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어느 하나로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하상욱 또한 자신을 이 세상이 정한 틀에 맞추지 않고 시인과 가수, 방송인, 강연자로 다양한 얼굴을 만들며 살고 있다. 홍대 인근에 위치한 소속사에서 만난 하상욱은 여전히 깔끔하고 단정했으며 소란스럽지 않게 주위를 배려하는 속 깊은 모습이었다. 어떤 일을 위해서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결코 소홀히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가을날 한 잔의 커피처럼 깊은 향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Q. 어느 해보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습니다.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라고 뭐 특별한 방법이 있었을까요? 똑같이 에어컨 바람 쐬고 시원한 음료수 마시면서 지냈습니다. 원래 여름이나 겨울에는 일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유튜브 광고도 찍고, 라디오 게스트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SBS스페셜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편에서 내레이션과 콩트를 맡았던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대 직장인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Q. 시인으로, 가수로, 또 방송인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데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냥 하상욱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이 저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요. 직업은 그저 직업으로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특정한 직업이 저를 설명해줄 수도 있지만 직업은 늘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그냥 하상욱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춰 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죠. 그래서 저는 늘 더 괜찮은 하상욱으로 발전해 갈 것입니다.
Q. 첫 직업이 광고디자이너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처음에는 앱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다음에는 게임회사의 광고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광고나 포스터 등을 디자인했는데 언제나 칼퇴근 했습니다. 광고회사들을 잘 찾아보면 의외로 칼퇴근 할 수 있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저는 월급이 적어도 6시면 퇴근해서 게임도 하고, 그냥 빈둥빈둥 놀기도 하고, 데이트도 즐길 수 있는 회사만 다녔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방법이라고 강요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내 인생의 얼굴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Q. <서울시> <시 읽는 밤> 등의 시집을 통해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시를 친근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독자들께서 제 시를 편하게 받아들이셨다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제 감성대로, 연필 가는 대로 편하게 시를 썼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시에 공감하거나 좋아해줘야 한다는 욕심을 가져본 일은 없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꼭 시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습니다.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좋은 것도 어디에나 있죠. 인터넷이나 SNS를 찾아보면 각자에게 맞는 의미와 아름다움 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시를 읽으면서 재밌어 하고, 공감도 하고, 때론 슬픈 감정까지 느낄 수 있다면 저는 아주 만족합니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습니다.
Q. 재미 삼아 썼던 전자책 <서울시>가 독자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글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짧은 시 속에도 요즘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웃픈’ 문제들이 잘 표현돼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골치 아픈 설교나 강요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를 쓴 저나 시를 읽는 독자들이나 서로 경직되지 않고, 속박하지 않고, 책임감을 묻지 않았던 것이 시에 대한 호감을 준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독자들이 언제든지 마음을 접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이나 가수의 제 모습이 싫어진다면 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이죠.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나 가족, 연인에게는 적당히 속박 당하는 걸 좋아합니다. 당연히 제 시간이나 생활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사이니까요.
Q. <회사 가야지> <축의금> 등의 디지털 앨범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가수 활동은 계속하실 건가요?
원래 대학교 축제나 회사 행사 같은 곳에서 노래를 많이 했습니다. 노래하는 걸 워낙 좋아했으니까요. 저는 가사나 메시지에 멜로디가 붙으면 훨씬 더 전달력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가야지>는 젊은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빠른 멜로디와 가사에 맞춰 전달한 곡입니다. 요즘도 자기 마음 같다는 청중들의 반응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소속돼 있는 매직스트로우베리 사운드에 ‘10㎝’‘옥상달빛’ ‘요조’ 등의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있어서 음악 작업이나 영감을 받기가 훨씬 유리합니다. 앞으로도 기회만 온다면 저를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습니다.
Q.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뒤 특별히 달라진 일상생활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제가 ‘못친소’에 뽑혔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제 피부나 얼굴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그때는 또 심하게 감기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세수를 하고 나서야 제 상태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무도를 출연하기 전에는 자신감 과잉 때문에 일방통행의 삶을 사는 면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잘난 맛에 질주하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저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고, 겪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원래 어마어마하게 못살던 집 아들이라 늘 조심하고, 많이 고민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삶의 균형을 잘 잡으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SNS상에서 많은 팔로우를 거느리고 계신데, 스스로 영항력에 대해 실감하실 때가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늘 주시받고 있구나 하는 기쁨이 느껴질 때가 있고 두렵게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해의 소지가 없는 말은 없겠지만 최대한 근사치에 접근하는 말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한두 번 이상은 SNS를 찾았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심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몇 번의 작은 곤욕은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더 큰 문제를 일으킬까 봐 술을 끊어버렸습니다. 술을 한잔 마시고 호기롭게 트위터를 하면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거든요. 요즘은 제가 좋아하는 맥주를 혼자 기분 좋게 마시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Q. 평소 법과 법원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솔직히 법원은 아주 멀리 있는 그대 같습니다. 하지만 법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죠. 전에는 법 또한 저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에 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거죠. 법이 흐트러지면 모든 게 흐트러질 테니까요. 저도 살짝궁 법을 어기곤 하지만 법이 올바로 잘 서서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법에 의지해서 잘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성큼 가을이 다가왔네요.가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별다른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입니다. 스케줄대로 열심히 강연 다니고, 라디오 출연하고, 요즘 부쩍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브랜드 글도 부지런히 쓸 생각입니다. 사람들 생각과 다르게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번잡하게 사람을 만나는 일도 즐기지 않습니다. 바쁠수록 진정 나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가을을 보낼 계획입니다.
글_이원복·사진_성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