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사람] 몰입, '가장 특별한 나'를 만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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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사람] 몰입, '가장 특별한 나'를 만나는 힘 - 황농문 교수

2021.05.07

황농문교수

몰입, ‘가장 특별한 나’를 만나는 힘

몰입전문가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냐는 질문에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라고 답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몰입전문가인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는 두 천재의 말속에 저마다 잠재한 엄청난 능력을 이끌어내는 힌트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몰입’이 그것이다. 몰입으로 공학계를 들썩거리게 할 만한 난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더 많은 이에게 몰입적 사고를 전파하고 있는 황농문 교수를 만났다.

글. 민경미 사진. 홍승진

‘Work Hard’에서 ‘Think Hard’로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후회 없는 삶은 오랜 기간 황농문 교수의 화두였다. 하루 3시간만 자는 무리한 최선에서 지속성을 위해 밤 11시까지 공부하고 잠자는 리듬으로 조정했을 뿐, ‘Work Hard’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그만의 오랜 방식이었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는 1989년 미국 국립표준연구원(NIST)에서의 포닥(박사 후 연구과정)시절, 펠로우(석학회원) 연구원인 브라이언 론(Brian Lawn) 박사의 연구 발표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 일어났다.
“당시 론 박사가 선택한 주제는 불멸의 이론이라 불릴 만큼 몇 년에 걸쳐 연구해도 논문 한 편이 나올까 말까 한 매우 어려운 문제였어요. 하지만 재료공학 분야에서 중요한 주제이므로 연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또 논문을 쓸 수 있든 없든 간에 연구한다는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죠. 론 박사처럼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연구한다면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까지 황 교수는 논문에 큰 의미를 두는 학자였다. 당시에도 이미 논문을 많이 발표한 축에 속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현실과 타협을 많이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잠재능력까지 끌어낼 필요 없이 조금만 노력하면 성과가 나오는 주제에 만족했던 것. 그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 자신의 숨은 능력까지 완전히 꺼내 쓰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론 박사를 포함한 니스트의 펠로우들을 관찰하며 배웠다. 그들은 한결같이 몸 대신 머리를 쓰고 있었는데(Think Hard), 실험 데이터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들고 다니며 어디에서든 생각에 골몰했다. 몰입이었다.
이후 황 교수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7년에 걸쳐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수십 년간 해결 못 한 공학계의 난제에 도전해 모두 해결하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그는 미해결로 남아있던 ‘세라믹의 비정상 입자 성장’을 2개월 만에 해결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저압 다이아몬드 생성 원리’는 전공 분야도 아니었지만 담당 연구원이 이직하는 바람에 맡아 1년 6개월의 몰입 후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전 교과서의 박막성장 메카니즘의 오류를 발견했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전단 나노입자 이론’이란 논문을 발표했지만 4년간 게재를 거절당했다. 다행히 1996년 3편의 논문을 게재한 이후 지금까지 이 내용과 관련하여 100여편의 국제논문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예로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사인 엘세비어에서 재료백과사전 2016년 개정판에 저압 다이아몬드 합성에 관한 그의 이론이 소개되었다. 또한 박막성장 메카니즘에 대하여 잘못 설명한 종전 교과서를 대체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과서를 “Non-Classical Crystallization of Thin Films and Nanostructures in CVD and PVD Processes”라는 제목으로 2016년 스프링거 출판사를 통하여 출간했다. 선진국보다 몇십 년 앞선 결과였다. 현택환 서울대 교수의 ‘단분산 나노입자 만드는 방법’ 개발 시 현 교수의 요청으로 일주일간 몰입해 나노입자가 형성되는 원리를 밝혀낸 것도 황 교수였다.

