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3] 나와 인연(因緣)을 맺은 내가 사랑하는 법원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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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낭만필객Ⅲ

나와 인연(因緣)을 맺은 내가 사랑하는 법원사람들

글 차기현 판사(광주고등법원)

<법원사람들>의 표지에는 제호와 함께 실제 법원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린다. 코트넷 검색으로 확인해보니 2008~2011년과 2018~2019년 사이를 제외하고는, 2006년 1월호 이후 현재까지 쭉 그랬다. 이번 달 <법원사람들> 표지 속 낯선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분들이 각각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기사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보니 나와 인연(因緣)을 맺은, 내가 사랑하는 법원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그 위에 ‘오버랩’ 되는 것만 같다.

2022년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

나와 법원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 분을 뒤로 놓고는 누구 한 사람 쉽게 떠올릴 수 없다. 벌써 세 번째 한 식구가 된 최인규 광주고등법원 고법부장판사님. 최 부장님과의 첫 만남은 2012년, 아직 내가 ‘법원 사람’이 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쿨 민사재판실무 수업에 법원 파견 교수님으로 오셨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마치고 재판 업무에 복귀한 직후였던 터라, 이론과 실무에 모두 정통한 최 부장님의 민재실 강의는 (세 시간 연강이었는데도!) 흡인력이 아주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학점을 대단히 짜게 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사제 간의 인연은 내가 재판연구원으로 선발되어 비로소 ‘법원 사람’이 된 이듬해로 곧바로 이어졌다. 조정·화해를 잘 성사시키는 걸로 명성이 자자한 분이어서, 그 노하우를 뽑아 먹어야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형사항소심 재판부에서 모시게 되어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일 년 동안 지내보니, 형사에서도 그 나름대로 조정·화해와 유사한(?) 해결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점(예컨대 특수상해에서 ‘과도는 그냥 과일을 깎는 도중이어서 들고 있었을 뿐, 피해자를 때릴 때는 과도를 내려놓았다’는 식의 변소)을 잘 경청한 다음, 증거관계에 비추어 일리가 있으면 검사에게 그 부분 공소사실을 일부 철회하면 어떤가 하고 권유하는 것인데, 그렇게 억울함이 해소된 피고인이 제1심 때 다투던 것도 모두 자백하는 (판결 써야 하는 주심 입장에선 기적과도 같은)일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세 번째는 바로 지금이다. 따뜻한 가을 날씨로 철없이 꽃망울을 틔운 요즘 봄꽃처럼, 조금 일찍 고등법원에 오게 됐다. 그 덕분에 대선배인 최 부장님과 판사로서 같은 재판부를 구성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나, 실력에 비해 과분한 짐을 지게 되었다는 부담도 컸다.
그렇지만 최 부장님과 함께 일하였기에 1년 동안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법원에서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일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 부장님뿐만 아니라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사진 1)에서 만나게 된 법원 사람들 모두에게, 이 글을 빌어 마음으로부터의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특히 평판사로 단독 재판장 경험도 없이 고등법원에 와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나를, 항상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시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신 김진환 고법판사님. 디테일한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재판업무 스타일로, 일단 얼기설기 큰 그림부터 그려보려고 하다가 실수를 범하곤 하는 내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젊고 유능한 법조인으로서 항상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정주훈 재판연구원님, 무거운 재판업무의 짐을 나와 함께 지고 가는 듬직한 조력자 김기범 재판연구원님, 두 분과의 인연도 법원에서 쭉 이어지길 기원해본다. 존경하는 우리 장정인 사무관님은 또 어떤가. 탁월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하여, 이분이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법관의 판단 기능 일부를 기꺼이 떼어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셨다. 하루하루 힘들 법한데 항상 웃는 얼굴로 묵묵히 민사2부의 재판이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창현 실무관님, 자유롭고도 질서 있는 법정을 유지하느라 구슬땀 흘리는 김동훈 경위실무관님, 궂은 일 마다 않고 판사들이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원재원 속기 및 부속실 실무관님,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참 멋진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된다.

