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어떻게 산정할까?
글. 전주지방법원 이건희 부장판사
1. 들어가며
민법상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크게 재산상 손해와 비재산상 손해, 즉 정신적 손해로 나뉜다. 재산상 손해는 기존 재산의 감소나 향후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상실 등 비교적 객관적이고 수치화 가능한 항목으로 산출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과 같은 비재산적 손해는 형체가 없으며, 타인이 그 깊이를 온전히 측정할 수 없다.
이처럼 가해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 위자하고 그 피해를 전보하기 위해 지급되는 금전을 우리는 ‘위자료’라 부른다. 위자료 제도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완화하고, 손해배상제도의 궁극적 목표인 ‘손해 이전 상태로의 회복’을 도모하려는 법적 장치다.
그러나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돈이라는 객관적 척도로 환산할 것인가?” 위자료 산정은 단순히 수학적 공식에 변수를 대입해 답을 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 사회적 상식, 경제적 현실, 그리고 법의 정의관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2. 생각할 점들
가장 원초적인 접근법 중 하나는 주관적 효용이나 가치 평가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예컨대 “당하기 싫은 일이나 고통이 있지만, 얼마의 돈을 받는다면 그 일을 참거나 당해도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경미한 수치심이나 일시적인 불편함과 같은 영역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시장에서 노동에 대한 대가가 형성되듯, 고통에 대한 금전적 타협점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는데, 손해배상으로 1,000만 원을 받았다고 치자. 어지간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분이 풀리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본질적인 한계에 봉착한다. 인간의 생명·신체의 침해, 가족관계의 파탄 등 현실에서 위자료 산정이 문제 되는 정신적 고통의 대부분은 금전으로 환산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얼마를 주면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겠는가?” 혹은 “얼마를 주면 당신 자식의 생명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인격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불쾌한 가정이 된다.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폭력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신뢰가 파탄 난 상황을 두고 “얼마의 돈이면 이 고통을 당해도 좋았겠는가?”라고 물을 수는 없다. 이러한 극심한 정신적 피해는 어떠한 금액으로도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달라는 대로 위자료를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대부분의 경우에 위자료는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충분히 전보하지 못하는 금액이 될 수밖에 없다. 피해의 완전한 전보가 불가능하다면, 법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은 ‘적정한 금액’을 정하여 피해자를 위로하고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때 ‘적정한 금액’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고려가 개입될 수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요소를 참작할 수 있을 것이다.
① 피해의 경중과 가해행위의 태양
피해자가 입은 고통의 크기와 기간, 신체적 장애를 입은 경우 그 부위와 후유장해율, 불법행위의 동기와 수단, 가해자의 고의성 여부 등이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단순 과실에 의한 사고와 악의적·의도적인 범죄행위는 위자료 액수에서 차이를 둘 수 있다.
② 당사자의 경제적 사정과 형평
동일한 금액이라 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받는 부담과 피해자가 받는 위로의 실질적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③ 국민의 법 감정과 정의관
판결이 제시하는 위자료 액수가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과 동떨어져 있다면 법에 대한 신뢰는 유지되기 힘들다. 법원은 당대 사회가 인격적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얼마나 무게 있게 다루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④ 판결의 사회적 파급효과
특정 사건에서 결정된 위자료 액수는 유사한 산업재해, 교통사고, 의료사고, 또는 대형 참사 등에 대한 거시적인 가이드라인이 되므로, 사회 전체에 미칠 경제적·제도적 파급효과 역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좋은데 그래서 이 사건에서는 얼마가 적정한가’라는 의문은 남고, 이 경우 법원이 가장 쉽게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유사 사건에 관한 판결들이다. 유사 사건에서 과거 법원이 결정했던 위자료 액수를 참조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유사 사건에 대해 판사마다 천차만별의 금액을 선고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된다”라는 태도는 법적 정의를 정체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의 점을 살펴보자.
① 물가 상승과 화폐가치의 변동
수십 년 전 설정된 위자료 액수가 현재의 화폐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받고도 예전과 같은 위로를 얻지 못한다. 물가상승률과 실질소득의 향상을 고려하여 위자료의 액수 역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이혼 위자료를 예로 들면, 배우자의 바람이나 폭력 등 일방의 잘못으로 인하여 혼인이 파탄된 경우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약 30년 전에도 유사한 사안에 같은 금액을 인정한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그동안 물가는 2배 가까이 상승하였다. 부부 재산의 핵심인 집값은 말할 것도 없다).
② 인권의식과 시대정신의 변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회가 평가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볍게 넘어갔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현대 사회는 매우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따라서 판결에 누적된 과거의 액수만을 고집하는 것은 인권의식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필자도 처음 보는 사안에서 고민 끝에 소액의 위자료를 인정하였으나 상급심에서 증액된 사례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피해에 대한 감수성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과거의 판결에 의존하는 것은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이 경우 국회가 입법을 통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나, 위자료 산정 기준의 법제화 등이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입법은 구체적인 모든 사안에 관하여 그 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으며, 제·개정 과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한계가 있다. 딱히 국회에서 위자료 산정 기준에 관한 입법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보이지도 아니한다. 결국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정의를 현장에서 직접 실현하는 주체는 판사들이다.
3. 마치며
판사들은 기존의 판결에서 정해진 금액을 참고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원 내부적으로 위자료 산정 기준을 세분화·현실화하기 위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손해의 실질적인 전보를 도모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비하는 자체적인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최근 전국 법원의 판사들로 구성된 ‘손해배상소송연구회’에서 외국의 사례와 국내의 사정을 종합하여 적정한 위자료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 바, 귀추가 주목된다).
개별 사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크기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곤란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법원이 그 고통에 진정성 있는 무게를 실어주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위자료 산정은 단순한 액수의 결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의 상처와 존엄성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증명하는 법원과 법관의 중대한 책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