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 2] 해방촌, 독립서점 탐방기

마음껏 에세이 2   I   해방촌 독립서점 탐방기

글 조은비 실무관(법원도서관)


해방촌 독립서점 탐방기

서울의 상징인 남산서울타워 아래로, 해방 후 피난민들이 자리 잡아 ‘해방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가지게 된 동네가 있다. 언덕이 너무 높아 눈 내리는 겨울엔 버스도, 오토바이도 다니지 못한다는 옛 달동네. 지금은 인근 이태원에서 넘어온 외국인들과 작고 오래된 주택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물씬 살리는 가게들로 채워져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곳에 젊은 친구들이 자주 찾는다는 곳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촘촘히 모여 있는 독립서점들이다. 일 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의 비율이 50%도 안 되는(2021년 기준) 극악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디바이스와 영상 매체에 더 친숙한 젊은이들이 찾는 서점의 매력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매일 매일 책을 마주하지만, 일터의 연장선이 아닌 휴식과 취미의 공간으로 독립서점의 매력을 탐구해보고자 해방촌 나들이에 나섰다.

스토리지북앤필름 
[스토리지북앤필름] 용산구 신흥로 115-1스토리지북앤필름 

해방촌 언덕 중간 즈음 자리 잡은 해방 교회를 마주보고 있는 스토리지북앤필름. 비탈길 대로변에 자리한 아담한 독립서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절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향냄새가 반겨준다. 은은한 향내에 적응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데, 어쩌면 향은 천천히 둘러보고 가라는 사장님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역시 독립서점답게 대형 서점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을 컬렉션들이 가득하다. 잠깐 토막 도서관 지식을 공유하자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책에는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도서 번호)이라는 도서 고유의 식별 번호가 붙는다. 각 출판사들이 책을 펴내면서 구분이 쉽도록 책 주민번호를 부여하는 셈인데, 독립서점에는 이 ISBN이 없는 책들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등록을 하지 않거나 홀로 출판한 책들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독립서점이기 때문이다.

 

책제목 그렇기 때문에 <키스 못한지 5년째>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잡문집이나, 강아지 그림을 손바닥 사이즈의 종이에 그린 게 전부인 <바쁘고 행복한 강아지야> 같은 책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는 서점 이름처럼 ‘북’ 말고도 ‘필름’ 즉 사진에 관한 책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사장님이 사진집을 출판하며 독립서점 운영에 뛰어들게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체 독립출판 강의나 독서 관련 클래스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법원 내 작가 지망생이 계시다면 두드려보기를 추천한다.

 

고요서사 고요서사
[고요서사] 용산구 신흥로15길 18-4

왠지 정숙을 유지한 채 둘러보아야 할 것 같은 이름의 서점 고요서사는 문학 전문 독립서점이다. 신흥시장 뒤쪽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나오는 자주색 벽돌이 친근한 건물들 사이에 자리해 있다.  
고요서사문학 전문 서점답게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등의 출판사에서 펴낸 문학 시리즈들을 전시해두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데스크에는 작가별 인터뷰와 평론이 소개된 매거진들이 가득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와 에세이들을 모아 볼 수 있는, 문학 팬들의 성지(聖地)가 아닐까?
서가도 작가별로 구분해 정리해 두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구매(flex)할 수도 있고, 깜빡하고 놓친 신작이나 빼먹은 작가의 컬렉션을 채울 수 있는 큐레이션이다. 계산대 옆으로는 베스트셀러 소설의 문장이 담긴 엽서도 판매하고 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은 몽글몽글한데,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인 사람들에게 딱일 것 같았다.  고요서사에는 또 포장지로 꽁꽁 묶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게 밀봉해 둔 블라인드 북도 판매하고 있다. 사장님이 자필로 직접 책을 설명하는 키워드만 적어두셨는데, 어떤 책일지 읽기 전부터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모여 젊은 친구들이 독립서점을 찾게 되는 것 같았다.

 

 

프린북스 

[포린북스] 용산구 녹사평대로 208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서점 포린북스. 40년 가까이 영업하고 있는 이태원 터줏대감으로, 프린북스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서점이라고 한다. 외국 중고 서적들을 구매·판매하고 있는 곳인데 40년이라는 시간만큼 촘촘히 쌓여있는 책 더미가 정겹기도 하고 금방 쓰러질까 염려되기도 하는 재밌는 곳이었다.
국내 대형 온라인 서점들이 운영하는 중고 서점에도 원서를 취급하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들어갔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여 있는 책의 양에 깜짝 놀랐다.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아마도 베테랑 직원인 것 같았다. 책 이름만 말해도 1초 만에 정확한 위치를 술술 설명해주시는데, 애정을 가지고 책 한 권 한 권을 정리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해리포터와 같은 유명 시리즈들은 1권부터 묶음으로 저렴히 구매할 수 있었다. 중고 서점의 좋은 점은 저렴한 가격도 있지만, 이제 더는 보이지 않는 추억의 책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어릴 적 EBS 만화 영화 시리즈로 접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던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를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는데, 그 옆으로는 보관상태가 양호한 ‘월리를 찾아라’가 저렴한 가격에 얌전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빠지도록 친구들과 책에 코를 박아가며 월리를 찾던 추억이 떠올라 마스크 속으로 킬킬댔다.
법원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 아동 도서는 구매하지 않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물찾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손에 몇 권의 책들이 들려있었다. 과연 책방을 나선 후에도 책을 펼쳐 원서 읽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중고 서점의 치명적인 가격 홍보에 지갑을 열고 말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라면 원서로 된 동화책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추천한다.

해방촌 독립서점들을 둘러보며, 각각의 서점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진하게 뿜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분야별 베스트셀러와 수험서들로 빼곡한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과 숨은 보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근무에 지친 법원 식구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병아리 사서 실무관의 독립서점 탐방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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