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 이야기] '회화나무'에 깃든 선비정신

창덕궁 돈화문 안쪽의 회화나무 

 

 

리 법원 이야기

글 소재용 조사위원(법원도서관)

‘회화나무’에 깃든 선비정신 법마루 정문 앞의 회화나무
‘법마루’는 법원도서관의 중앙열람실 1, 2, 3층을 아울러 일컫는 고유한 이름이다. 법원도서관의 이전·개관(2018. 12)에 발맞춰, 경기도 일산으로 근무지가 변경되었다. 여러 변화가 뒤따랐지만, 얼핏 수목원(?)처럼 넓고 자연 친화적인 사법연수원 구내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사무실이 위치한 사무동에서부터 본관동(중앙홀 등)을 거쳐 후생관과 체육관, 그리고 숙소동(청연재)과 법관연수동에 이르기까지 각 건물 2층을 통해 연결되는 복도의 좌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장관이다. 물론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이하 ‘서초동 청사’로 약칭함) 내의 수목들이야말로 조경의 진수라 할 만큼 일품이다(이에 대해서는 「법원사람들」 2014년 10월호 “간절한 그리움, 백일홍으로 피어나다”에서 소개한 바 있다).
잠시 서초동 청사와 사법연수원 청사(인접한 고양지원도 포함시켜 ‘일산 청사’로 약칭함) 내 수목들을 조감해 보기로 한다. 사법부를 지켜주는 ‘늘푸른 나무’인 소나무(반송, 백송 등 포함), 잣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두 곳 모두 한결같다. 또한 대나무(신우대)와 무궁화, 매화, 살구, 목련, 진달래, 철쭉, 회양목, 라일락(수수꽃다리), 불두화, 향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계수나무, 산수유, 산딸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자귀나무, 벚나무, 명자나무 등도 어디에나 공통된다. 하지만 목백합(일명 튤립나무)과 칠엽수(마로니에), 영춘화, 빨강 덩굴장미 등은 서초동에서 특히 돋보이고, 편백나무(실편백), 자작나무, 은행나무 등은 일산에서 유독 눈에 띈다.
솜사탕 같은 꽃숭어리를 가득 피우는 목백일홍(배롱나무)은 서초동 청사에서 여름 내내(약 100일간) 화사한 자태를 뽐내지만, 일산에서는 작은 나무들만 볼 수 있을 뿐이어서 아쉽기도 하다. 반면 일산 청사에는 하늘 높이 뻗어 오르는 메타세쿼이아가 곳곳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눈부신 꽃과 열매를 선사하는 꽃사과나무가 흔히 눈에 띈다.
그리고 일산 청사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회화나무’다. 회화나무는 우선 ‘법마루’의 정문 양쪽에 상당한 크기의 6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숙소동인 ‘청연재’의 가동과 나동 사이에도 8그루가 일렬로 서 있고, 고양지원 5번 출입구(청연재 방향) 바로 앞에도 2그루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사법연수원 후문(지하철 마두역 방면) 쪽이자 고양지원 정문 쪽 도로인 ‘장백로’의 양옆에는 아예 가로수로 줄지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5대 거목(巨木) 중의 하나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이며,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등장하는 나무), 왕버들과 더불어 이른바 ‘5대 거목(巨木)’에 속한다(임경빈, 「나무백과 3」, 2019, 서울대 출판문화원, 306면). 거대 수종인 회화나무는 굵고 오래된 줄기에 ‘둥근 덩어리’, 즉 옹두리가 흔히 생겨 ‘괴목(槐木)’(槐는 塊와 마찬가지로 덩어리를 의미) 또는 ‘괴(槐)나무’로 부르며, ‘회나무’, ‘홰나무’, ‘호야나무’법마루 앞 회화나무, 6그루 중 하나 등으로도 불린다. 부산의 ‘괴정동(槐亭洞)’은 회화나무 정자목이 있는 데서 그러한 지명이 유래했다 하며,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는 수령 약 600년의 노거수(老巨樹)를 그곳 사람들은 ‘호야나무’로 부른다 한다.
‘회화(櫰花)나무’라는 이름은 괴(槐)의 중국식 발음 ‘회’에 꽃 ‘화(花)’를 붙인 것으로, 꽃이 특히 황색염료(루틴, Rutin)나 약으로 쓰였기 때문에 꽃을 돋보이게 한 작명이다(임경빈, 앞의 책, 306면; 강판권, 「나무열전」, 2014, 글항아리, 113면).
회화나무의 꽃은 아카시아(5월에 개화)보다 훨씬 늦은 여름(7~8월경)에 황백색 내지 황록색으로 핀다. 그 꽃을 괴화(槐花)라 하고, 회화나무를 ‘괴화목(槐花木)’, ‘괴화수(槐花樹)’로 부르기도 한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는 괴미(槐米, 회화나무의 쌀)라 부르고, 콩이나 구슬을 줄에 꿰어놓은 듯한 꼬투리 모양의 열매는 괴실(槐實) 또는 괴각(槐角)이라 한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는데, 여름엔 나무에서 연둣빛의 꽃비, 녹우(綠雨)가 내려 쌓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강판권. 앞의 책. 113면). 회화나무 꽃의 꽃말은 ‘망향(望鄕)’이다. 고향에 돌아가기를(歸≒槐) 그리워하듯,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懷≒櫰) 그리워하게 된다는 의미에서다.
회화나무의 잎사귀 모양은 아카시아(정식 명칭은 ‘아까시나무’)와 아주 흡사하나 그보다는 한참 늦게 잎이 난다. 잎이 늦게 나는 나무들 중 대표적인 것은 자귀나무인데, 회화나무도 배롱나무, 대추나무처럼 잎이 늦게 돋아난다. 이러한 나무들은 오래도록 내공을 쌓은 후에 비로소 잎과 꽃을 피우므로 그 꽃도 또한 오래가는 것으로 여겨져 눈길을 끈다.

