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2] "아버지와 안나푸르나를 담다"

안나푸르나 

 

“아버지와 안나푸르나를 담다”

 

글.사진. 고상교 부장판사(전주지방법원)

 

“아버지. 이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으시죠?”
새벽 5시 고라파니 롯지(산장)에서 기상하여 헤드랜턴을 켜고 계단을 오른 지 1시간 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일출이 시작되어 세계 7대봉인 다울라기리(8,167m)와 안나푸르나의 산군을 빨갛게 물들이는 순간 아버지께서는 “어, 그래. 죽어도 여한 없지! 사진에서만 보다가 여기서 보니까, 저기 있는 남봉이 100m 앞에 있는 것 같아. 경치가 아주 장관이네!”라며 감탄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잘 왔구나’ 하고 안도하면서, 그간의 걱정과 염려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사실 겨울 시즌에 74세가 되신 아버지와 둘이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걱정된다며 만류가 있었다. 출발 일주일 전 갑작스런 눈사태로 한국인 교사 4명이 실종된 사고도 있었고, 고산병에 대한 염려와 롯지에서의 추위, 아버지의 무릎 건강, 코로나19의 확산 징조 등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2020년 설에 안나푸르나를 강행한 이유는 아버지의 연세에 비추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이렇게 단둘이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고, 평소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고작 “왔어요”, “갈게요”가 전부였던 나였다. 그러다 3년 전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시면서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임종 직전까지도 간절히 꼭 살아달라고 말씀하시며 애절히 간병하시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아버지께서는 근 40년을 함께하신 어머니를 떠나보내셨고 혼자가 되셨다. 이후 텅 빈 시골집에서 쓸쓸히 홀로 지내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자식 된 도리에서 뭐라도 계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아버지와 함께 트레킹을 간 곳이 중국의 태항산맥(천계산, 통천협, 구련산 코스)이었다. 아버지는 최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3일 동안 하루에 3만보 이상 걸으셨고, 같이 온 트레커들의 여행담을 들으시며 히말라야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셨다. 원래는 작년 추석에 안나푸르나를 예약했었으나,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날씨인데 9월 말까지 우기라는 사실을 알고서 몽골 테를지 트레킹으로 변경하였다.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나는 두 번의 트레킹을 통해 아버지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왜 돈 버리고 해외에 나가느냐고 거절하셨던 아버지도 막상 주위에서 부럽다 하고 그 연세에 대단하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매우 흡족해 하셨고, 아들과의 어색했던 관계도, 쓸쓸하고 어두웠던 낯빛도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특히, 아버지한테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무료할 수 있는 오늘을 즐겁게 하였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목표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곳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히말라야는 대륙의 판이 만나는 세계의 지붕으로 8,000m급 이상의 고산들이 즐비하다. 그런 고산들을 마주하며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전 세계에서 연간 50만 명 이상이 네팔을 찾고 있고, 한국인들도 매년 3만 명씩 다녀간다.

 

