 질문입니다. 생각해보면 기존판례나 논리만으로 답을 찾을 수 없는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을 때 보람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면서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보람을 느꼈고요. 사실 저는 힘든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라 힘들었던 순간은 잘 떠오르진 않습니다.

 

 

김재형 전대법관님

좋은 판결문이란
윤성진-저는 처음으로 단독 재판을 하는 올해가 무척 힘든 순간인데요. 결국 판사에게 가장 큰 업무는 판결문 작성이더라고요. 교수 시절 쓰신 논문 등의 글과 판결문을 쓰는 글이 차이가 있잖습니까? 대법관 취임하시고 판결문 집필하실 때 글쓰기 방식을 어떻게 바꾸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재형-대법관이 되었을 때 판결문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했습니다. 좀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쓰고 판결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판결문에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방식 중에서 좋은 점은 따르되 좀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쓰려고 했습니다. 종전에는 판례를 표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 문장이 반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했죠. 저는 가능하면 한 문장이 세 줄을 넘지 않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어요. 가능하면 한 줄로 쓸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물론 세 줄이 넘어가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문장 길이를 줄이고 좀 더 읽기 쉬운 표현으로 고치려고 했어요. 단독 판사인 지금이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생각한 대로 판결문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가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결문도 계속 보고, 연습하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판결문이 뭔지, 좋은 방식이 뭔지 고민하면서요.
윤성진-어느 한 쪽에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서, 쓰면서 더 중언부언하고 간결해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재형-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당사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판결문이라면 더욱 좋지만, 패소한 사람이 쉽게 설득될 리 만무하죠. 꼭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당사자가 수긍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판결문을 쓴다는 생각으로 써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판결문이라는 게 꼭 짧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동료나 일반 국민을 포함해 판결문을 보게 되는 독자들을 생각해서 설득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성하는 게 좋겠죠. 쉽지 않은 일이에요. 어떤 게 좋은 판결문이냐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나뉘니까요. 어떤 방식이 좋다 혼자 생각 말고 다른 판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눈여겨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고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윤성진-논문이 판결문보다 글쓰기 난이도가 좀 어떻습니까?
김재형-글쎄요, 어느 것이 높다 낮다 얘기하기 쉽지 않네요.
최태진-논문 얘기가 나와서요. 학부 시절에 대법관님께서 ‘금융거래의 당사자에 관한 판단기준’이라는 논문으로 법학논문상 받으셨던 게 생각나네요. 1학년 마치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 해서 읽어봤는데 너무 어리고 지식도 짧아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근에 퇴임 논문집도 발간되었는데, 바쁜 중에도 대법관님처럼 논문 작성하고 공부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일을 하다 보면 연구 주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데 판사로서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
김재형-오래된 논문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논문은 2006년에 쓴 걸로 기억해요.
최태진-네 맞습니다. 제가 입학한 해였는데 무척 인상 깊었거든요.
김재형-판사의 본업은 재판을 하는 겁니다. 재판을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판사가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이 글을 쓰는 겁니다.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죠. 논문도 글쓰기라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거나, 깊이 있게 글을 써보고 싶다면 관심이 가는 주제로 논문을 써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최태진-저는 그렇게 두 가지를 하시는 분들이 정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내시는지 모르겠어요.
김재형-술 마시는 배와 밥 먹는 배가 다르다는 말이 있잖아요.
윤·최·이·박-네? 그 예가 이렇게 쓰일 수 있다니… 하하하
윤성진-혹시 판결문 쓰실 때와 학문적인 거 쓰실 때 의도적으로 다르게 쓰시나요?
김재형-논문에 쓰는 표현과 방식이 있고 판결을 쓰는 방식이 있죠. 판결은 주어진 쟁점에 관해 법리를 쓰고 구체적인 해결에 필요한 판단을 하는 거죠. 방식은 바뀌지만 주제는 비슷하잖아요. 법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좀 더 엄격하게 문장 순서를 지켜서 쓰느냐 자유롭게 쓰느냐니까요. 상황에 맞춰 쓰게 되죠.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다수의견,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 따라 쓰는 표현이나 문체가 다릅니다. 다수의견은 법정의견, 대법원의견으로 대법원이 선언하는 법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간결하고 명확하게 쓰고요. 반대의견은 비판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롭게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됩니다. 다수의견 중에는 물음표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만 반대나 보충의견은 물음표를 사용하기도 해요. 반대의견, 보충의견, 별개의견은 판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쓰는 것이죠.
이창현-말씀 들으니까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처분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님의 별개의견에 ‘정당한가? 이것이 타당한가?’ 이렇게 문장에 물음표를 연달아 쓰신 게 기억납니다. 인상적이었어요.
김재형-전교조 법외 노조 사건에서 별개의견을 냈었죠. 혼자 의견으로 쓰니까 훨씬 더 자유롭게 썼습니다. 다른 분들과 함께 썼다면 아마 표현을 좀 바꿨을 거예요.