 

 

서울 중구 정동의 회화나무화나무로 유명한 곳
구 대법원청사 인근의 서소문 정동길에는 수령 500년을 훌쩍 넘는 ‘정동 회화나무’가 있다. 이 고목(古木)은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1976년 지정 당시의 수령이 520년), 거대 수종인 회화나무의 전형적인 특징(옹두리 등)을 잘 보여준다.
회화나무는 또한 궁궐에서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창덕궁은 회화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궐내 곳곳에 분포하고 있지만, 특히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 행각 앞에 3그루, 안쪽 금호문 앞에 고목 1그루, 그리고 오른쪽 금천(金川) 옆에 4그루 등 8그루의 울창한 회화나무 군(群)이 방문객을 압도하듯 맞아 준다. 모두가 천연기념물이며, 수령은 약 300~400년이다. 이처럼 돈화문 안마당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회화나무)을 심고 그 아래에서 삼공(三公, 3정승)이 나랏일을 논했다.’는 중국 고사에 기인한다고 한다(임경빈, 앞의 책, 305, 307면 등). 창경궁에도 오래된 회화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명정전 남쪽 행각 광정문 밖에 있는 1그루는 수형이 우람한 아름드리 나무이다(다만 큰 줄기가 두 부분으로 갈라져 연결장치로 고정되어 있다). 반면 선인문 앞 금천 옆의 고목 1그루는 줄기가 휘고 뒤틀린 채 속까지 완전히 비어 있는 특이한 형상인데, 일찍이 사도세자의 비극을 목격한 탓에 속이 까맣게 썩어버린 때문이라 추측하기도 한다(박상진, 「궁궐의 우리 나무」, 2014, 눌와, 232~233면). 또한 반대편 쪽 연못(춘당지)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줄기 및 뿌리에서 서로 엉켜 합체된 연리목(連理木)도 볼 수 있다. 회화나무가 느티나무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이 나무를 두고, 어머니 혜경궁과 아들 정조가 살얼음판 같은 궁궐에서 서로를 의지하던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 한편 덕수궁에도 석어당(昔御堂) 뒤편에 매우 큰 회화나무가 있다.

