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나누는 만남] 이별 대신 사랑을 상처 대신 희망을 가정법원 사람들

人사이드인터뷰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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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송현종 서울가정법원 조사사무관, 유지현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사관, 정승원 서울중앙법원 부장판사, 조영호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이선미 대전고등법원 고법판사, 조아라 서울가정법원 판사

내일을 나누는 만남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조인기

이별 대신 사랑을 상처 대신 희망을

60년, 서울가정법원의 역사를 돌아보며
조영호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정승원 서울중앙법원 부장판사,
이선미 대전고등법원 고법판사, 조아라 서울가정법원 판사,
송현종 서울가정법원 조사사무관, 유지현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사관

가족 같은 가정법원 사람들

조영호 I 국제컨퍼런스 하시느라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서울가정법원 60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컨퍼런스에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는데, 대표해서 저희가 인사를 드리네요.
저는 작년에 서울가정법원에 와서 조정전담을 했고, 올해 수석부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법원이 가족적인 분위기라 참 좋거든요. 다른 법원에 비해 왜 유독 더 분위기가 좋을까 생각해보니, 오래 근무하신 조사관님, 전문법관님들이 계셔서인 것 같아요. 이렇게 분위기 좋은 가정법원에 근무하게 된 걸 행운이라고 여기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선미 I 말씀하신 가정법원만의 분위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가정법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대전고등법원에서 일하는데 민사 외에 가사재판도 하고 있어요. 감사하게 기회를 주셔서 가정법원 관련 연구회 활동도 계속하고 있고요. 가사재판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한다는 게 다른 재판들과의 차이 같아요. 법 제도 안에서 답을 해결하고, 답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죠. 다들 그런 책임감으로 조사관이 되고, 가사소년전문법관 이 되어 오래 근무하시는 것 같습니다.
송현종 I 말씀하신 것처럼 책임감이 갈수록 더 생깁니다. 저는 2001년 새로운 조사관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처음 들어와서 지금까지 조사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인천가정법원에 7년 정도 있다가 작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가정법원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건 조사관 제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가사소년전문법관 제도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대만 쪽 분들과 소통하는데 전문법관 제도에 대해 늘 자랑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에너지 넘치게 일하는 전문법관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왔다고요.
조영호 I 이번 컨퍼런스에도 외국에서 많이 참여하셨죠.
송현종 I 네, 특히 일본에서 15분 정도 오셨어요. 그것도 다 자비로요.
조아라 I 자비로 참석하셨다는 게 놀라워요.
송현종 I 예전에는 저희가 일본 제도를 참고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어요. 주제 발표자 외에 연구자, 실무가, 변호사 이런 분들이 자비를 들여오셨어요. 인원 제한을 둬야 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주셔서 뿌듯했습니다.
유지현 I 참석하신 분들께서 우리나라 법원이 엄청나게 열정적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송현종 I ‘열정이 불타고 있다 ’고 표현하시더라고요. 발전해 나갈 힘이 느껴진다면서요. 얼마 전에 전국 조사관 모임에 갔는데 막내 조사관에게 서울가정법원 소개를 시켰더니 동북아 최고의 서울가정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동 I 하하하
송현종 I 세뇌가 참 ‘중요하구나’ 했죠. 하하하. 그런데 이게 거짓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법제화하고 규칙을 만들어 온 과정들을 보면 굉장히 선진적이에요. 이번 컨퍼런스에서 면접교섭 이행률이 10년 동안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법을 찾는 걸 보면서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법을 찾아나가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제가 그 통계가 좌절의 지표가 아니라 우리가 더 해야 할 근거라고 생각한다니까 놀라더라고요. 자긍심을 충분히 가질만한 K-패밀리 코트라고 생각해요.
