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긍정은 힘이 세다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긍정학교 교장
채.정.호.
우리는 긍정적으로 살자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을 좌우명이나 메신저앱의 상태메시지로 쓰는 사람도 흔하다.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우리가 즐겨 쓰는 이 긍정이 ‘짝퉁’ 긍정인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 ‘다 이뤄질 거야’ 같은 긍정 메시지들이 사실은 왜곡이나 망상에 가까운 가짜 긍정이라는 것. 긍정학교 교장이기도 한 채정호 교수가 긍정의 올바른 의미를 바로잡고, 삶의 가치와 행복을 끌어올리는 진짜 긍정의 힘을 전한다.
글. 민경미 + 사진. 홍승진
당신은 ‘짝퉁’ 긍정에 속고 있다
같은 소원을 반복해서 쓰면 이뤄진다는 ‘소원일기’, ‘올해 내 월급은 천만 원이 넘는다’와 같은 긍정확언 등 이른바 긍정 관련 콘텐츠가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식의 자기최면으로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현실 부정과 회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한 상술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얄팍한 안심을 파는 ‘짝퉁’ 긍정으로 자칫 삶을 더 깊은 불행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한자로 ‘긍정(肯定)’은 ‘정해진 것을 즐긴다’는 의미예요. 사전에서 긍정의 뜻을 찾아봐도 안 좋은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사전의 뜻 그대로 ‘진짜’ 긍정은 사물의 존재방식을 그렇다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죠.”
채 교수가 긍정에 굳이 ‘진짜’, ‘짝퉁’ 같은 수식어를 붙여 구분하는 건 긍정의 원래 의미가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한 까닭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긍정의 정의 어디에도 ‘좋다’는 의미가 없음에도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좋게’ 보는 것을 긍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한 예로 문제가 많은 자녀를 대할 때 보통 ‘우리 아이가 괜찮구나’ 생각하는 것을 긍정으로 여기지만, 이는 왜곡일 뿐 제대로 된 긍정은 ‘우리 아이가 문제가 많구나, 문제가 많을 수도 있지’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채 교수는 왜곡된 긍정 즉, 짝퉁 긍정은 당장은 삶에 조명을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진짜 긍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행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는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다.
“베트남전 당시 포로로 잡혀 약 8년간 복역하다 구출된 미군 스톡데일 장군에 따르면 곧 풀려날 거라고 믿었던 사람은 결국 상심해 죽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팔굽혀펴기 등을 하며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해요. 현실적 긍정주의가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긍정한다는 것은 비록 맞닥뜨린 현실이 밝지 않더라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서 삶을 나아지게 만듭니다.”
배우고 실천하고 확산하는 긍정
그렇다면, 긍정을 왜곡한 짝퉁 긍정이 양산되는 이유는 뭘까. 채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데 서툴다고 말한다. 급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확산된 과열 경쟁과 성과 위주의 분위기가 학교에서는 1등이 아니면 괜찮지 않은 것 같고, 사회에 나와서는 돈이 없으면 낙오되는 것 같은 열패감을 조장해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의료활동과 별개로 ‘긍정을 배우고 실천하고 확산한다’는 모토로 ‘긍정학교’를 세운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잘 사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긍정심리학이라는 학문도 20년 가까이 공부했고요. 사람들이 잘 살려면 일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이 필요한데, 제도권 교육에서는 올바른 의미의 긍정을 배우기 어려워 2006년부터 커리큘럼을 준비하기 시작해 3년 전 긍정학교를 세우게 되었죠. 긍정학교를 통해 제대로 된 긍정을 배움으로써 스스로를 긍정하고, 나아가 남을 긍정해줄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채 교수가 초대교장을 맡고 있는 긍정학교는 3개월 단위의 학기제로 운영되지만 언제든 입학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입학한 학생들은 교장인 채 교수를 비롯한 긍정심리학 전문가들의 강의와 더불어 다양한 커리큘럼을 접할 수 있다. 채 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정리한 ‘ABC긍정법’도 그중 하나다. 긍정심리학의 전부를 담아냈다는 ABC긍정법은 일상 속에서 긍정성을 키우는 세 가지 실천으로, A(Appreciate)는 감사하고 수용하는 것, B(Better & Better)는 어제보다 발전하고 나아진 것, C(Care)는 남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15년째 매일 잠들기 전에 그날의 ABC를 써왔다는 채 교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면 매일 발전하고 나아질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남을 도우면서 삶의 의미까지 북돋게 된다고.