대담장면 

좋은 법관이란
박연주-저도 업무 중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조언을 좀 구하고 싶습니다. 생소한 법률을 해석해야 될 때도 있고 선례가 없어서 내가 새로운 법리를 구성해야 할 때도 있는데 모든 사건에서 논문을 쓰듯이 깊이 있게 연구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럴 때 검토했던 부분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해서 다음 번에도 똑같이 헤매는 경험을 했습니다. 업무 처리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 더 신경을 쓰면 좋을까요?
김재형-제가 지방법원 판사를 3년 6개월 동안 했는데 하급심 판결 중에 비슷한 게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고 대법원 판례가 있는지 찾아봤어요. 현재는 판례 검색이 그때보다는 쉬우니까 비슷한 사건에 관한 하급심 판결을 몇 개 정도 찾아서 읽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세 건 정도 다른 판사들이 쓴 판결들을 비교해서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비슷한 사건이 없고 적당한 판례가 없다면 주석서나 교과서, 필요한 경우에는 논문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요. 어차피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법관이나 다른 법률가, 법학자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할 수 있어요. 그중에 사건과 맞는 게 있으면 쓰면 되는 것이고요. 이런 것들까지 다 신경 써야 하니 법관의 업무가 참 과중하죠.
박연주-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결론을 찾고 답을 찾는 데만 급급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김재형-그렇죠. 그래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판례를 찾아보고 공부하길 권합니다.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조금씩 해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법관이 돼서 논문이나 교과서 읽기는 어렵죠. 판례 공보를 읽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 읽으려 하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다가 또 읽고 싶을 때 읽어도 됩니다. 1일 자, 15일 자 격주로 나오니까 2주 동안 읽고 싶은 순간마다 조금씩 읽어두면 어떨까요? 틈틈이 판례를 읽는 것이 법관의 역량을 기르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태진-법관의 역량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앞으로 판사 생활을 오래 해야 할 텐데 어떤 자질을 갖추면 좋을지, 어떤 것을 유념해야 할지요.
김재형-중요한 질문이에요. 답변을 잘 해야 할 것 같아서 생각하게 되네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재판을 잘 하려면 공정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공정한 판단을 하려면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을 다루게 되는데 당사자 본인에게는 그 사건이 당사자의 모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법관이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는지는 매우 중요해요. 법관의 경우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권한은 아주 큽니다. 법관은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만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고, 부장님이든 동료 법관이든 다른 법관들과 상의도 하고 얘기도 들어보면서 처음 판사가 됐을 때 가졌던 생각처럼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이창현-판사의 권한이 크고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판사 개개인이 갖는 심리적인 부담도 큰 것 같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감도 더 크게 느끼셨을텐데요. 어려운 사건들을 판단하실 때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한 노하우가 있으셨나요?
김재형-어려운 사건의 경우에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에는 동료 대법관들과 깊이 생각하고 토론을 하면서 조금씩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법관들도 마찬가지 않을까요?
이창현-끊임없는 고민만이 답이겠네요.