정승원 I 우리끼리 하는 말이라도 동북아 최고의 서울가정법원이라는 소개를 들으니 자랑스럽네요. 하하. 저는 가사소년전문법관 1기입니다. 2005년 서울가정법원이 서초동에 있을 때부터 17년간 근무했죠. 그러고 보니 서초동, 서초동 신관, 지금 양재동까지 다 근무했네요. 17년을 쭉 연속적으로 근무한 법관은 드물 거예요. 지금은 중앙에 있는데 그곳에 가서도 TF나 연구 등으로 계속 가정법원과 연을 잇고 있죠. 늘 그리운 마음도 있고, 또 너무 얽혀 있어서 인연을 끊을 수가 없어요.
송현종 I 저희가 못 놔드립니다. 끊을 생각하지 마세요.
유지현 I 17년이라니 박수가 절로 나와요. 저는 2015년 조사관으로 들어왔고요. 고양지원에 있다가 서울가정법원에는 2021년도에 왔습니다. 후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성년, 미성년 후견 관련 업무를 하다가 올해 면접교섭센터에서 근무 중입니다. 이번에 면접교섭 관련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해서 정말 좋았어요. 실무의 어려움이나 센터에서 하는 고민들을 이론적으로 잘 정립할 기회였습니다. 오랜 경력을 가진 좋은 선배님들 덕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조아라 I 제가 경력이 제일 짧네요. 저는 판사 14년 차인데 서울가정법원에 온 지 4년째이고요, 2022년에 가사소년전문법관이 됐습니다. 미천한 경력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고시 공부할 때 가족법이 참 싫었거든요. 관심이 안 갔어요. 그런데 가정법원에 와서 사건을 접하다 보니 민사, 형사와는 다른 면이 있더라고요. 가사 사건은 사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게다가 조사관님들 일하시는 걸 보면서 아, 진짜 애정 있는 분들만 계시다고 느껴져서 가사소년전문법관까지 지원하게 됐죠. 가정법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판사로서 큰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감사하게도 대선배님들과 여러 연구도 하고 TF도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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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주년 국제컨퍼런스, 성장을 확인한 시간

조영호 I 충분히 훌륭하게 해주고 계십니다. 이번에 국제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우리 법원 분들의 저력을 다시 느꼈어요. 이번 주제는 원장님이 선택하셨죠. 어떻게 해야 이혼으로 소리 없이 고통받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을지 서로 얘기해 보자는 취지였어요. 저도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면접교섭이라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고, 참석하신 분들도 만족해하시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관심이 많구나, 우리가 해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유지현 I 대부분 행사 끝까지 함께 하셨죠.
정승원 I 예약 신청하신 분들 중 4분만 못 오셔서 참석률이 98.4%라고 들었어요. 행사 준비한 업체 측에서 이런 국제컨퍼런스는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고의 참석률과 참석 유지율을 자랑한 행사였어요.
조영호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이선미 I 너무 많이 신청하셔서 다 모시지 못했죠. 오고 싶었는데 못 와서 아쉬워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송현종 I 그 원한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하. 행사를 준비하면서 첫 회의 안건이 ‘참석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정리하느냐’였어요.
정승원 I 제가 아는 분들도 많이 못 오셨더라고요.
이선미 I 저도 함께하는 연구회 분들도 못 오게 되셔서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렸어요. 저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특히 두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국제학술행사에 면접교섭이라는 주제를 다룰 정도로 우리가 성숙했구나 싶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면접교섭과 관련해 가정법원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시선이 없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외국 법조인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우리가 잘하고 있고, 가르쳐줄 수 있다는 자긍심이 생기더라고요. 많이 발전했구나 싶었어요.
유지현 I 지금 근무하는 서울가정법원 면접교섭센터는 기본 12회를 지원합니다. 지원 회기 안에서 부모님이 감정을 배제하고 잘 조율할 수 있도록 개입하면, 실제로 갈등이 완화되는 것을 봅니다.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면접교섭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각오하고 만나면 생각보다 원활히 잘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잘 될 거라 예상했던 사건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사례 지원이 쉽지 않아 가끔 외국의 경우를 검색해보곤 했어요.