 

창경궁의 회화나무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 앞마당에도 기품 있는 회화나무가 있다. 본래 이곳은 오래된 은행나무로 더 명성이 높지만, 회화나무도 동재와 서재 앞에 각각 1그루씩 서 있어 성균관 유생들의 학문 공간이었던 명륜당의 품격을 더해 준다.


종로구의 조계사 내 회화나무도 매우 유명하다. 대웅전 앞마당을 온통 덮을 만큼 웅장한 크기이며, 수형도 빼어나고 가지도 울창하다. 수령은 약 400년인데, 매년 사월 초파일에는 오색 연등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그 앞쪽에 위치한 옛 우정총국 앞마당에도 멋스러운 회화나무 고목이 있고, 조계사 후문 쪽의 옛 보성사(普成社) 터에도 큰 회화나무가 그곳을 사수하고 있다. 보성사는 3·1운동 당시 극비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낸 역사적인 장소이다.

 

 

 

 

 

 

 

회화나무의 꽃 사법연수원 후문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선비의 나무
회화나무는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이며, ‘학자수(學者樹, scholar tree)’ 또는 ‘선비의 나무’로 불린다(임경빈, 앞의 책, 305면). 학덕 높은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일뿐더러, 나뭇가지가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기상으로 뻗어나가 수형(樹形) 또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 선비들의 기개와 학자들의 자유로운 정신세계, 나아가 학문의 자유와도 상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박상진, 앞의 책, 233면; 강판권, 앞의 책, 118면). 고대 중국에서는 선비들의 묘역에도 회화나무를 심었다 한다. 사대부의 고택이나 선비·유생들의 집, 서원, 서당, 사찰, 궁궐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사대부가(士大夫家)로, 고택 주변의 청룡길·백호길에 낙락장송을 병풍처럼 거느린 강릉 선교장 안에도 열화당 뒤쪽에 회화나무 고목이 있어 이채롭다(강릉시 보호수이며, 수령은 약 570년).

 

회화나무 열매, 법마루 정문예전에는 ‘회화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다투는 사람들의 송사(訟事)를 듣고 정(情)을 실(實)로 돌렸다(樹槐 聽訟其下, 槐之言歸也 情見歸實也).’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건을 다룰 때 사사로운 정을 떠나 사실을 밝히고 진실에 따라 처리하는 방향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회화나무가 ‘진실로 돌아가게(歸≒槐) 하는 기능을 가진 나무’라는 뜻으로도 풀이되며, 이처럼 회화나무는 정직성·공정성·진실성의 상징으로 존귀한 자리에 있었다(임경빈, 앞의 책, 307~308면).
이처럼 귀한 나무인 회화나무가 ‘법마루’ 앞에 자리 잡게 된 뜻은 무엇일까? 이곳은 원래 사법연수생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법서를 탐독하며 전문지식을 연마하던 사법연수원 강의동 자리였다. 현재 법마루 1층 중앙에는 사법부의 3가지 이념, 즉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걸려 있다. 법마루를 상징하는 캐릭터 ‘반디’도 초롱초롱한 두 눈과 깜찍한 모습으로 반딧불이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법마루의 앞쪽에 회화나무가 있고, 반짝반짝 반디가 열람실 내부를 훤히 밝혀 주니, 흰 눈이라도 내려 주변에 쌓이면 책을 통해 ‘형설(螢雪)의 공(功)’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리라.
바야흐로 진정한 선비의 모습과 고결한 선비정신이 너무 귀하고 또 그리운 시대이다. 대쪽 같이 곧고 용기 있는 선비, 정직하고 지조 있는 학자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자연(自然)은 말 없는 성인(聖人)이고, 성인은 말을 하는 자연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무릇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그에 대한 해답은 자연을 본받으려는 청정한 마음에 있고, 또 길(道)은 책 속에 있으리라. 그리고 법마루에 들어설 때면, 입구 벽면에 선명하게 붙어 있는 다음 글귀와 항상 마주하게 된다.
“여기는 법이 가는 길, 책으로 밝히는 ‘법마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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