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뜰] 제주 추자도 올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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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삶과 공간

글. 박미경 서울서부지방법원 행정관

제주에서 배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추자도는 두 가지 올레길 코스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코스인 18-1 코스는 상추자도의 추자면사무소에서 시작해 추자등대를 지나 돈대산 정상까지 이어지며, 총 11.4km의 길이다. 두 번째 코스인 18-2 코스는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시작해 대왕산 황금길을 지나 상추자도의 추자면사무소로 돌아오는 9.7km의 길이다. 이 두 코스는 다른 올레길에 비해 난이도가 높아 당일치기로는 걷기 힘든 길이라서 계속 미루다 보니, 결국 올레길 완주를 앞두고서야 도전할 수 있었다. 세 달 전부터 비행기를 예약하고 한 달 전에 배편 예약과 추자도에서 하루 묵을 민박집을 예약하고 우리가 걸을 올레길 18-1 코스와 18-2 코스를 둘러보며 설레는 마음과 들썩거리는 몸을 겨우 가라앉히며 그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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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추자도는 제주도에서 45km, 해남에서는 35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근에는 추포도, 횡간도까지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있어 섬 속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추자도는 예로부터 고급 어종이 많이 잡혀 바다 낚시에 대한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 추자 올레코스가 생긴 후부터는 낚시꾼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섬이 되었다. 낚시꾼들의 성지이자 올레꾼들의 필수 코스인 추자도는 사실 낚시와 올레길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3월 7일 금요일 아침 8시 제주여객연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2시간 걸려 10시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했다. 제주항 근처에서 사온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10시 30분 하추자도에서 상추자도까지 가는 18-2 코스를 먼저 걷기 시작했다. 졸복산을 지나 대왕산 황금길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을 때까지, 오랜만에 걸으러 나온 올레길과 아름다운 추자도의 경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잔잔하게 출렁이는 바다에 비친 윤슬을 바라보며 너무 좋다는 생각에 소리도 지르고, 아름다운 경치를 담기 위해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에 담고 눈으로는 마음속에 담았다. 마치 10대 소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천천히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올레길을 온전히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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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을 오르고 바닷가 쪽으로 이어진 길을 걷다 마을로 내려오니 문득 눈에 들어온 국밥집 간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주전부리를 하며 걸었지만, 새벽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11시 30분부터 울리기 시작한 배꼽시계는 꺼질 줄 몰랐었다. 우연히 들어간 국밥집에서 고기국밥 한 그릇을 마치 아침부터 굶은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먹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힘을 내어 걷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로 접어들자 주황색 지붕과 다홍색 길이 눈을 확 사로잡았다. 마치 유럽 작은 마을에 와있는 듯한 이국적인 인상이었다. 이 마을의 지붕이 주황색인 이유는 제주의 상징인 한라봉을 연상해서 칠한 것이라 한다. 이곳은 묵리마을로, 2024년 9월부터 방영된 유해진, 차승원이 출연했던 tvN ‘삼시세끼 라이트’의 추자도편에서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TV에서 보던 곳을 눈으로 직접 본 마을은 아담했고 이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을길을 벗어나 다시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고즈넉한 길을 걸을 때는 나무 사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우리를 환영하는 듯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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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하추자올레길 중 대왕산 황금길

18-2 코스는 산봉우리를 넘나들며 드넓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길, 아늑한 해안 길과 산, 마을까지 볼거리가 많았다. 졸복산과 대왕산을 오르내리며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하추자 앞바다와 하늘은 서로 다른 푸른 빛깔로 펼쳐졌다. 이색적이었던 묵리마을을 지나 금파골로 들어서면 무성히 자란 숲 사이로 고요함이 바닷길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추자와 상추자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 상추자항에 도착, 올레센터 앞에 있는 도착 스탬프를 찍으며 5시간 만에 18-2 코스를 마무리했다. 민박집은 식당을 같이 운영해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 2번의 식사와 하루의 잠자리를 해결해 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 하루의 피로를 씻고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오늘 하루의 고단함과 내일의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3월 8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걸음을 멈출 수 없기에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9시 18-1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추자도에는 낚시와 올레길 외에도 나바론 하늘길(나바론 절벽길)은 꼭 가봐야 한다고 한다. 원래는 나바론 절벽이었으나, 이곳 절벽 위에 잔도길을 만들면서 명칭이 나바론 하늘길로 바뀌었다. 아찔한 나바론 절벽의 모습이 영화 ‘나바론 요새’에 등장하는 지중해 섬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18-1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코스가 힘들다는 올레꾼들의 요청으로 현재는 코스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바론 하늘길과 18-1 코스가 만나는 지점이 있어 두 곳을 모두 걸을 수는 있다. 우리는 당연히 나바론 하늘길부터 걷기로 했다.

수없는 계단길을 힘들게 올라 정상에서 해안 절벽을 바라보니,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신비로움과 멋스러움에 감격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힘듦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해안 절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옥빛으로 빛나며,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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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론 하늘길 위에서

나바론 하늘길을 걷다 추자등대에서 올레길 코스로 접어든 뒤 하추자도로 넘어간 우리는 돈대산 정상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산꼭대기에 있는 정자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가져온 주전부리로 당 충전을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직 바람은 거세고 차가웠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이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이 여름이 아님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배 시간에 늦을까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초리 기정길을 지나 급경사길을 거쳐 숲으로 들어선 길은 성지순례길이랑 잠시 만나는 황경한 묘지를 지나 몽돌해수욕장인 모진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발걸음을 재촉한 덕에 신양항에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올레길 걷기를 5시간 30분 만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4시 40분 신양항에서 출발해 제주로 가는 배를 타고 제주항에 무사히 도착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짧았던 추자도의 추억을 머릿속에 간직하면서 나의 올레 패스포트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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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은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코스에 따라 버스 시간표와 코스의 장단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간다면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는 코스들이 많다. 하지만 추자도는 제주와 완도를 오가는 송림블루오션이나 제주와 진도를 오가는 산타모니카의 배 시간을 잘 확인해서 숙박을 하며 여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출발 전, 올레꾼들의 이야기와 사진들을 보며 추자도에 대해 막연하게 그림을 그려왔던 곳. 올레길뿐만 아니라 성지순례길, 나지막한 오름으로 이어지는 산책 코스, 역사적인 장소들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섬 안에 이렇게 많은 산이 있는지 몰랐는데, 돌아다니며 이어지는 산길은 마치 나에게 추자도로 다시 오라고 말하는 듯, 그 매력을 뽐내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평소의 틀에 갇힌 내 모습이 아닌, 10대, 20대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점에도 환호가 나오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고 떠드는 모습. 지나가는 처음 보는 올레꾼들의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에 기꺼이 ‘안녕하세요’로 답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나. 올레길을 걷는 동안, 엄마로서의, 자식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혼자서 때로는 둘이서 그렇게 나의 올레길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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