황농문교수

몰입의 체계를 세운 공학자
몰입으로 삶의 방정식을 푼 듯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꼈다는 황 교수는 이를 자신만의 것으로 가두지 않고 좀 더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심리학적으로 몰입 이론을 창시했다면, 그는 공학적인 접근으로 몰입을 체계화했다. 즉 공학 분야 연구가 몸에 밴 학자답게 가설이 아닌 다양한 이들의 사례에서 추출한 데이터로 몰입의 효능을 검증하고자 했다.
“어린 학생부터 기업 임원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몰입 지도를 해왔고 지금도 비대면 줌미팅으로 진행 중입니다. 주제는 크게 3가지로, 사고력 향상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몰입, 몰입영어, 수험공부를 위한 몰입인데요. 제 책을 읽고 일주일간 몰입도를 올리기 위해 실천하고 그 경과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는 식이죠.”
이 과정에서 황 교수는 몰입하기까지 개개인의 시간차는 존재할지언정 꾸준히 실천했을 때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평소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6개월간 미지의 문제를 생각해 푸는 훈련으로 몰입도를 높여 대기업의 핵심 인재로 거듭나게 했는가 하면, 게임중독으로 성적이 하위권이었던 중학생은 꾸준한 몰입 지도 끝에 아이디어가 뛰어난 학생으로 탈바꿈했다. 모 제조업체는 20년간 해결 못 한 문제의 답을 일주일 만에 얻었다.
“이들은 대부분 몰입하기 전까지는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몰입을 통한 성공 경험이 매우 중요한데요. 일단 몰입에 성공하면 점차 시간과 강도를 늘려나갈 수 있고, 그만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난도도 높아지죠.”
황 교수에 의하면,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 뇌는 그와 관련한 장기기억을 인출한다. 그것이 힌트로 작용해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것. 중요한 점은 생각하는 시간에 비례해 인출되는 장기기억의 양이 늘어난다는 데 있다. 가령 5분 동안 생각한다면 5분 걸려 해결할 문제밖에 못 풀지만 5시간으로 몰입의 시간을 늘리면 더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황 교수는 일단은 몰입을 시도해봐야 하고, 도전했다면 꾸준히 노력해 몰입의 성공 경험을 맛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황농문교수

몰입으로 안내하는 생각법, 슬로싱킹
그럼, 어떻게 하면 몰입할 수 있을까. 강연 등에서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황 교수는 보통 2가지 포인트에서 몰입 훈련을 한다. 한 번도 몰입해보지 않은 초보자라면 학창 시절 시험지처럼 답이 명확한 수학, 과학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훈련에 도움이 된다. 평소 집중력이 낮거나 산만하다면 몰입영어를 추천한다. 비교적 쉬운 원어민 발음의 녹음파일을 일정 구간 무한반복 재생하고 앵무새처럼 30분 정도만 따라 해도 몰입도가 올라가므로 출퇴근 시 운전하는 차 안에서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이어폰을 이용해 듣고 마음속으로 따라 하면 된다.
황 교수는 직장인이라면 평소 몰입해서 해결하면 좋을 문제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Focus Point(FP)’라 부르는 그는 FP를 포스트잇에 써서 여기저기 잘 보이는 것에 붙여두거나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문제를 떠올릴 상황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생각할 때의 자세도 매우 중요한데요. 몰입을 위해서는 이완된 상태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천천히 쉬듯이 생각하는 ‘슬로싱킹(Slow Thinking)’을 추천합니다. 생각하다 졸리면 그대로 선잠을 자면 되는데, 자고 나면 몰입도가 한층 향상돼 아이디어가 더욱 잘 떠오릅니다.”
다만 일상과의 밸런스와 건강한 몰입을 위해 운동과 충분한 영양 섭취를 병행해야 한다는 황 교수는 앞으로도 몰입전문가로 활동 보폭을 넓혀가는 한편 그 연장선이자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교육체계를 바로잡는 데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기존의 주입식 교육 대신 질문으로 생각을 유도함으로써 머리를 발달시키는 창의성 교육의 확산을 위해 나서겠다는 것.
그 일환으로 서울대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을 주도적으로 결성한 그는 법원 구성원을 포함한 직장인들이 몰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업무 해결은 물론이고 삶의 즐거움과 지극한 행복을 맛보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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