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글 2]프라하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테마가 있는 글

2018.11.02

<바츨라프 광장>

저는 지난 9월 추석 연휴 동안 예전부터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프라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프라하를 그저 동화같이 아름다운 도시 정도로만 느끼고 올 것이 아니라 체코의 역사와 그 도시에 얽힌 사 연들을 안다면 훨씬 더 깊이 있게 그 나라를 경험하고 느 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Ruexp 프라하팀’이 쓴 『프라하 이야기』라는 책을 구매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쓴 Ruexp 팀은 프라하에서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예약 없이 모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 투어를 해주고 투어가 끝난 후 정해진 금액 없이 팁으로 가이드 투어 비용을 받는, 이른바 ‘팁투어’를 오랜 시간 진행해온 분들입니다. 『프라하 이야기』를 읽고 직접 팁투어를 들으면서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곳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프라하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일몰과 함께 악사들의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카를교, 중세도시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지만 아직도 체코의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인 프라하성, 보자마자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건축 기간만 천년이 걸렸다는 성비투스성당 등…. 모두 다 제 가슴 속에 너무나도 멋진 모습들로 담겨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체코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현장이었던 바츨라프 광장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10세기 보헤미아 왕국의 성군, 성 바츨라프 왕의 이름을 딴 바츨라프 광장에는 그가 말 위에 앉아서 깃발을 들고 있는 기마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광화문 앞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광장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체코의 근대사 역시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팁 투어와 책을 통해 알게 된, 바츨라프 광장과 관련 있는 체코의 근대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체코는 보헤미아 왕국 시절 400년 가까이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살아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패망과 함께 끝이 나면서, 보헤미아는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새로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오랜 세월을 다른 민족의 탄압 속에서 살아왔던 슬라브족에게 드디어 독립된 나라가 생긴 기쁘고 희망찬 날, 바츨라프 광장의 기마상 앞에서 건국 선언문이 낭독되었습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부터 1939년까지 20년간 중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 나치 독일의 식민 지배 및 전후 소련의 개입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에서 절대적인 통치자로 올라선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또한 독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이로부터 7년간 나치 독일의 지배가 시작됩니다. 결국 독일의 패망과 함께 끔찍한 전쟁이 끝났지만,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전 유럽은 큰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크게 반으로 나누어 서쪽은 연합군이, 동쪽은 소련군이 전후 처리를 맡기로 하였고, 동쪽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공산당 세력이 강해지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시련이 닥친 것입니다.

3. 1968년, 소련군의 무력 침공과 프라하의 봄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까지 확산될 것을 우려했던 소련은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의 탱크를 이끌고 바츨라프 광장에 무력 침공합니다. 이에 프라하의 시민들은 손을 마주 잡고 인간 벽을 만들어 비폭력으로 대항했지만 결국 발포 명령이 떨어졌고 시위대는 처참하게 진압당했습니다. 이것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프라하의 봄이라는 사건입니다. 프라하의 봄은 프라하의 민주화, 자유화, 의식이 깨어남 등을 만물이 다시 생동한다는 뜻으로 ‘봄’이라는 은유를 써서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4. 대학생 얀팔라흐의 죽음
프라하의 봄 이후 날이 갈수록 공산주의 정권의 압제는 강해졌습니다. 1969년 1월에는 당시 까를 대학의 철학과 학생이었던 21세 얀팔라흐가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을 시도하였습니다. 무자비한 소련의 압제에 대항하고자 뜻을 모은 학생들이 1달에 한 번씩 분신자살을 하여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고자 한 것입니다. 분신한 얀팔라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는데 치료 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소련의 침략에 항거하겠다는 이유보다는, 소련의 침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대다수가 보여준 도덕성의 상실에 항거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였지만 다시 한번 체코에 민주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소리를 낸 그의 용기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 뒤, 같은 장소에 두 번째 학생인 얀자이츠가 분신자살을 하고 세 번째로 에브센 플로체크라는 학생이 분신자살을 하였습니다.

5.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과 벨벳혁명
1985년 3월부터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정책의 물결이 1989년 동유럽에 이어지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혁명적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공산주의의 정권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총파업과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됩니다. 바츨라프 광장에 대규모 인원이 광장을 점령하여 시위를 하였고, 전 국가적으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정권이 물러나게 되고,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해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40년간 유지된 공산주의 정권은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진행된 이 혁명적 변화는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진행되었다 하여 ‘벨벳혁명’ 혹은 ‘비단혁명’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위의 내용을 공부하고 나서 직접 바츨라프 광장에 가보았습니다. 하벨시장에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길게 펼쳐져 있는 바츨라프 광장을 걸으면서 ‘아, 이곳이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의 탱크에 대항해서 프라하 시민들이 맞서 싸운 곳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어 현재의 모습과 겹쳐져 보였습니다. 바츨라프 광장 끝 중앙박물관 앞쪽에는 실제로 얀팔라흐가 분신 후 쓰러진 장소에 십자가를 새겨 놓았고, 바츨라프 기마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얀팔라흐와 얀자이츠를 기리는 석판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곳엔 시들지 않는 꽃들이 항상 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현재까지 체코의 민주화에 기여한 인물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 저도 그 석판 앞에서 묵념하였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이 오랜 식민통치 생활과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 이에 맞서 저항한 프라하 시민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좀 더 이 여행이 특별해지고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여행하실 때 관광지에 얽힌 사연이나 역사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서 보신다면 분명히 그 여행이 더욱 특별하고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이선용(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총무과 실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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