나도 처음에는 70세가 넘으신 아버지가 3,000m 이상을 오르실 수 있을까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등반이 아닌 히말라야 트레킹은 관악산 정도만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10여 곳의 트레킹 코스가 있으나 에베레스트, 랑탕, 안나푸르나 지구 등 세 곳이 주요 관광지인데, 그중 초보들이 먼저 찾는 곳이 비교적 숙박시설이 잘 갖춰진 안나푸르나 지구이다.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보통 안나푸르나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m)를 지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까지 10일 코스로 트레킹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인 교사들이 눈사태를 만나긴 하였으나, 사실 건기에 해당하는 10월부터 2월까지는 눈이나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고도는 높지만 위도가 낮아 아열대 기후이고, 1월에도 산 중 기온이 3℃에서 15℃ 사이로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하다. 단지 밤에 롯지에서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핫팩과 침낭을 준비하는 것이고, 10일 코스로 가는 이유는 고산병 예방을 위하여 하루에 고도를 조금씩만 올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선택한 트레킹 전문 여행사는 15kg 가방을 2개씩 옮겨주는 포터와는 별도로 한국요리 전담팀이
5일치 식재료를 모두 가지고 같이 올라가 매끼 한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히 음식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30kg의 가방을 머리에 메고 오르는 포터들의 하루 일당이 고작 만 원에 불과하지만, 포터를 고용하는 것이 최빈국 네팔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물통과 패딩하나만 넣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쉬엄쉬엄 하루 500m에서 700m를 오르면 된다.
그래도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낮은 난이도였던 몽골 트레킹 도중에도 무릎이 아파서 남편한테 업혀 내려오신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평소 가벼운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해야 한다. 또한, 네팔이 최빈국인 것을 상기하면 오가는 길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처음에 카트만두 호텔에서 식사를 하면서 전기가 나가 순간 놀랬으나, 금세 이 나라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나푸르나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에 있는 제2의 도시 포카라로 약 40분가량 국내선을 타야하는데 짙은 안개와 날씨 때문에 연착과 결항이 빈번하다. 만약 국내선이 결항되어 포카라까지 버스로 이동한다면 최소 7시간 이상의 험난한 고갯길을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미세먼지와 소음, 쓰레기로 가득한 카트만두를 벗어나 포카라에 도착하면 비교적 조용한 관광도시에 도착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포카라는 시내에 위치한 페와 호수에서도 안나푸르나 산군을 감상할 수 있고,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들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다만, 포카라 시내에서부터 산 입구인 나야풀(950m)까지 1시간, 그곳에서 다시 지프차로 갈아타고 1시간 이상 비포장 먼지길을 지나야 트레킹 시작점(킴체 1,640m 또는 힐레 1,470m)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추억이겠으나 결코 쉬운 길은 아    니다. 그래도 험난한 이동을 마치고 트레킹 입구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하면 금세 안나푸르나의 빼어난 경치에 빠져들게 된다.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겨울이지만 3,000m까지는 눈이 없는 한국의 가을 산과 같은 경치를 감상하면서 계곡과 고산식물, 고목을 지나 흔들다리도 건너고, 가끔 시야가 트인 곳에서는 눈 덮인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의 정상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문제는 롯지에서의 숙박인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롯지의 상태가 열악해지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롯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터들이 벽돌과 지붕, 판자, 유리 등 건축자재를 일일이 들고 산속까지 운반해야 한다. 산악용 케이블카가 없고, 헬기보다 포터 운반이 더 싼 탓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롯지에도 더운 물이 나오긴 하나 고산병 예방을 위해서 전신 샤워는 금기시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와이파이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굳이 머리를 감은 중국인 여학생이 있었는데, 헤어드라이기가 없는 산중에서 난로 앞에 고개를 숙이고 2시간 이상 머리를 말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여행사에서 지급한 침낭 하나만으로는 난방이 없는 허름한 롯지에서의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 나는 한국에서 군용 핫팩을 많이 준비해 갔는데, 그 무게가 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듯 했다. 포터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지기 때문에 많이 가져갈수록 후회하지 않는다고 조언하고 싶다.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산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면, 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지를 저절로 느끼게 해주는 멋진 장관을 만나게 된다. 그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히말라야의 눈 덮인 정상들이 태양의 붉은 빛을 받아 빨갛게 물드는 일출과 일몰의 순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군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숭고함에 감탄하게 되고, 건강히 두 발로 걷고 내 눈으로 직접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비록 눈사태 사고로 인하여 베이스캠프까지는 가지 못하였으나,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3,150m)는 평소 산을 타본 경험이 없는 초급자들도 안나푸르나를 만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다. 고산이 많아서 언덕(힐, hill)이라고 불리지만, 과거 영국의 귀족들이 말을 타고 안나푸르나의 풍광을 구경했던 명소답게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안나푸르나를 계획하는 법원 식구들이 있다면, 2021년경 포카라에 중국자본으로 국제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니, 그때가 되면 3일을 절약하면서 좀 더 편하게 안나푸르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안나푸르나 

 

불과 몇 개월 전 일인데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여행객들의 발길이 막혀버렸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하듯이, 다시금 아버지와 함께 여행 코스를 계획하고, 그날을 기다리며 건강하게 오늘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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