이번 컨퍼런스에서 외국은 공동양육이 기본이라 우리와 경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모가 자녀를 분리양육하는 사례가 접수되어 형제 간의 면접교섭까지 고려해서 형제들이 만나는 시간을 따로 가질지, 부모가 떨어져 있는 자녀하고만 만날 지, 형제들이 만날 시간까지 함께 할지, 시간은 어떻게 배분할지 여러 구성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 이번 주제발표에서 형제, 조부모, 친생부에 대한 부분까지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부모님을 설득할 이론적 근거가 논리가 확충되는 시간이었어요. 정말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정승원 I 컨퍼런스에서 윤진수 교수님께서 10년 전 제 판결문을 인용해 주셨죠.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면서 엄마가 둘째를, 아빠가 큰 아이를 맡게 된 건이었어요.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 거죠. 부모는 면접교섭을 했다가 데리고 있는 아이마저 뺏길까 봐 거부했어요. 그냥 나머지 한 명의 아이는 보지 않고 살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잖아요. 그때 형제간의 면접교섭을 판결에 넣었어요. 1, 3주는 둘째가 아빠 집에 가서 형을 만나고, 2, 4주는 첫째가 엄마 집에 가라. 그리고 반드시 반환해야 한다고 명시했죠. 당시 민법에 형제간 면접교섭권이 없어서 구성할 때 헌법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어요. 오랜만에 컨퍼런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10년이 지났는데 그 아이들은 어떻게 컸을까, 개인적인 감정이 밀려오더라고요.
조아라 I 잘 만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해야겠죠.
송현종 I 만약 잘 만나지 못해 단기간으로 끝났다고 해도 그 기억이 성장했을 때 소중하게 자리 잡을 겁니다. 외국 논문을 보면 한두 번 단기의 기억이라도 아이들 인생과 성장에 중요한 핵심적 감정을 형성하는 예가 많아요. 가정법원에서 내린 결정이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무언가를 남겨주는 거죠. 우리나라의 특수성일 수도 있는데 필요성을 느끼고 논리를 구성하고, 제도를 만들잖아요. 누군가의 인생에 필요한 일이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게 많죠.
이선미 I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제간의 면접교섭이 지금 학술 행사에서 논의되니까 교수님들이 2013년 판결을 예로 들면서 얘기하시지만, 당시 학계에서는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는 현장에 있으면서 고민했고, 또 분명히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늘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고민하기 때문에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법리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정승원 I 형제자매 아이들이 같이 너무 잘 노는데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져요. 그걸 보면 결론을 내고 판결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절실함을 해결할 법규정이 없는데라고 생각하기보다 헌법적 가치를 끌어다 새롭게 만들어 내는 거죠. 이번 국제컨퍼런스가 끝나고 커뮤니티에서 공동양육에 대한 논의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어요. 아마 내년쯤에는 공동양육이 부모교육공동연구회나 가정법원 세미나 할 때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송현종 I 판사님들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셨는데, 질문이 거의 다 그런 부분이었어요.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며 이룬 발전

이선미 I 기억이 생생한게 공동양육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죠. 정승원 부장님께서 독일에서 관련 내용이 있는 소설책도 주시고 했어요. 물론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될 것 같아요. 옛날에는 조부모 면접교섭이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는데 이제는 법에도 있잖아요. 법에 있는 게 부족하니까 점점 더 넓히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승원 I 13년 전 대법원에서 공동양육이 파기되었던 이유가 개념이 퍼지지 않아서 였어요. 그때만 해도 한쪽이 친권, 양육권을 갖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잖아요. 일반 국민의 정서도 다 비슷했고요. 이제는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부모교육하면서 현재의 면접교섭까지 발전시킨 것처럼요. 서울가정법원의 역사에서 부모교육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첫 시작을 서울가정법원 조사관님들이 하셨어요.
송현종 I 2010년이었습니다. 1번 타자였죠.
