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뜰] 피크민 크레이지러버스 클럽

삶과 공간

글.  박정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주무관


또다시 하루가 바뀌는 오전 열두 시. 나와 룸메이트 후야 언니의 첫마디는 다름 아닌 버섯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버섯에 들어간다고?’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몰라 웅성웅성 댈 터. 

홍성은 지금 피크민 열풍이다.

(*본 글의 실명은 게임 닉네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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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시간은 점심 먹고 12시 10분 1층 로비 앞. 주무관을 비롯하여 계장님들까지 모이는 이 시간은 법원 근처를 산책하면서 꽃을 심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꽃을 심는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시겠죠? 피크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Pikmin Bloom(피크민 블룸)이라는 게임 속에서 피크민 캐릭터들을 모으고 키우고 밥 주고 진화시키고 산책하고 꽃 심고 버섯을 탐험하는데, 이 모든 것이 걸어야지만 진행이 되는 산책 게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더운 여름날에 땀 뻘뻘 흘리면서 산책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산책이 주고, 꽃 심기가 부차였는데 어느 순간 주객전도가 되어버려 내가 꽃 심으려고 회사를 가는 건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꽃 수호대는 점심시간마다 법원 근처에 있는 새싹들을 다른 사람들이 먼저 꽃으로 피우기 전에 사수하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어느 날은 나와 ‘클!’ 계장님만 약속이 없어서 둘이서 그 많은 새싹들을 수호하러 갔었지만 역부족이었다. 300송이를 심어야 만개하는데 둘이서만 같은 자리를 맴도니까 GPS가 같은 곳에 심었다고 안 심어지게 인식해 버린 것이다. 홍성의 꽃 수호대 2인조는 여섯 송이밖에 지키지 못하고 HP를 다 소진한 채 법원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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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수호대는 어느새 버섯 수호대로 확장되었다. 버섯을 깨려면 힘센 피크민부터 차례대로 보내서 공격해야 되는데 그런 우리 앞에 강력한 유저가 나타났으니 이것을 ‘윤양갱 사건’이라고 칭하겠다. 버섯은 최대 다섯 명의 유저가 함께 파티를 맺어서 공격하는데 전투력이 셀수록 합계 점수가 높아지고, 점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우리 2층 사무실 사람들은 점수를 높여서 별 3성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들어가는데 언젠가부터 눈에 띄는 사람이 생겼다. 이 사람의 닉네임은 ‘윤양갱’. 늘 아침마다 모든 버섯에 하나씩 들어가 있는데 심지어 전투력도 낮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홍성지원 피크민 부대의 난제는 현재 진행 중. 우리는 버섯이 새로 태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대기를 타고 서로 들어오라고 말하거나 초대를 보낸다. 나와 후야 언니는 오전 열두 시 정각이 될 때까지 대기를 타다가 후다닥 방에서 뛰쳐나와 버섯 들어오라고 소리친다. 요즘은 거기서 더 발전해 둘이 거실에 같이 누워서 아예 대기하고 있다. 주말에만 뜨는 거대 버섯은 보상을 더 많이 주는데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주말에 거대 버섯에 들어가려고 새벽까지 못 자는 사람들, 심지어 누가 초대해 줄까 봐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잔다고 하신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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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피크민 친구는 6월까지 홍성에 있던 ‘쮸우우욱’ 선배님이다. 선배님과 둘이서 산책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피크민을 한다고 화면을 보여주셨다. 2025년 1월 23일 피크민 친구가 생긴 역사적인 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을 목도할 때마다 뒤편에 몰래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좋아하게 됐을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날을 고이 묻어둔다.

홍성의 금요일 6시 29분 용산으로 가는 무궁화행 열차는 미리 끊어놓지 않으면 금방 매진된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재판이라 하필 취소표도 못 구해놔서 포기했는데 쮸우우욱 선배님이 취소표를 구해주셨다. 돈은 보내지 말라고 거절하셔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유럽여행에서 얻은 파리 디즈니랜드 피크민 엽서를 보내려고 하는 찰나 “이게 뭐야?” ‘달딸기’ 선배님이 물어보셨다. 쮸우우욱 선배님이 피크민을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혼자 하는 게임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피크민 친구가 되었고, 옆자리 ‘실라’ 선배님도 다 같이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1층 ‘김장용새우젓’ 계장님까지 합세해서 매주 월요일마다 10만 보를 걷고, 꽃 3만 송이를 심는 미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피크민의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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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하게 될 줄 알았을까. ‘승♡동♡정’ 계장님은 피크민을 한 달 정도 같이 하시면서 3kg이 감량되었다. 하루에 6천 보도 걷지 않았던 사람들이 1만 보 이상씩 걸으면서 자동으로 운동하게 만드는 게임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만 이제 다들 2만 보는 거뜬하다며 나날이 체력이 느는 게 보인다고 한다. 나 또한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대로 나는 오히려 꽃을 안 심었다. 혼자 했을 때도 같이 하게 됐을 때도 우직하게 걷기만 했다. 퀘스트도 여유롭게 깼다. 나에게 피크민은 힐링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둘씩 내 레벨을 제쳤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5월에 시작하신 계장님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내 레벨이 57일 무렵 그분들은 두 달 만에 50, 51이 됐다. 3층에 올라갈 때마다 “계장님 그만 좀 걸으세요.”를 외쳤는데 클! 계장님도 ‘해피쩡이’ 계장님이 바짝 치고 올라와서 어쩔 수 없다고 하셔서 “해피쩡이 계장님 휴대폰도 뺏어야겠어요.”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나에게 “주무관님 57은 못 따라잡아요.”라고 한 지가 한 달 전인데 지금 나는 66, 클! 계장님은 63, 해피쩡이 계장님은 62가 되셨더라. 먼저 한 사람의 자존심이 있지! 후야 언니와 밤마다 산책을 하고 다녔다. 언니도 언니만의 경쟁자가 있었고, 나도 나만의 경쟁자들이 있었기에 한 달 정도 무더운 7월에 레벨업을 한다고 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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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피크민 데코가 귀여워서 혹은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을 모으는 게 좋아서 한다는데 우리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마다 산책하고 새벽 세 시에 잤다. 힐링 게임이 내 안에서 변질된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승부욕이 발동돼서 멈추기가 어렵다. 모두들 서로 견제하고 있는 자신만의 경쟁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좀 많다. 네 명. 이분들은 특히나 더운 여름에 무리하지 말고 걸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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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특히 피크민을 하면서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 피크민이 아니었더라면 수줍게 인사만 하고 지나갔을 계장님들과 말 한 번 더 건네어 보고, 전출 가서 이제는 보기 힘든 분들과 매주 산책 미션을 함께 하고, 여행 갔다가 피크민 랜선 친구가 된, 얼굴도 모르는 국적 불문의 사람들과 동네 엽서를 주고받는 일련의 교류가 사랑스럽다. 나는 대전으로 가신 분들이 피크민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그렇듯 홍성에서 함께 했던 시절의 소중함을 그들 또한 피크민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추억하는 것만으로는 힘이 없어서 나는 그들을 버섯 초대 확성기로 하염없이 홍성에 부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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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뜨는 알림으로 안부 인사를 전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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