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뜰]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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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뜰]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2025.11.04

글. 이성하 서울가정법원 광역센터 환경관리원

서울가정법원 광역면접교섭센터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아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여기는 경기도 구리시 건원대로34번길 20. 서울가정법원 광역면접교섭센터가 위치한 곳이다.

부모가 이혼하였거나, 이혼 소송 중인 미성년 자녀들이 6개월 동안 매월 2차례 떨어져 지낸 부모를 만나는 공간이다.

행복한 만남________마음을 잇는 공간

#면접교섭센터

나는 2024년 3월, 개소할 때부터 현재까지 공무직으로 근무하는 환경관리원이다. 나이 어린 갓난이에서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 자녀들은 부모의 면접교섭 신청에 따라 이곳에서 혈육의 정을 나누며 잠시나마 평소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확인한다. 하얀 철대문과 ‘이음누리’라는 빨강, 파랑, 초록의 벽면 표지판을 바라보면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로 여겨질 법원이라는 울타리에 조금 편하게 다가서도록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400여 평의 대지에 200평 정도의 건물이 들어선 앞쪽 화단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아이와 부모들을 반겨준다. 봄에 하얀 벚꽃들이 떨어진 아스팔트 바닥은 점점이 분홍 꽃 이불이 된다.

면섭교섭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즉 전일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토요일과 일요일에 집중되어 있다. 비양육자와 자녀는 상담위원과 가사조사관의 안내를 받아 네 개의 면접교섭실(이음1방, 이음2방, 누리1방, 누리2방)에서 1시간가량 머물며 비치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들을 이용해 서로 교감을 나누게 된다. 매주 월요일 새벽 출근하자마자 놀이방 문을 열어 젖히면 주말에 있었던 만남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온다. 볼풀에 뛰어들거나, 인형, 보드게임, 자동차, 축구공과 골대, 볼링, 종이찰흙, 스케치북과 색연필, 놀이용 주방기구 등 방마다 비치된 갖가지 도구들을 가지고 놀았을 테고, 넓은 원형 쇼파와 트램펄린에서 주름진 마음을 펴거나 전자게임기로 게임도 하고 노래방에 들어가 실컷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아빠는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자녀에게 얘기하고, 아이는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1시간 동안 뭉친 응어리를 어찌 다 녹여낼 수 있을까? 조금씩, 조금씩 만날 때마다 서로 다가가고 확인해 가며 위로해 주고 사랑의 손길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아빠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기를 원할까? 엄마는 또 무슨 표정을 지었으면 좋을까? 부착식 헝겊 재질의 양쪽 부모 얼굴 바탕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눈, 코, 입, 눈썹, 콧수염을 갖다 붙인다. 화난 얼굴, 웃는 얼굴, 웃긴 얼굴…. 아이들은 제 각기 다른 모습을 남기고 돌아간다.

스케치북은 아이들이 마음속 생각과 느낌과 희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의 관계에 대해 잘못 자리 잡은 상태를 표현하거나 의미 없는 모양으로 덧칠하기도 하며, 나무나 하늘 등 자연에 관한 그림도 있다. 실내놀이터에서는 아빠와 아들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하나, 때로 어색한 분위기에 부모나 아이가 서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기가 어렵기도 하다.

이혼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고 아무 문제없이 성장한다고 할 수 없듯이,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모두 불행하고 걱정 속에 생활한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면접교섭의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부모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일시적이나마 위안과 평안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의미는 크다. 그들에게 이런 면접교섭의 기억들이 장차 살아갈 미래 세상에서 힘이 되고 비빌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른 봄, 센터에 들어서면 화단과 마당 곳곳에 노란 씀바귀 꽃이 피어있다. 꽃잎은 아이들의 눈망울처럼 작고, 여린 잎사귀들은 꼭 아이들의 마음을 닮은 듯하다. 녹화사업을 한 옥상에는 기린초, 맥문동, 에메랄드그린 같은 식물들이 폭염과 추위 속에서도 잘 견뎌내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짧은 시간이나마 꽃과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늘졌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마음과 얼굴이 활짝 펴져 밝고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한바탕 놀고 돌아간 놀이방을 치우고 정리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치유받고, 잠시 쉬어갈 수 있기를, 뜨거운 여름 햇볕을 견디며 뿌리를 내리고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 노란 꽃을 피워내는 기린초처럼 다가올 모진 풍파에 맞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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