정승원 I 정확히 기억해요. 2010년 1월 10일이었어요. 제가 들어갔는데 2분이 계셨고, 송현종 조사관님이 교육하셨죠. 양육비를 줘야 하고, 면접교섭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요.
이선미 I 그 교육 이후로 양육비도 줘야 하는 것, 면접도 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국민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탕이 되어서 이제 공동양육에 관한 판결도 받아들여지겠죠.
조아라 I 최근 공동양육 관련해서 대법원도 공동양육 방법을 정한 원심을 파기하였는데요.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였어요. 각자 단독 친권을 원하는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취지였는데, 교육이 들어가면 당사자 인식도 바뀔 것 같네요. 이번 컨퍼런스를 계기로 논의의 장이 더 넓어졌으면 합니다.
이선미 I 단독양육을 원해서 공동양육을 거부하는 건 잘 몰라서죠. 법원만 믿었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고요. 앞으로 부모교육이나 연구가 그 방향으로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요.
조영호 I 재판하면서 이혼한다고 원수 되는 거 아니라고 말씀드려요. 중요한 건 힘을 합쳐 애를 키우는 것이다. 두 분 삶과 행복에도 그것이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요. 그런 부분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는 거, 부모로서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면접교섭 분쟁을 보면 아이는 없고 부모만 있어요. 아이도 독자적인 제3의 주체로 자기 의사를 내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 발전돼서 협의이혼 과정에서도 아이 의사가 반영되고, 그것이 양육권에 영향을 주었으면 해요. 부모교육 등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저희가 나서서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송현종 I 그래야죠! 2007년 협의이혼 개정 후 이혼안내라는 법규정은 생겼지만, 어떻게 내용을 구성할지 내용이 없었지요. 그래도 가정법원이 주축이 돼서 부모교육,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 것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에 그전에 없던 전문조사관 제도가 시행돼 인간 행동과학 전문가들이 채용됐고, 2005년에 가사소년 제도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여러 변화가 있었죠. 초반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가장 신의 한 수는 2005년 시행된 가사소년전문법관 제도인 것 같아요. 전문법관과 조사관의 고민 끝에 자녀문제 솔루션 모임이라는 연구회가 만들어지고 부모교육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잖아요. 그것이 지금의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왔고요.
정승원 I 그때 생각나네요. 여기 계신 이선미 부장님이 저희 재판부 배석판사님이셨는데 판사들끼리 연구 모임을 하자고 얘기하면서 이름을 잘 짓자고 머리를 맞댔죠. 영어를 넣자.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가 뭘까 하다가 당시 한창 유행이던 솔루션이라는 단어를 넣기로 했어요. 자녀문제 솔루션으로 하자, 그런데 위원회보다는 소박하게 모임이 좋겠다고 해서 자녀문제 솔루션 모임이 시작됐죠.
이선미 I 아이들 문제인데 혼자 하긴 힘드니까 전문가를 모아서 해답을 내보자고 의기투합했었죠. 법적 근거는 없지만 어떻게든 답을 내 보자고요. 제가 그때 간사를 맡았는데 이 방 저 방 판사님들께 사건 주실 거 없냐고 물었어요. 논의를 동의해 주시면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논의하겠다고요.
조아라 I 그렇게 하나하나 사례 수집을 하셨던 거예요?
송현종 I 네, 그렇게 시작했죠. 처음엔 사례회의였는데 그게 발전하면서 부모교육, 가사상담, 외부기관 연계 캠프 이렇게 진행되면서 완전히 시스템화된 거죠. 신기해요. 사건으로 시작해서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마음으로 모였는데,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부족하니까 법적 제도까지 만들고요. 서울가정법원 50년사에 2009년 자녀문제 솔루션 모임이 굉장히 획기적이었다는 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죠.
정승원 I 그 모임이 부모교육공동연구회와 후견발전위원회로 가지를 뻗어나갔죠. 부모교육공동연구회는 제가 7년간 회장으로 장기 집권을 했어요.
