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기] 우리 집 오븐이 부풀려 준 행복의 황금비율

우리 집 오븐이 부풀려 준 

행복의 황금비율


글.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김은서 주무관



서류의 늪에서 탈출해 오븐 앞으로,

치유의 시작


법원의 아침은 언제나 정적이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시작됩니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산더미 같은 사건 기록들과 서류들, 그리고 가끔은 민원대 앞에서 마음에 커다란 도를 닦게 만드는 수많은 민원인까지. 종일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고 행정 지원을 하다 보면, 퇴근길 즈음엔 영혼이 탈탈 털려 껍데기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법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무거움과 치열한 스트레스 속에서 저를 구원해 준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퇴근 후 또는 주말마다 열리는 저만의 작은 주방 아틀리에, ‘베이킹’이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아이들에게 직접 간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나 주말 아침, 하얀 밀가루를 팍팍 체 치고, 달걀을 사정없이 풀고, 설탕을 쏟아부으며 반죽을 마구 치대다 보니 신기하게도 낮 동안 쌓였던 격무의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키보드와 마우스만 두드리던 서늘한 손끝으로 말랑말랑하고 온기 있는 반죽의 질감을 만지고 있으면, 법원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주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집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버터 향은 낮 동안 법원에서 잔뜩 굳어 있던 제 뇌세포들을 말랑하게 깨워주는 최고의 피로회복제입니다. 특히 오븐 문을 열고 갓 구워낸 소시지빵이나 달콤한 딸기케이크를 내놓을 때, 제 최고의 팬이자 가장 엄격한 평론가인 두 딸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옵니다. “엄마, 이거 진짜 최고야!”라며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 우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낮 동안 쌓인 업무 피로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멋진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제 베이킹이 주는 첫 번째 행복이자 일상을 버티는 원동력입니다.



남편을 위한

달콤한 내조


법원에 다니는 사람치고 꼼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지만, 저 역시 직업병 때문인지, 홈베이킹을 할 때도 제 저울은 늘 소수점 아래까지 정확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밀가루 몇 그램, 베이킹파우더 0.5그램의 미세한 차이로도 결과물의 식감과 모양이 완전히 달라지는 베이킹의 세계는 참 정직합니다. 

그동안 제 손을 거쳐 간 메뉴들만 해도 화려합니다. 밤새 정성껏 끓인 얼그레이 시럽과 찻잎을 듬뿍 넣어 은은한 향이 일품인 얼그레이 케이크, 초코칩 쿠키, 진하고 꾸덕한 풍미로 입안을 감싸는 치즈케이크까지, 제 주방은 늘 달콤한 실험실이었습니다. 사실 전문 베이커리 매장에서 파는 것처럼 자로 잰 듯 반듯하고 화려하게 예쁜 모양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모양이 조금 투박하기도 하고, 구움색이 일정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화려함 대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 가득 행복이 퍼지는 ‘정직한 맛’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보장했습니다.

이 기다림과 정성의 미학은 제 법원 생활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부부가 같은 일터에 다니다 보니 서로의 격무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은 부부 동반으로 영혼이 가출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남편이 유독 까다로운 부서 업무나 대형 민원에 시달려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날, 저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해 오븐의 온도를 올립니다.

주말 동안 남편이 좋아하는 고소하고 쫄깃한 베이글을 데치고 구워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짭조름한 소금빵을 함께 만듭니다. 모양은 조금 삐뚤빼뚤할지언정 온 정성을 가득 담아 구워낸 빵들을 식탁에 올리면 남편의 얼굴에 가장 먼저 환한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오늘 고생 많았지?”라는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정성 가득한 휘낭시에 한 조각이 남편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응원이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오븐은 우리 부부가 법원이라는 치열한 일터에서 함께 지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든든하고 달콤한 연료 보급소인 셈입니다.



“파는 것보다 맛있다!”

법원에 퍼지는 달콤한 소통과 기쁨


손재주가 조금씩 늘어가면서 제 오븐은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이제 제 베이킹은 우리 가족들만의 소박한 행복을 넘어, 매일 고생하는 우리 법원 동료들에게 소소한 행복과 활력을 배달하는 가장 소중한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주말 내내 정성껏 모양내 구워낸 상투과자, 노릇노릇한 휘낭시에,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구움과자 박스를 양손 가득 들고 출근해 사무실과 과방 테이블 위에 슬며시 올려둘 때의 짜릿함은 베이킹을 하는 사람만 아는 특권입니다.

처음에는 모양이 기성품처럼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서 동료들이 그저 예의상 맛있다고 해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동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은서 주무관님, 이거 진짜 주무관님이 구우신 게 맞아요? 웬만한 유명 베이커리 빵보다 훨씬 맛있어요!”, “모양은 홈메이드인데 맛은 완전 천상의 맛이네요. 파는 것보다 백배는 맛있어요!”라며 동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줄 때마다 제 가슴은 터질 듯한 보람으로 가득 찹니다. 화려한 장식은 없어도 재료의 아낌없는 풍미와 정성이 입안에서 정직하게 전해진 덕분이겠지요. 무거운 사건과 복잡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미간에 주름이 팍 가 있던 과장님과 계장님들이 제 정성 가득한 얼그레이 케이크 한 조각, 촉촉한 치즈케이크 하나를 맛있게 드셔주시는 모습을 볼 때 제 기쁨은 배가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 빵을 먹고 동료들이 감탄할 때마다, 옆에 있던 제 남편의 어깨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는 점입니다. 동료들이 “계장님은 좋으시겠어요, 매일 이런 맛있는 빵을 드시니 너무 부러워요!”라고 칭찬을 건네면, 남편은 짐짓 덤덤한 척하면서도 입꼬리를 숨기지 못합니다. 그리곤 메시지로 이 소식을 아이처럼 해맑게 저에게 전달해 줍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아내 칭찬을 들으며 한껏 뿌듯해하고 어깨가 으쓱해진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제 베이킹이 주는 아주 커다란 즐거움이자 행복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파하거나 레시피만 나열하는 지루한 취미였다면 진작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베이킹은 법원 생활 속에서 숨구멍을 틔워주는 작은 대피소이자, 차가운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동료들에게 달콤한 정과 행복을 나누는 가장 완벽한 소통창구입니다. 내일도 출근해서 열심히 서류를 검토하고 법원의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제 마음속엔 벌써 ‘이번 주말에는 어떤 빵을 구워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두 딸과 남편, 그리고 언제나 법원을 지키느라 고생하시는 동료 여러분! 이번 주도 모두 힘내시고, 조만간 또다시 맛있게 열릴 제 행복한 오븐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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