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워킹맘 성장기

공감

[낭만필객] 워킹맘 성장기

2024.01.08

워킹맘 성장기

“휘익~라라랄라라 라라랄라 랄라라~~라라랄라라 라라랄라 랄라라~ 달려가는 여성시대♪♪” 노래와 함께 라디오 방송 시작을
알리는 양희은과 김일중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 중구에서 윤수진님의 ‘아들의 컵라면 먹는 방법’이라고 사연이 소개된다.
두근두근!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 적다가,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올렸는데, 다음날 모르는 번호의 MBC 작가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다. 사실 스팸 전화인 줄 알고 의심했지만 내가 적은 사연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신 걸로 봐서 작가분이 맞구나! 세상에! 내 사연이 소개되다니... 복권에 당첨되면 이런 기분일까?
아들의 이야기가 ‘법원사람들’에 실리는 게 조금은 쑥스럽지만, 이미 전국 방송을 탄 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작은 미소가
지길 바라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훗날 아들에게는 흑역사로 남을지라도...^^;)
글 윤수진 행정관(대구지방법원)

안녕하세요.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아들 녀석이 있어요.
아들은 어릴 때부터 참 재미있었지요.

에디슨이 누군지도 모를 어린 아이였을 땐,
안방 장농 이불 사이에서 달걀 두 개가 발견된 적이 있어요.
냉장고에서 달걀 두 개를 꺼내
이불 속에 몰래 넣어둔 아들이랍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땐,
다 같이 과학관에 놀러갔다가
엄마, 아빠가 안보이니깐
안내데스크 찾아 가서 한다는 말이,
“보호자가 사라졌어요!!!”
엄마, 아빠는 처음부터 그 자리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 아들이 이제 4학년이 되었습니다.
엄마 눈에는 매사 어리숙한, 가르칠 게 많은 아이이지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컵라면 먹은 흔적이 있었어요.
숨겨 놓은 커피포트가 나온 채로요.
참고로 저희 집에는 정수기도 없어요.

저는 아들을 불러서 물었지요.
“아들아, 네가 컵라면을 먹었니?”
“응, 엄마.”
“엄마는 너에게 커피포트 사용법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나 커피포트 사용 안했는데??”
“그럼 뜨거운 물 어떻게 했어?

아들의 대답은…
“엄마. 나 목욕탕에서 물 받아먹었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었습니다.
“목욕탕??????”
너무나 해맑게 대답하는 아들입니다.
“엄마 목욕탕에 뜨거운 물 나오잖아. 그거 받아먹었어!”

아들은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샤워할 때 수도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욕실을 떠올랐던 거죠.
주방의 개수대는 사용할 일이 없으니
늘 사용하는 욕실에서….

어이없어서 웃음만 나옵니다.
커피포트 사용법을 조심스레 알려줬어요.

목욕탕 뜨거운 물로 컵라면 좀 먹으면 어때요.
안 아프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어야겠어요.
단, 저는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로…. 호호호

대구에서 후디슨 엄마가 사연 보내요.

- MBC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편지 사연 -

전투적이고 치열했던 아침 시간
“엄마! 안경 껴(=일어나)”
평일 아침, 먼저 잠에서 깬 아이가 나를 깨운다.
출근 준비와 등원 준비로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등에는 땀이 쭈욱, 어깨에는
어린이집 가방을 비롯해 낮잠 이불에 출근용 가방까지 주렁주렁… 겨우겨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역주행(?!)을 시도하는 청개구리.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아이를 들쳐 업고 차에 태워 법원어린이집에 따악 데려 놓는 순간 외치게 된다.
‘이제 쉴 수 있다!’
엄마의 속마음을 아는지 휙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차로 돌아와 뽀로로 노래가 아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놓으니 회사로 향하는 길이 신난다. 책상에 앉아 커피믹스를 한 모금 들이키면, 전투적이고 치열했던 아침 시간을 보상받는 듯 갑자기 내 세상마냥 너그러워진다. 민원인 방문 전까지는…
동료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지낸 워킹맘 10년
그렇게 몇 년 법원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사무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병원 다녀오라고 배려해주신 계장님들, 실무관님들, 재판이 늦어질 거 같으면 아이 기다린다고 정리하고 먼저 가라고 조용히 쪽지 내려 주셨던 판사님, 주위의 따뜻한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간 중간의 위기를 이겨내고 워킹맘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지만 어느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는 초등학생 4학년.
이 글을 쓰는 지금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학교에서 손을 접질려서 많이 부었는데, 학원을 못 갈 거 같아.”
아이에게, “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 사진 찍고, 의사선생님 만날 때 엄마에게 전화해” 라고 조금은 쿨(cool)하게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울고불고 했었더라면 당장 뛰쳐나갈 수 있었겠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신 게 아니니 급한 건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해졌다. 10년 되니 살짝 베테랑 엄마 느낌이 난다.
진료 마친 후 송금으로 병원비, 약제비까지 다 해결되는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워킹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엄마 없어도 씩씩하게 이비인후과, 피부과에 이어 정형외과까지 섭렵(?!)한, 혼자서도 병원을 잘 가는 아이가 기특하다. (학원은? 당연히 가야지!)

하루종일 민원응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었지만, 그 날 아이의 컵라면 사건은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깔 웃을 수 있었다.
곧 사춘기가 온다 할지라도, 라디오의 사연을 비롯해 귀여운 에피소드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지만, 그 때는 사춘기 아이한테 한 번 져 줘야지.^^

아침마다 급한 마음에 잰걸음하며 출근길에 올랐을 이 나라 워킹맘들, 워킹대디들!
모두 응원합니다!

"공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