 

대담장면 

 

법관의 완생이란
박연주-어떤 사건이 제일 보람 있으셨나요?
김재형-어느 하나를 얘기하기가 참 힘든 거 같아요. 제 주심으로 판결했던 사건 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전원합의제 판결을 2018년 11월 1일에 했는데, 중요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아까 이창현 판사가 말했던 전교조 법외 노조의 별개의견에서 어려운 사건이라는 표현을 썼었죠. “이 사건은 로널드 드워킨이 표현한 대로 이른바 ‘어려운 사건(hard case)’이다. 어려운 사건에 관하여는 그에 걸맞은 숙고가 필요하다.”라고 쓴 게 기억나네요.
최태진-지금 하시는 말씀 들으면서 존경심이 드는 게 저는 판결문을 쓰고 나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금 문구 하나하나를 기억하시는 것이 그만큼 신경 쓰셨다는 반증인 것 같아서…
김재형-아닙니다. 우연히 이 문구가 기억 난 것이에요.
윤성진-저도 쓰고 잊어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사건을 처리할 수가 없어서요. 신기하게도 쓰기 전에는 집에서도 생각나는데 선고만 하면 언제 그랬는지 잊어서 참 사람이 일을 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나 보다 싶습니다.
김재형-저도 잘 잊어버립니다. 다르지 않아요.
박연주-우스갯소리로 부장님은 기록에 손만 얹어도 결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언제쯤이면 판례 검색이나 주석서의 도움 없이 판단이 서고 완성형 법조인이 될 수 있는지, 법조 인생에 완생이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김재형-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싶습니다. 판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건을 쉽게 생각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사건을 볼 때 모르는 부분도 있고 찾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법관으로서 자세를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많은 사건에서 판례를 기억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찾아보면서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법관으로서 사유하는 능력이 커질 거고 어느 정도 쌓여야 좀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이 늘어날 겁니다. 다 거쳐야 하는 시간이죠. 대법관도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찾아보고 연구관들에게 추가로 보고해달라고 합니다. 30년씩 근무하고 대법관이 돼서도 모르는 게 많이 있어요. 모르는 게 많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윤성진-누군가 먼저 판단 해놨으면 법원에 접수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아무도 모르니까 알려달라고 법원에 접수를 한 거라서 끊임없이 모르는 사건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르는 게 기본값이고 아는 게 특이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최태진-마음이 편해지면서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네요. 하하.
박연주-연수생 때는 교수님이 모든 걸 다 알고 계시고, 교수님 말씀이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입법관 연수를 받으면서 신임법관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걸 보면서 우리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었요.
김재형-그렇죠. 다른 법관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내 생각이 틀렸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관철하려고 해서도 안 되죠.

 

단체사진 (왼쪽부터) 최태진 판사, 박연주 판사, 김재형 전 대법관, 윤성진 판사, 이창현 판사

 

