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지선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법원주사보
나는 목메달이다. 우스갯소리로 딸만 둘이면 금메달, 아들 딸이면 은메달, 아들 하나면 동메달이라는데 그렇다, 나는 아들만 둘인 목메달이다. 딸만 둘인 엄마는 딸이 보내주는 해외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 죽고, 아들만 둘인 엄마는 아들 집을 전전하다 길바닥에서 죽을 팔자라며 엘리베이터에서 아들 둘 손잡고 있으면 오지랖 넓은 할머니들이 참견을 해댄다.
“어쩌다 아들만 둘을 낳았어, 딸은 하나 있어야지...”
누군들 아들만 낳고 싶었을까, 한마디 하고 싶지만 애써 웃음을 짓고 자리를 피한 적이 더러 있었다. 그래, 인생사 혼자 왔다가 순서 없이 혼자 떠나는 법. 딸 노릇하는 아들 바라지 말고
나 혼자 스스로 잘 놀아보자 다짐하며 요즘 나만의 힐링 시간을 소개해 보려 한다.
나는야 초보 마라토너
우연히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부르르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바로 기안84의 마라톤 도전기였다. 누군가 말했다. 마라톤, 그것은 누구든 뛸 수 있지만 아무나 뛰지 않고 마라톤을 뛰고 나면 누구든 부러워한다고.
이것은 운명이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나는 평생 부러워만 하겠구나 싶어 쿠팡으로 3만원짜리 러닝화를 주문한다. 다음 날 로켓처럼 온 나의 운동화는 딱 3만원짜리 같았다. 허나 뛰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지 가격이 중요할까, 새 운동화 신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상상 속 내 모습은 마치 Like 이봉주였는데 현실은 그냥 처음 걷는 갓 태어난 가젤새끼마냥 엉망진창이다. 당장 풀코스는 아니어도 하프쯤이야 연습하면 가능할 거라 생각한 내가 스스로 우스웠다. 3만원짜리 운동화는 커질 대로 커져버린 내 덩치에 짓눌린 무르팍을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인 법.
하루이틀 연습량을 늘려가며 조금씩 뛰었고 첫 마라톤 대회날(10km)이 다가왔다. 대회 유니폼을 입고 저마다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마라톤 대회가 처음이고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서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출발음이 들리고 앞줄부터 차례대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 평소라면 차로 가득할 도로가 분홍티를 입은 러너들로 가득하다. 도로를 막은 경찰들과 봉사자들이 연신 파이팅을 외쳐준다. 그리고 멀리 터널이 보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외치는 파이팅 소리에 소름이 쫙 돋는다. 그래, 나 여기 이렇게 뛰고 있구나. 힘들어도! 시간이 오버되어도! 끝까지 완주하자 다짐한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내달려 저 멀리 도착점이 보이자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다 왔다. 내가 해냈다. 도착점을 지나는 순간 온몸에 도파민, 엔도르핀, 아드레날린, 내가 알고 있는 각종 신경 물질(?)들이 약물의 도움 없이 터져 나온 듯하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요즘 나는 마라톤 전도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기분을 느껴보길 바라서다. 다음 대회의 목표는 1시간 10분대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리고 뛰는 중간중간 걷지 않는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나만의 마라톤을 이어나가려 한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하프, 언젠가는 풀코스까지 도전하는 날이 오려나? 아니, 무리하지 말자. ㅎㅎ
생존 캠핑기
캠핑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의 추천으로 동호회에서 다 같이 가게 됐는데 너무 신선했다. 노숙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은데...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은데... 마치 마약처럼 자꾸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닌가.
나와 평생을 함께 살기로 서약한 그는 난이도 10프로 미만의 간단한 DIY 제품도 완성시키지 못하는 아찔한 매력을 갖고 있다. 원터치 텐트도 구매한 지 5년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도 접지 못한다. 펼 수만 있다. 그런 그와 집중력 30초 미만의 산만한 아들 둘과 함께하는 캠핑에서 감성은 사치다. 먹고 자기만 하는 생존 캠핑이지만 왜 이리 캠핑이 좋을까. 특히 업무가 고될수록 캠핑 생각이 간절해진다(작년엔 캠핑을 무지하게 갔다). 최근엔 중국 출장으로 공석인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캠핑을 가기도 했다. 아침 일찍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따듯한 커피 한잔을 타서 흔들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에 몰입하게 된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땀 뻘뻘 흘리며 텐트랑 모든 짐을 정리하고 빵빵한 에어컨 속 시원한 조수석에 타는 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뜨끈한 순대국밥 한 사발 말아 묵으면서 왜 굳이 돈 주고 사서 이 고생을 하는가 싶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뿐, 또 예약 사이트를 들락이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취소 자리를 알아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일 힐링 타임은 하루의 마지막, 잠자리에 들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이다. 글 서두에 목메달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꽤나 세심한 아들을 낳았더랬다. 앞자리가 4로 바뀌면서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보고 빨리 늙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며 눈물을 글썽이는 큰아들과, 재작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고 내려올 적 이제 다 나은 거냐며 먼저 물어주는 둘째 아들이 있어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일과 가정을 함께 잘 해내기가 쉽지 않아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과제지만 오늘도 아들들의 응원을 받으며 출근하고 힐링타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Here’s looking at us!
오늘도 고생한 우리들의 눈동자에 건배~
- [행복의 뜰] 나의 마라톤 도전기 2025.04.06
- [추억의 뜰] 미지의 세계 끝단으로, 펠릴리우 다이빙 여행기 2025.04.06
- [생각의 뜰] 워킹맘의 힐링타임 2025.04.06
- [행복의 뜰] 텃밭 키‘움’: 옥상 텃밭에서 ‘움’트다 2025.03.06
- [추억의 뜰] 꼭두각시 2025.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