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지원에서 걸어서 2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커다란 하천, 의성읍의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남대천은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의성군민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글. 서정은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주무관
의성의 명소 남대천 둘레길과 구봉공원으로 가기 위해 퇴근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관사를 떠나 남대천을 향해 걸어갑니다. 의성역과 의성 시외버스터미널 앞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저 멀리 숭의문이 보입니다.
구봉산과 접해 있어 산과 물의 조화로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남대천의 장점이 아닐까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푸르른 녹음이 시야에 들어오자 어느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먼저 산 끄트머리에 있는 커다란 누각, 문소루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봅니다. 문소루는 숭의문과 함께 의성읍 입구에 위치한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문소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불린 의성의 옛 지명이라고 합니다. 문소루는 고려 중엽에 처음 창건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소실되었습니다. 1982년 자리를 옮겨 이곳에 지어진 것이 현재의 문소루입니다. 전쟁의 영향으로 본래의 문소루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재건되어서 다행입니다. 근처에는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구봉산을 둘러보기도 좋습니다.
하천 쪽으로 내려오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보입니다. 오리도 아니고 두루미도 아닌 것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유유자적하게 날아가 버립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대천은 왜가리 서식지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매년 수천 마리의 왜가리들이 의성을 찾아온다고 하며 산책을 하는 중에도 남대천 곳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왜가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의성 신평면 청학마을에는 왜가리 생태관도 있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의성에 오신 김에 한번 들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면 분수공연을 볼 수 있는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납니다. 음악분수는 산불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5월 중순부터 운영을 재개하여 하루 6차례, 30분 동안 여러 장르의 음악에 맞춰 화려한 공연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 보기로 하고 앞으로 더 걸어가니 의성읍 둘레길이라 적힌 팻말과 함께 나무로 만든 데크길이 나옵니다. 길게 뻗어 있는 이 길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먹은 김에 가보기로 합니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초여름에 접어들어서인지 저녁 7시가 넘어도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그늘을 만들어줘서 태양을 피해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울창한 나무 덕분에 깊은 산 속을 걷는 기분마저 듭니다. 그만큼 날아드는 벌레들도 많지만 꿋꿋하게 헤치고 나가봅니다. 녹음이 우거진 구봉산과 남대천이 만들어 낸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문득 의성으로 발령을 받은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저는 원래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지만 의성에 온 뒤로는 업무와 지원생활에 적응하느라 주변을 볼 여유가 없었기에 봄에 벚꽃이 활짝 핀 남대천을 의성역에서 바라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봄에 왔으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봤겠지만 푸르게 빛나는 남대천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가만히 오늘 하루를 정리해 봅니다. 그 일은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 드렸어야 했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던 고민들도 이렇게 걸으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답이 조금씩 떠오릅니다. 이것이 걷기의 마법일까요. 생각이 깊어질수록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용기가 솟아납니다. 비록 해결된 것은 없지만 조금씩 정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내딛는 발에 힘을 실어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걷다보면 계곡물처럼 콸콸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돌로 만들어진 매끄러운 징검다리를 드라마처럼 총총 하나씩 건너보고도 싶지만 보기보다 쎈 물살에 미끄러져 넘어질 미래가 보여서 잠시 눈으로만 감상하기로 합니다. 업무를 배우면서 겪었던 고충이나 지원에 와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고민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머릿속을 잠시나마 비우고 반환점을 향해 걸어갑니다.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입니다. 처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보이던 길도 막상 걸어보니 그렇게 길지는 않았습니다. 의성지원에서의 1년 6개월도 그런 걸까요. 첫날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시보기간이 어느덧 끝나가는 것처럼요. 다리를 건너 이제 구봉공원으로 향해봅니다. 걸으면서 아까 걸어온 길을 바라보니 구봉산의 웅장한 절경과 남대천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왔던 길을 그저 돌아가기만 했다면 이 멋진 경치를 놓칠 뻔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서서 물소리를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줍니다.
구봉공원에는 황토길, 자전거길, 놀이터 등 남녀노소를 위한 다양한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저녁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마다의 하루를 보내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원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한 곳곳에는 마늘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의성군민의 마늘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공원에 마늘이라는 상징을 넣어 표현한 덕분에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구봉공원을 걷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늘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자 해가 떠 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드러납니다. 분홍빛 하늘이 그대로 비친 남대천과 저 멀리 보이는 문소루, 숭의문이 만들어낸 동화 속 같은 풍경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만 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들로 채워져 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지쳐있던 마음이 회복되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다들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이곳을 찾는 것이겠지요. 이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남대천은 의성군민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줄 것입니다.
오늘을 되돌아보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두워진 남대천을 뒤로하고 이제 관사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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