“긍정학교 설립 전부터 행동하는 긍정주의자, 즉 ‘옵티미스트클럽(Otimist Club)’을 운영해오고 있는데요. 다른 목적 없이 오직 긍정 활동만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매달 최소 50여 명이 모여 지난 한 달간 생활 속에서 실천한 ABC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ABC긍정법이 삶의 가치와 행복감을 향상시킨다는 점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죠.”
진정한 건강은 웰빙, ‘잘 있는 것’
채 교수가 환자를 치료하는 일과 진료실 밖에서의 활동을 병행하는 건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긍정의 의미가 잘못 쓰이고 있듯 건강의 기준도 잘못 알려져 있어요. 흔히 건강이라고 하면 몸에 병이 없는 상태로 알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건강은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웰빙(Well-Being)’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럭셔리하고 여유로운 삶으로 오해하는 웰빙이 소수의 특별한 삶이 아닌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건강한 삶이라는 거죠.”
채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웰빙이 아닌 노말빙(Normal-Being)을 하며, 그러다 질병을 앓게 되면 일빙(Ill-Being)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의료적인 방법으로 일빙을 노말빙의 상태로 호전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이 경우 또 다시 나빠지거나 재발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여러 번 목도했다. 이는 그로 하여금 ‘의학적인 치료만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고, 진료실 밖에서의 활동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잘 있는 상태’의 웰빙을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긍정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사실은 제 자신도 수용적인 면이 그다지 없는 편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한때 갈등을 겪은 적도 있었죠. 다행히 공부하면서 차츰 수용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관계의 호전을 경험했는데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과 긍정학교나 옵티미스트클럽을 통해 긍정을 배운 이들에게서도 뚜렷한 변화를 읽었죠. 그래서 강연을 비롯해 목소리를 낼 일이 있을 때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곧 ‘잘 있는 상태’, 웰빙이자 건강한 삶의 시작이니까요.”
채 교수는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요즘을 내 안의 긍정성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현대인들은 ‘우리’라는 관계망에 얽매여 사느라 자신에게 마음을 집중하는 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고 지적한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감각에 집중하는 데 적극 사용하라고 말한다. 아로마 오일 같은 좋은 향기를 맡는 것(후각), 눈 앞의 물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시각), 음악뿐 아니라 물소리나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청각), 좋아하는 음식을 오래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것(미각), 좋아하는 촉감의 물건을 곁에 두고 만져보는 것(촉각)에 몰입해 오감을 깨우다 보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집중력이 길러진다는 팁도 건넸다.
“건강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묵직한 책임감을 가진 이들은 특히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야 합니다. 감염에 대한 우려가 큰 요즘 같은 때 의료인들이 감염되면 안 되는 것처럼 공익적인 측면에서 법원 사람들은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만큼 울분에 차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면 소속 개개인이 건강해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긍정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신건강 분야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 진짜 긍정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 온 채 교수는 의료인으로서 마음이 아픈 이들은 보듬는 의학적 치료와 함께 긍정학교와 옵티미스트클럽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긍정을 배우고 실천하며 확산함으로써 삶의 가치와 행복을 키워나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채정호 교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들의 모임 옵티미스트클럽의 수장이자 긍정을 배우고 실천하며 확산하는 긍정학교 교장으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퇴근 후 심리카페』, 『옵티미스트-행복한 선물』, 『채정호 교수의 남자 수업』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