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미영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법원주사보
캐나다에서 입국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운 좋게도 해외중기연수자로 선발되어 6개월 연수기간에 6개월 육아휴직을 더하여 2022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1년간 남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캐나다에 다녀왔다. 캐나다는 정말 막연한 선택이었다. 외국에서 한번쯤 살아본다면... 빨강머리 앤이 살던 그런 에이번리 같은 마을 속 초록색 지붕 집을 꿈꾸며 캐나다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해외연수자로 본선발만 되면 그냥 쭉쭉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겠거니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과정은 내가 알아보고, 내가 준비해야 했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판사님이 아닌 우리 일반 직렬에서 최근 수년간 다녀온 사람이 없었다. 정보도 없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코로나 끝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많았다. 본 선발은 되었는데, 캐나다 간다고 다 떠들어 놨는데, 앞이 캄캄했다. 캐나다를 포기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미국으로 돌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난 가고 싶었다. 꼭! 캐나다를 가고 싶었다. 결국 준비를 시작했다. 내 발로 뛰어 유학원을 알아보고, 나를 받아 줄 학교를 찾고, 초청장을 기다리고, 학교에서 거절을 당하고, 다시 다른 학교를 찾고, 초청장을 기다리고... 결국 모든 서류를 갖추기까지는 정말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모든 일처리를 여유롭게 한다. 성탄절 주간이라고, 연말이라고, 부활절 주간이라고, 방학이라고 두 손 놓고 일을 안 한다. 관공서건 학교건 상관없다. 이 기간은 무조건 쉰다. 기다리는 사람은 정말 속이 타들어 가는데,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캐나다 입국 후 9월 초에 이미 개학을 하고 학기를 시작하여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도 교육청에서 우리 아이 학교 배정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캐나다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내 친구가 말했다. “여기 일처리가 많이 늦기는 한데, 늦어도 해주기는 다 해주니까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봐.”
(캐나다 동부 지역 퀘백을 대표하는 페오먼트 르 샤토 프롱트냑 호텔과 멀리 보이는 세인트로렌스강)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비자를 받아서 나가는 일이 힘든 편이다. 아이가 없이 혼자 나가는 것이라면 그냥 관광비자인 ETA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나가는 경우라면, 아이의 무상 교육을 위해 내가 워크 퍼밋(work permit)을 받아야 하고, 워크 퍼밋을 신청하려면 내가 방문자 과정으로 연수를 할 대학교에서 초청장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코드(IMM5802코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서류를 갖추는 일은 아무리 서둘러도 출국 날짜까지 여유 있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본 선발 발표 후 12월부터 준비를 시작하였으나 대학교에서 초청장을 5월 초에 받았고, IMM5802 코드는 출국 한 달 전인 7월에야 받을 수 있었다. 캐나다는 비자를 신청하고 발급받기까지 심사기간만으로도 보통 한두 달을 넘긴다. 그래서 9월 학기에 맞추어 비자를 손에 들고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학원에서는 모든 서류를 완벽히 갖추어 캐나다에 입국하면서 공항 이민국에서 비자를 발급받는 방법을 권하였다. 자칫 한국에서 비자를 신청했다가 기간 내에 비자를 받지 못하고 출국하는 상황이 되어 캐나다에 입국하면서 이민국에 다시 신청을 하게 되면, 이중 신청이 되어버려 오히려 비자를 아예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모든 서류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민국에서 간단한 인터뷰만 하면 비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영어에 능통하지 않다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과 차 계약까지 마친 상황에서 혹여 이민국에서 비자를 못 받을까 불안해 비행기 안에서도 예상 질문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캐나다 밴쿠버 공항 이민국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삼엄하였다.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인 레이크 루이스에서 카약 타기)
우리나라가 아니다 보니 괜히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가져온 서류를 제출하고 서류 심사를 기다렸다. 서류를 심사하는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히 서류는 문제없이 통과하였다. 간단한 몇 마디 질문을 하고 손가락 지문을 찍고, 드디어 말로만 듣던 워크 퍼밋이 내 손에 들어왔다. 남편과 아이는 visitor record를 받았다. 이민국 안에서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땡큐땡큐를 연발하며 비자를 받아서 소중히 들고 이민국에서 나와 캐나다에 첫발을 내딛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동안 준비과정과 방금 전 이민국에서의 마음고생은 파란 하늘을 보며 첫발을 내딛는 순간 모두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캐나다는 아이들에게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9월 학기에 grade3에 배정을 받았다. 저학년이라서인지 교실 분위기는 커다란 테이블 서너개 정도 놓고 둘러앉는 형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칠판을 앞에 두고 일제히 앞을 보고 책상에 앉는 형식이 아니다 보니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점심시간이면 점심 식사 후 아이들을 한 명도 교실에 남기지 않고 내보낸다. 비가 와도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놀이터로 나가 뛰어논다. 휴대폰이나 전자기기를 들고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흙장난을 하고 공놀이를 하고 놀이터의 놀이기구를 타고 나무에 기어오르며 서로 깔깔 웃어댄다. 정말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아직 저학년이라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없었다. 물론 이 부분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테지만 적어도 우리가 머물렀던 곳의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없었다. 등교시 풍경도 신기했다. 아이들이 바로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앞에 쪼로록 가방을 놓고 놀며 기다리다가 종이 울리고 담임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안에서 나오면 줄을 서서 한 명씩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마치 옛날에 즐겨 보던 ‘천사들의 합창’에서 보았던 장면 같았다.
