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정환 춘천지방법원 판사
제가 근무하는 춘천지방법원이 있는 춘천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춘 호반의 도시이자 닭갈비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춘천의 자연환경 중 하나로 의암호, 소양호, 춘천호 등의 크고 아름다운 호수를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중도가 있는 의암호의 양옆 도로는 경치가 좋아 마라톤 코스로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작년에도 우리나라 3대 마라톤 중 하나인 춘천마라톤과 강원지역 언론사가 주최하는 마라톤이 의암호 주변 코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2024. 6. 2. 열린 호반마라톤(강원일보사가 주최한 마라톤입니다)에 참가하였는데, 그 경험은 작년의 여러 행복한 순간 중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째 마라톤 도전
호반마라톤이 저의 첫 마라톤은 아니었습니다. 강원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며 여유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나름 재미를 붙였고, 제 실력을 한 번 확인해 보고자 서울에서 열린 어느 마라톤 대회 5㎞ 코스에 참가하였던 것이 저의 첫 마라톤이었습니다.
나름 달리기를 좋아했던 저는 군 전역 후 마주한 바쁜 변호사 생활 속에서 달리기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습니다. 법원에서 근무한 첫해에도 재판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빠 운동은 뒷전으로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법원 생활 2년 차 중순에 접어들며 재판업무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건강한 삶과 체력의 중요성을 느껴 그간 미루었던 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틈틈이 운동을 하였고, 적지 않은 시간을 달리기에 할애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법원 생활 2년 차를 마무리하고 3년 차(2024년)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은 전국적으로 마라톤 붐이 불었는데 춘천지방법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반마라톤 참가의사를 밝혔고, 함께 근무하는 판사님들의 참가소식에 저도 참가의사를 밝혔습니다.
마라톤 연습하기
하지만 참가의사를 밝히고 나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여태껏 뛰어본 적 없는 10㎞ 코스 참가의사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마라톤까지는 2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냐는 심정으로 남은 기간 동안 연습이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 인근 산책로에서 5㎞를 달려보았는데, 평소 러닝머신에서 2~3㎞만을 달리던 저에게 5㎞는 큰 벽으로 느껴졌습니다. 5㎞를 뛰고 계속 숨을 헐떡거리는 저를 보니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어 마라톤까지 적어도 2번은 10㎞를 뛰기로 결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완주거리를 늘리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목표로 설정한 거리는 걷고 뛰는 걸 반복하더라도 기필코 완주하는 것으로 마음먹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완주거리가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하였고,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나름의 페이스도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마라톤 2주 전에 처음으로 10㎞ 완주에 성공하였습니다. 달리기를 마치니 몸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라톤까지 남은 기간도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마라톤 당일
어느덧 마라톤 당일이 되었습니다. 첫 10㎞ 완주 후 한 번 더 10㎞를 완주하였기에 마라톤에 임박해서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전날에는 긴장이 되었는지 잠을 설쳤습니다. 몸이 다소 피곤한 상태에서 마라톤을 시작하는 송암스포츠타운 경기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경기장은 마라톤 붐을 반영하듯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많은 인파가 주는 열기 속에서 피곤함은 가시고 묘한 긴장감과 함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몸을 계속 풀면서 연습으로 체득한 페이스를 일관되게 유지하자고 되뇌었습니다. 어느덧 출발시간이 되어 수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출발하면서 몸을 풀 때와 마찬가지로 연습 때의 페이스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다 보니 다른 참가자들을 추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참가자들을 추월하기 위하여 제 페이스를 오버하여 속도를 내었고, 출발 후 약 0.5㎞ 지점에서 나오는 오르막길에서도 다소 무리한 속도로 달렸습니다.
오버 페이스를 하니 연습 때 충분한 호흡과 체력을 유지하던 3㎞ 구간부터 연습 때의 호흡과 체력이 유지되지 않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마라톤 코스의 멋진 경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5㎞ 구간부터는 몸이 상당히 지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6.5㎞ 구간을 지나고 나서는 천천히 뛰더라도 절대 걸으면 안 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걷다가 뛰는 것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걷고 뛰고를 반복하다 문득 완주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5㎞가 아니라 10㎞를 선택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완주는 문제없겠다는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육체의 고통은 저를 자꾸 포기하라고 이끌었습니다. 그렇지만 완주를 포기하면 연습에 들인 저의 노력, 시간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천천히 달리더라도 어떻게든 완주만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아무 의욕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달렸고, 그러다 보니 출발 초반에 무리했던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로 나왔습니다. 내리막길에서 붙은 속도에 힘입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도착점에 골인하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부여잡고 숨을 거칠게 헐떡였습니다. 몸이 정말 힘들었지만 결국 완주를 성공했다는 기쁨은 어느새 몸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두 번째 마라톤은 끝났습니다.
마치며
제가 마라톤에 참가한 횟수나 완주거리를 고려하면, 사실 마라톤에 도전하였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마라톤에 다시 도전하여 느낀 경험은 그 어떠한 경험보다 값지고 소중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 살아온 시간이 짧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생에는 많은 고난과 좌절이 있으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면 결국 고난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도전한 마라톤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생각하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완주한 경험은 좀처럼 쉽게 느끼기 어려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두 번째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후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꾸준히 달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라톤을 통해 느낀 값진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기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달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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