퇴임 후 이야기
이창현-6년간 임기를 마치고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셨는데 퇴임 후에 어떻게 보내셨나요?
김재형-집에서 쉬기도 하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강연도 몇 차례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연세대학교 음대에 가서 법의 해석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최태진-질문도 받으셨나요?
김재형-여러 질문이 있었는데, 아까 여러분이 했던 ‘법관의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도 있었어요.
최태진-로스쿨 학생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창현-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었을 수도 있죠. 어떤 내용의 강연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김재형-음악도 해석이 중요하잖아요. 강연 전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곡 앞부분을 세 사람의 연주로 조금씩 들려줬어요. 연주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잖아요. 그 다음에 법의 해석에 대해 설명했죠.
최태진-평소에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가요?
김재형-음악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조예는 전혀 없어요. 음대생의 경우에는 틀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아주 크대요. 입시에서 실기 연주를 할 때 틀리면 안 되니까 그 강박이 남아 있다는 거죠. 그래서 뛰어난 연주가들도 다르게 연주하고, 심지어 틀리기도 한다. 틀리면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면 법은 어떤가, 법의 해석에 관해 설명해줬죠. 법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들, 실제로 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설명하고 얘기하고 질의응답이 오갔는데 제 평생 음대 강연은 처음이었어요.
이창현-정말 대법관이 된 이후에 다양한 분야로 발을 많이 넓히신 것 같습니다.
김재형-어제는 서울대 로스쿨에서 형법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민법 교수로 21년 있는 동안 형법에 관한 강의나 강연할 일이 없었는데 말이죠.
박연주-법학과 관련 없는 분야 중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세요?
김재형-대학 때는 사학이나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1학년 때 사학과 교수님 찾아가서 부전공하고 싶다고 하니까 법대생은 고시공부 해야 해서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최태진-가끔 법조계에 오래 계신 분들이 다른 일을 하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대법관님은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김재형-아마 철학이나 사학과 교수를 하려고 애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창현-타고난 학자시네요.
김재형-문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소설이나 시 읽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 어느 여름방학에는 20일 넘게 매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어요. 학기 중에 숙제로 1주일에 한 편 독후감을 쓰는 건데 여름방학에 다 써놓은 것이죠. 개학하고 숙제를 냈는데 선생님이 도장을 마지막 칸에 찍으셔서, 결국 다시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썼어요. 책을 읽고 친구를 찾아가 줄거리를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박연주-시도 좋아하셨으면, 지금까지 기억하는 시가 있나요?
김재형-대학생 때부터 시를 많이 읽었어요. 암송하기도 했는데, 뭐가 있을까,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목소리 높여서 암송하기 좋은 시죠.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15’도 가끔 암송하곤 했는데, 지금은 다 암송하지는 못해요.
윤성진-직접 쓰신 시도 있나요?
김재형-없어요. 따로 창작을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중고등학교 때는 바둑을 아주 좋아해서 밤새워 공부한 기억은 없는데 밤새워 바둑을 둔 기억은 있어요. 생각해보니 밤새워 음악을 들은 기억도 있네요.
최태진-음악이면 어떤 음악을 주로 들으셨어요?
김재형-팝송을 좋아했는데 특히 비틀즈 음악을 좋아했고,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한 영화음악도 좋아했고요. 대학 입학하고는 지고이네르바이젠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같은 클래식 음악도 틈날 때마다 들었죠. 요즘에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어요.
박연주-법조 생활을 오래 하려면 스트레스 해소할 방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데 대법관님은 어떤 걸로 해소하셨습니까?
김재형-글쎄요. 판사와 교수를 하면서 취미가 계속 바뀌었어요. 초기에는 뮤지컬이나 콘서트에 자주 갔고, 그 다음엔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으면 보기도 했고요.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면 듣곤 했는데. 요샌 콘서트도 어쩌다 한 번씩 가고 산책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하는 게 없네요.
박연주-그렇다면 어느 것을 할 때 제일 좋으신가요?
김재형-즐거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요.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으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네 분 다 판사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일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면서 즐거움도 함께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즐거움을 꼭 찾아야 하느냐? 사실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부담일 수 있습니다. 꼭 일이 아니라도 삶에서 즐거운 걸 찾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캠핑이든 여행이든 산책이든 음악이든 게임이든 스스로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찾아서 좋아하는 것을 하시고, 열심히 일하면서 보람을 찾으세요. 책상에 앉아서 판결 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재밌는 일을 찾을 필요가 없죠?
윤·최·이·박-일동 웃음
김재형-기록보고 판결 쓰고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일을 찾아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 대법관이 된 후에 대법원에서 체조 수준의 운동, 잠깐의 필라테스, 다른 대법관들과의 산책이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건강하고 보람되게 법조 생활 잘 이어나가길 바라겠고, 지금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윤성진-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했던 문제들의 답을 찾은 시간이었습니다.
최태진-이렇게 법관이 되어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앞으로도 제자로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창현-다시 뵈어서 반가웠고 대법원에 있을 때는 나누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박연주-이렇게 저에게도 작은 인연이 생겼네요. 오늘 말씀 감사드리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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