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달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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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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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은 7월을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7월을 ‘법을 생각하는 계절’로 부르고 싶습니다. 7월 17일, 바로 제헌절(制憲節)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국경일이자 공휴일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법을 만든 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제헌절

제헌절 그리고 7월 17일
제헌절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된 날입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약속받은 날이죠. 하지만 이것 아세요. 실제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은 그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요.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로 구성된 후 5월 31일 첫 국회를 열어 이승만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한 제헌국회는 가장 먼저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광복 후의 혼란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민주주의는 법으로 세워지고 법으로 지켜지는 것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해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에 쫓긴 국회는 헌법 제정을 서둘렀고, 일본의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모방해 만든 우리나라 첫 헌법이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합니다. 이승만 의장이 밝힌 공포문에도 ‘단기 4281년 7월 12일에 헌법을 제정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지요. 하지만 이 법이 서명·공포된 날은 그로부터 닷새 뒤인 7월 17일입니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하루가 급한 마당에 왜 닷새를 허비(?)했을까요? 7월 12일에 만들어진 헌법을 닷새 뒤에 공포한 것과 관련해 ‘조선이 건국된 날과 때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태조실록> 등을 보면 1392년 7월 16일 배극렴과 정도전 등이 고려 왕의 옥새를 받들어 이성계의 집에 몰려가고, 다음날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새 왕으로 등극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조선이 개국한 날은 7월 17일이 맞고, 북쪽과 분단된 상황에서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이어받는 의미가 중요하므로, 닷새를 늦춰 역사적 상징성을 만드는 일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록 등에 나오는 날짜는 음력입니다. 우리가 양력을 쓴 세월은 100년 조금 넘습니다. 사료 속의 1392년 7월 17일을 양력으로 따지면 그해 8월 5일입니다.
따라서 조선 건국일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한 것이 사실이라면, 얼핏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번듯한 나라를 세우려 한 그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법과 관련한 진실과 오해
그건 그렇고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법과 관련해 아주 엉뚱하게 쓰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의미를 잘 모르고 쓰는 것이지요.
“어제 주차위반으로 ‘벌금 딱지’를 떼었다” 따위로 쓰는 ‘벌금’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주차위반으로 벌금 딱지를 떼인 적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없으시겠지요. 주차위반으로는 벌금을 내고 싶어도 못 내니까요.
벌금(罰金)은 “범죄에 대한 처벌로 부과하는 돈”으로, 일종의 재산형입니다. 이를 내지 못했을 때는 노역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즉 형법이 규정하는 형의 일종인 것이죠.
그러나 “공법상의 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사람이나 질서를 위반한 자에게 국가나 공공단체가 부과하는 금전상의 벌”은 ‘과태료(過怠料) 부과’입니다. 전입신고를 늦게 하거나 주차위반을 했을 때 ‘돈’을 징수하는 곳은 법원이 아니라 지자체입니다. 이런 돈은 ‘벌금’이 아니라 ‘과태료’입니다. 즉 ‘과태료’는 형벌이 아니라 행정 처분으로 국가나 지자체 등이 부과하며, ‘벌금’은 형의 일종으로 법원이 그 정도를 정하게 됩니다.
또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과속을 하는 경우, 노상방뇨를 하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등도 절대 벌금을 내지는 않습니다. 이들 행위는 범칙금 부과 대상입니다.
범칙금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지만 금액을 완전히 납부할 경우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으로, 전과자가 양산되는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아무튼 제헌절이 있는 7월뿐 아니라 1년 내내 우리 국민 모두 법과 질서를 잘 지켜 과태료·범칙금·벌금 따위를 내는 일이 전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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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용어 중 비슷한 소리 다른 의미
법률 용어에는 또 글꼴이나 소리가 비슷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낱말도 많습니다. 법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나 영화 등에 많이 나오는 ‘신문’과 ‘심문’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떠세요? 여러분은 ‘신문’과 ‘심문’을 확실히 구분하시나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경우 신문을 쓰고, 더러 판사의 말에 심문을 쓸 수 있다’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문(訊問)이란 “법원이나 기타 국가 기관이 어떤 사건에 관하여 증인, 당사자, 피고인 등에게 말로 물어 조사하는 일”을 뜻합니다. 신문의 ‘신(訊)’이 ‘물을 신’입니다. 결국 ‘신문’의 본질은 ‘문답’입니다.
반면 심문(審問)은 “법원이 당사자나 그 밖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서면이나 구두로 개별적으로 진술할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법원, 즉 ‘판사’만 심문이 가능합니다. 심문의 ‘심(審)’이 ‘살필 심’으로, 판사가 당사자 등에게 진술 기회를 주고 심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심문’이 쓰이는 대표적 사례가 구속 여부를 두고 실질심사를 할 때 당사자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주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절차이지요.
결국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재판정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며 문답식으로 오가는 대화는 모두 ‘신문’입니다.
‘공포’와 ‘공표’도 잘못 쓰는 사례가 많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구분은 의외로 쉽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명확하거든요. ‘공포하다’와 ‘공표하다’는 둘 다 “알린다”는 뜻을 나타내지만, ‘공포하다(公布--)’는 “(법률 용어로) 이미 확정된 법률, 조약, 명령 따위를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린다. 관보(官報) 등 정부의 정기 간행물에 게재해 알린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공표하다(公表--)’에는 법률 용어라는 단서가 붙지 않습니다.
결국 법률 등을 만들어 세상에 알리는 일에는 ‘공표’가 아니라 ‘공포’를 써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상’과 ‘보상’도 참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이러합니다.
우선 ‘배상(賠償)’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피해자에게 그 손해에 대해 금전으로 물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위법 행위로 발생한 피해를 갚는 것이죠.
“수원지방법원은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녀는 성형수술 후 부작용이 나타나자 해당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따위가 ‘배상’을 바르게 쓴 사용례입니다.
이와 달리 ‘보상(補償)’은 “남에게 끼친 재산상의 손해를 갚거나, 적법한 행위를 했지만 그로 인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재산상의 손실이 생겼을 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갚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국가가 메워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공공시설물이나 신도시를 건설할 때 현지 땅을 수용합니다. 이는 위법은 아니지만 토지주인 입장에서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땅 주인에게 지불하는 돈이 토지보상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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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악법도 법’이라고 했을까?
자, 그건 그렇고요. 법과 관련한 재미난 ‘토막 상식’ 하나 들려 드리고 오늘 얘기를 줄일까 합니다. 바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아는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말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1930년대에 출판한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라고 쓴 내용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와전된 것입니다.
또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가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내용 중 헌법에 대해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찾아 교육인적자원부에 수정을 요청했는데요. 이때 일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며 독약을 먹었다”는 내용은 준법사례로 연결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 표현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적 법 집행을 정당화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글_엄민용 기자(경향신문/ 前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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