2021년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

2020~2021년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

이런저런 생각이 흐르다 보니 결국 책상 한켠에 놓인 사진 액자로 눈이 옮겨진다. 2020년과 2021년 2년간 함께 동고동락한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 가족들(사진 2)과의 단체 사진.
그 사진 속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나의 가장 좋은 멘토 노재호 부장판사님. ‘훌륭한 리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곳 광주로 눈을 돌려 노 부장님이 하는 것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노 부장님을 재판장으로 앞에 세우고 법정으로 들어설 때, 나는 정말 무서울 게 없었다.
1년 간 룸메이트로 지낸 센스쟁이 김지영 판사님. 형사합의부 주심판사라는 ‘최전방’에서 서로 격려하며 쌓은 그 ‘전우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다는 생각이다(사진에는 나오지 않은 2020년의 ‘전우’ 차유나 판사님과도 마찬가지).
현재 사진보다 훨씬 날씬해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여우동 참여관님. 살아 숨 쉬는 조서 작성의 귀재이자, 밤의 재판장인 그분과 오늘 저녁 소주 한 잔 다시 기울이고 싶어진다. 이제 재판부 실무관님들 순서인데, 아무래도 우리 김지훈 실무관님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서기보’로 형사재판부에 오셔서 초반에는 고생깨나 했다. 그렇지만 요즘 법원공무원으로 입직하시는 분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김 실무관님이 1년 동안 발전하는 속도를 보며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련한 우리 전민호 실무관님, 시원시원한 성격도 성격이지만 판결 쓰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두서없이 드린 말까지 찰떡같이 알아 듣는 그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은 발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아울러 사진에는 없는 김광환 계장님(2020년 당시 실무관님)이야 뭐, 자타공인하는 ‘광주의 에이스’라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지금쯤 내 이름은 언제 나오나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계실 것 같은) 우리 송다진 실무관님. 이것저것 필요한 건 다 해주시면서도 늘 ‘특별히 해드린 것도 없는데….’라고 하시는 분. 3명의 자녀 양육에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주어진 임무는 어찌 그리 다 꼼꼼히 소화하시는지. 그리고 광주를 대표하는 훈남-훈녀 사내 커플의 반쪽, 우리 윤주현 실무관님. 삭막한 형사법정에 ‘그저 빛!’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속기전담만 하시다
어느 날 갑자기 판사실로 와서 그 빛으로 살인 강도 강간(사건명이니 오해 금지)이 판치는 어둠의 소굴을 밝게 비춰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형사합의부를 2년 연속해서 사진에 나오지 않는 속기실무관님들도 많다. 남들은 인상 쓰며 하는 형합 속기 업무를 (겉보기에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척척 해내셔서 놀라웠던 박은하 계장님, 안정적인 멘탈과 차분한 일 처리로 믿음을 주신 김경림 실무관님, 가독성 좋은 속기를 오류 없이 술술 해주셨던 김민지 실무관님, ‘소머즈’ 같은 귀, 기록 찾아보는 열정, 애매하면 물어보는 성실함으로 어려운 사건 심리에 큰 도움 주신 우리 신소희 실무관님도 항상 내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법원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조폭 십여명을 눈빛 하나로 제압하는 믿음직한 막냇동생 박수현 경위실무관님. 2021년 밸런타인데이에 나에게 (의리의) 초콜릿을 준 유일한 여자 사람이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그런데 왜 갑자기 눈물이…). 문무를 겸비한 바른 인성의 소유자이기에 꿈꾸는 무엇이든 다 이뤄낼 것이라고 믿으며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는 박청애 경위실무관님(퇴근 후 변신이 압도적!)과 이호철 실무관님(극강의 피지컬!)과 함께 한 기억들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서의 소중한 추억도 방울방울

서울에서 연을 맺은 분들과의 추억도 시간의 강물에 씻기거나 떠내려가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초임인 내가 주심판사로서의 역할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고,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존경하는 재판장, 우리 설민수 부장판사님, 그리고 법관연수 교수단의 일원으로 가르침을 주시다가, 한 재판부에서 나/다 주심으로 엮이는 바람에 걸음마도 못 뗀 내게 ‘무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했던, 사랑하는 우리 박설아 판사님(현 대법원 재판연구관, 나는 단연코 법원에서 이분보다 재판연구관 역할을 잘할 것 같은 분을 알지 못한다). 두 분과 함께 한 1년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고 이제서야 고백한다. 아울러 그야말로 ‘A급’ 재판참여와 지원을 보여주신 이은숙 서기관님(당시 사무관), 이선순 사무관님과 황창진 실무관님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무척 섭섭할 것 같다.
음악을 사랑하시고, 식사 시간에 시사 전반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보여주셨던 이동욱 부장판사님도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고, 미국 TOP10 로스쿨에 교편 잡으러 가시느라 나와 6개월밖에 동행하지 못해 몹시 아쉬웠던 우리 박예지 판사님(40기), 나의 룸메이트라는 사실이 괜히 자랑스러워 어디든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었던 러블리 현영주 판사님도 꼭 한 번 다시 만나, 못 다 채운 6개월의 시간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같이 근무할 때 더 잘해드리지 못해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드는 서정식 참여관님과 김범수 실무관님께도 오래만에 이 지면을 빌어 늦은 안부 인사를 드려 본다.

불교에서 ‘인연’은 결과를 내는 두 요소, 즉 원인과 조건을 결합한 말이라고 가르친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 그 씨앗을 ‘인(因)’으로, 햇빛, 땅, 물, 온도 등의 조건을 ‘연(緣)’으로 본다는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참조). 내가 미약하나마 법원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햇빛, 땅, 물, 온도가 되어주신 법원 사람들의 그 이름 하나하나를, 오늘 다시 입술을 움직여 작게 소리 내어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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