송현종 I 초대 장기독재자셨죠. 하하.
정승원 I 장기집권자의 공통점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하하. 회칙도 안 만들고 임기도 안 만들고 7년을 지내다가 7년 만에 회칙을 만들었죠. 현재 회장님은 이선미 부장님이십니다.
이선미 I 유지현 조사관님과 조아라 판사님이 지금 간사님이시고요.

AI로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들의 전문법원

조영호 I 가정법원이 전문법원이잖아요. 뭐가 전문이냐고 물으면 전문적인 법관과 전문조사관이 있다는 게 전문성을 말해주는 거죠. 가장 큰 주축이 되신 분들이고 기여한 바가 절대적이에요. 두 영역의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제 생각에 가정법원의 발전방향은 법관과 조사관의 전문화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봐요. 가사사건은 민사, 형사와 다르죠. 가정폭력 사건과 이혼사건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혼 후에 자녀들에 대한 돌봄이 방치되면 그것이 소년비행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법관과 조사관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고 전문조사관 수도 늘려야 하는 이유죠.
정승원 I 조사관님들의 역할이 크죠. 조사관님, 아이들 만나실 때 질문하면 얘기 잘하나요?
송현종 I 아이마다 차이가 있죠.
유지현 I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도 있고요. 어떤 아이들은 조사관이 아무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먼저 막 이야기를 꺼내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거죠. 안타까운 경우는 눈치를 너무 많이 살피는 아이들이에요. 아이들마다 반응이 다 달라서 그때마다 격려를 할지, 공감할지, 침묵을 하며 기다려줄지 선택합니다.
정승원 I 맞아요. 아이들에 따라 너무 다르니까. 저는 선택적 함구증 아이도 만나봤고, 중3, 고3, 다양한 연령대도 만났어요. 자매가 오면 항상 따로 면담을 하죠. 동생들이 언니 얘기를 따라 하기도 하고, 나중에 서로 이르기도 해요. 둘 다 의견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큰 애는 아빠를 좋아하고, 둘째는 엄마를 좋아하기도 하죠. 그럴 때 조사관님들이 써주신 거 보면서 분리양육을 고려해야 하나 고민도 하고요.
송현종 I 아이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려고 해요. 의견은 언제든 바꿔도 되고 잘못된 게 아니다. 지금 얘기하기 싫으면 다음번에 할 수도 있다. 책임은 어른들 몫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요. 결정하는 책임은 갈팡질팡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기다려 주는 것도 중요하고, 여러 번 확인하는 것도 중요해요. 3번 만났는데 확신이 안 선다면 한 번 더 만나기도 하고요.
정승원 I 자주 만나면 변화가 있나요?
송현종 I 관계를 좀 더 파악할 수 있으니까, 제가 여러 각도로 질문할 수 있어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대답을 해주죠. 일상생활은 엄마랑 하는 게 편한데, 주말에는 아빠를 만나고 싶다는 식으로요.
정승원 I 면접교섭을 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네요.
송현종 I 한 번에 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여러 번 만남을 갖기도 합니다. 애들은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거든요. 기회를 많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판사님을 직접 만나고 싶으면 얘기할 수 있다고도 해주고요. 문제없다고 안심시켜 주죠.
정승원 I 연수원에서 경력법관들에게 강의할 때 민사나 형사는 양형기준과 판결 데이터로 AI가 재판할 수도 있겠지만 가정법원의 가사재판은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해요. 아이들 개개인도 다양해질 테고 사연도 전부 달라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라고요. 그러니 가정법원 판사님이 되시라고 권하죠. 하하.