(겨울에 얼어붙은 레이크 루이스)
또한 특이하게도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은 ‘루나’라는 이름을 가진 골드리트리버를 키웠는데, 루나는 교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마치 이 반의 일원인 듯 모든 생활을 함께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사실이 신기했고, 그 덕분에 큰 개를 무서워하던 우리 아이도 루나와 함께 생활하며 큰 개에 대한 무서움이 사라졌다. 교실에서는 부화기를 이용해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하여 커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도 하고, 어항 속 연어의 알에서 자라난 새끼들을 근처 숲속 개울로 가서 직접 놓아주기도 하고, 조별로 씨앗을 심어 자란 감자를 캐서 감자요리를 해먹는 등의 수업이 이루어졌다. 가을 학기 중에는 스케이트 수업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가서 아이들에게 스케이트 타는 법을 일괄적으로 가르쳐 주거나 하지 않았다.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는 아이들은 지지대를 밀고 다녔고, 이미 탈 줄 아는 아이들이나 혹은 부모들이 함께 스케이트를 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명 두 명 지지대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고, 4시간씩 이루어진 스케이트 수업 4번째 날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일괄적인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레 배워가는 과정이 참으로 신기했고, 일괄적인 교육에서 나타나는 잘함과 못함의 구분이 없으니 아이들도 매우 즐거워했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우리도 배우면 좋을 듯했다.
캐나다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할로윈데이였다. 우리나라에서 할로윈은 그저 유치원이나 아이 영어학원 행사 정도, TV 속 연예인들이나 즐기는 행사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정말 할로윈에 진심이었다. 10월 31일 할로윈데이 준비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그냥 10월 한 달은 온통 할로윈으로 가득하다. 마트를 가도 어디를 가도 모두 할로윈 용품으로 넘쳐난다. 드디어 할로윈데이가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각종 행사가 있었다. 아침부터 아이는 코스튬을 갖춰 입고 아빠와 만든 잭오랜턴을 들고 등교를 하였다. 하교 후에는 나와 남편도 약간의 의상을 갖춰 입고 아이와 근처 쇼핑센터로 향했다. 쇼핑센터 안에는 각종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각 상점은 문 앞에서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호박 바구니를 들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밖으로 나와 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동네를 걸었다. 집집마다 호박과 유령들 모양의 불들이 켜지고 마녀 옷을 입은 할머니가 사탕을 들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집 마당을 온통 유령과 해골로 꾸며 놓고 들어와 구경하고 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신나게 이 집 저 집을 뛰어다니며 “trick or treat”을 외치고 사탕을 받았다. 나도 아이가 된 것처럼 덩달아 신이 났다.
1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미국 LA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 산타모니카 해변,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시애틀 여행, 로키산맥에서 죽기 전 꼭 가보아야 할 명소인 레이크 루이스로 유명한 밴프지역과 제스퍼, 평온한 빅토리아 섬과 BC주의 레이크 루이스라 불리는 죠프리 레이크,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휘슬러, 겨울 한 시즌 동안 밴쿠버 그라우스 스키장에서 즐긴 스노우보드, 마지막으로 캐나다 동부지역 나이아가라 폭포를 시작으로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백 여행까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출근을 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었고, 내 삶에 여유 있는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외국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던 나에게 꿈을 실현해 준 시간이었다. 벌써 먼 옛날 꿈처럼 느껴지지만, 이 소중한 시간들은 평생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을 것 같고,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우리 사법부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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