송현종 I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가슴 아픈 사연 많아요. 해외에서 부모님이랑 살다가 이혼해서 한쪽이 한국으로 온 경우가 있었는데, 분리양육을 하면서 아이들이 각 나라에 헤어져 살게 된 거죠. 면접교섭 방법이 안 만들어져서 부모를 설득해서 아이들을 판결 전에 만나게 해줬어요. 몇 개월 만에 만나서 애들이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손을 꽉 잡더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더라고요. 나중에 외국으로 가기 전에 아이들이 같이 하룻밤 보내게도 해줬어요. 그런 거 보면 정말 가슴 아파요.
조영호 I 결국 어떻게 됐나요?
송현종 I 방학 때마다 일주일씩 오가기로 했어요.
조영호 I 다행이네요.
송현종 I 정승원 부장님의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정신을 생각하면서 했던 거죠.
이선미 I 정승원 부장님은 법정에서 애를 뺏어서 주기도 하셨죠. 하하.
정승원 I 그건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었잖아요. 엄마가 교사였는데 아이에게 물어보면 엄마가 어떤 걸로 때렸는지 다 나와요. 별별 걸로 아이를 엄청나게 때렸어요. 아동학대처벌법도 없을 때였어요. 너무 고민되더라고요. 형사고발을 해야 하나? 피해자도 아니고 대리인도 아닌데 내가? 그래서 면접교섭일을 정하고 아빠를 법원에 오라고 했어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날로 사전처분 결정 내리고 임시양육자를 아빠로 정한다고 집행을 해버렸죠.
조영호 I 합법이잖아요. 항고는 안 했어요?
정승원 I 안 했어요. 이러이러해서 아빠에게 보낸다. 저 아이가 학대당하는 걸 한 시간도 더 볼 수 없다. 어머님이 계속 교사로 근무하려면 내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는 어떤 것도 감수할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요. 2009년이었는데, 이후로 아동학대처벌법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2013년에 아동학대처벌법이 만들어졌고요.
이선미 I 그때 제가 배석이었는데 너무 놀랐지요.
송현종 I 정승원 부장님이 할 얘기가 많죠.
조영호 I 명판결하셨네요.
송현종 I 그걸 제도적으로 변화까지 연결한 게 진짜 놀라운 일이죠.
정승원 I 2013년에 아동학대 사건이 많이 터져 나왔어요. 마침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법원은 발의권이 없잖아요. 법무부에서 법안을 통과시켜야 했는데
‘우리의 법안을 써도 되냐’고 요청이 와서 드렸어요. 판사생활 33년 하고 있는데, 법관들은 정말 순수해요. 그냥 쓰시라고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거죠. 누가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니까요. 저희가 관심 있는 건 궁극적으로 아이들이에요.
이선미 I 부장님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방에 장난감도 있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잖아요.
송현종 I 간식도 많고요.
조영호 I 제 사건 중에 아빠가 양육하는 쌍둥이가 있는데, 그중 한 아이는 아빠랑 잘 못 지내요. 엄마 쪽 대리인은 자꾸 그 아이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하죠. 사실 목적이 너무 보여요. 아이랑 이야기할 때 오염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경우 좋은 방안이 있나요?
정승원 I 처음에 사건 관련 말을 시키면 누군가에 의해 교육된 오염된 얘기가 나와요. 저는 처음엔 그림도 그리게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친구 얘기, 맛있는 거 먹은 얘기 이런 걸 물어요. 그러면 애들이 순진해서 교육받고 온 얘기를 다 잊어버려요. 아이들은 집중력도 오래가지 않아요.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났는데 조금 놀다가 풀어지면 오염되지 않은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조영호 I 30분 정도 하시나요?
정승원 I 저는 기본 1시간이고요, 3시간도 만나요. 큰아이들은 3시간 정도 이야기 나눠요. 저녁 시간 돼서 밥 사준 적도 많고요.
조영호 I 이런 경험이 잘 기록돼서 전승되면 좋겠어요. 판사들에게 매뉴얼로 나가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이선미 I 지귀연 부장판사, 임종효 고법판사가 쓰신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견 청취 지침서』에 나와 있어요. 보내드리겠습니다.
조영호 I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그래도 정승원 부장님이 최고로 많은 임상 경험이 있으시니, 부장님의 경험을 살려서 내주세요.
정승원 I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견 청취 지침서』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잘 나와 있어요. 이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해도 개개인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게 재킷 대신에 스웨터를 입으시라든지, 안경을 잠시 벗고 이야기 나누시라든지 그런 정보들이 있죠.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정법원의 미래

조아라 I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점점 빠져들어요. 그 지침서를 저도 잘 참고하고 있습니다. 가정법원에서 일하면서 또 컨퍼런스를 하면서, 또 오늘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것들이 전국 곳곳 지방법원까지 다 전파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균질적인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조사관님들 수도 부족하고 서울가정법원에서 구축해 놓은 제도가 안착하지 못한 곳도 많잖아요. 얼마 전에 조영호 수석부장님과 후견사건 워크샵에 다녀왔는데 지원 단위에서는 사법접근성 차원에서 소외되는 게 많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런 문제들이 서울가정법원의 목소리로 알려져서 전국민이 균질한 사법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우리 역할인 것 같습니다.
유지현 I 맞아요. 어떤 제도든 사회 저변으로 넓혀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행히 요즘 작은 지원에도 면접교섭센터가 생기더라고요. 면접교섭이 일반화되면 다음 화두로 공동양육이 다뤄지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면접교섭센터가 제 역할을 열심히 다해야겠어요.
정승원 I 제가 오늘 지난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옛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이선미 부장님이나 제가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계속 이어주고 싶어서거든요. 다시 한번 가정법원의 일이 절대로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라는 거 강조드리고요. 제가 부모교육을 할 때 부모님들 표정을 보려고 될 수 있으면 참관을 했어요. 100번 정도 참관한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조사관님들 말씀할 때 똑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보이세요. 어느 부분에서 우는지, 왜 우는지, 직접 보면 판결이 달라집니다. 필요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판사님들께서 발로 뛰셨으면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심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역할을 판사님들이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아라 I 네, 부장님 이야기 듣고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코로나19 때 와서 부모교육이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됐거든요. 그런 시대에 시작해서 현장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송현종 I 코로나19 이후에 우리 가정법원의 강점이라는 법관과 조사관의 유기적 소통이나 만남이 많이 줄긴 한 거 같아요. 공식적인 자리만 있는 건 아니고 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동호회도 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인간적인 친밀감이 생기면 쉽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다시 그런 시간을 찾았으면 하고요. 우리 가정법원이 21세기에는 복지를 넘어 인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법원으로 가정법원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동북아 최고의 가정법원, K-패밀리 코트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선미 I 정리 말씀을 하시니, 저도 오늘의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말씀해 주신 분들 열정의 원동력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우리 가정법원은 사건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왜 가정법원이 있고 가족법이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어요. 우리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가정을 지킴으로 사랑이 유지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지치지 말고 계속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그러기 위해 서로 사랑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어린이, 젊은이들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마음으로 모두 지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영호 I 가정법원의 미래가 밝을 거라고 봅니다. 가사소년전문법관의 층이 두터워진 게 제 예측의 근거인데요. 정승원 부장님 이후 조아라 판사님까지 같은 고민을 하는 그룹이 형성됐잖아요. 그분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광주가정법원에서 4년, 서울가정법원 2년 근무를 했는데, 늘 보람을 느꼈어요. 이곳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곳이잖아요. 면접교섭센터장을 할 때 자신의 처지가 변변치 않다고 생각해 아이를 못 만나던 아빠가 있었어요.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면접교섭센터에서 만나서 아빠의 진심을 듣게 됐어요. 아빠가 버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 희망이 생겼어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은 거죠. 그런 걸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든 소송에는 승패가 있지만 가사사건은 전부 이기든지, 전부 지는 소송입니다. 앞으로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원고와 피고 모두 이기는 소송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또 열심히 나아가 봐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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