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영화 실무관(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먼저 우리 가족을 소개한다. 군산 토박이인 남편과 대전에서 자란 나, 여덟 살이 된 딸이 우리 가족이다. 결혼을 하고 실무관 부부가 되어 대전에서 군산으로 내려온 지 벌써 여덟 해가 되어간다. 시어머님이 구워주시는 박대구이를 이제는 당연하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군산 사람이 다 된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처음 몇 년간 군산은 나에게 그저 육아와 일을 끊임없이 병행해야 하는, 치열하고 낯선 곳일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군산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군산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딸이 어려서 시댁과 회사, 집을 왔다갔다 하는 생활에 벅차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넘어서는 둘러볼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군산 곳곳을 여행하듯이 다니고 있다. 이제야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의 여름이 고개를 점점 숙이는 8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 가족은 군산의 구시가를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우리는 우선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월명동에 있는 이성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모닝 세트를 시켰다. 빵지순례 좀 해본 사람이라면 대전하면 성심당, 군산하면 이성당을 먼저 떠올린다.
이성당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이즈모야 과자점”으로 시작하여 광복 후 “이성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운영을 이어가며 그 시절 군산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다. 우리는 영화나 광고 속에서만 보았지만, 부모님 세대들이 빵집 데이트를 하던 곳이 바로 이성당이었던 것이다. 시부모님과 이성당에 올 때마다 추억에 젖어 생생하게 그 시절 이성당의 모습을 말씀해 주신다. 어느 순간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나타나 동네 빵집들을 쓸어버릴 때에도 이성당은 고유의 단팥빵과 야채빵으로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주말이 되면 이성당 앞은 빵을 사려는 줄이 출입문 밖까지 길게 이어진다.

지인이 군산에 온다고 하면 나부터도 제일 먼저 들려 보내고 싶은 선물이 이성당 빵이다. 요즘에는 팥방과 야채빵 말고도 신 메뉴들이 계속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생크림 앙금빵도 많이 선물하곤 한다. 요즘 어디서나 많이 파는 생크림 앙금빵이지만 팥앙금이 가진 적당한 단맛과 생크림 특유의 진한 맛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우리가 먹은 이성당 모닝 세트는 생각과 달리 맛이 평범했다.

우리는 이성당에서 나와 왼쪽으로 한 블록 내려오다가 골목으로 들어가 조금 걸었다. 월명동 주민센터와 현재는 비어있는 오래된 건물 두 동이 나온다. 두 건물은 예전 군산지원과 군산지청이었다고 한다. 구법원 건물은 유치원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비어있고, 옆에 구 검찰청 건물은 현재 월명동 주민센터로 사용 중이다.
예전에는 시청까지 주변에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 이곳이 얼마나 번화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청사에서 조금만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오면 큰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는 집이 있다. 1층은 지원장이, 2층은 지검장이 사용하던 옛날 관사라고 한다.
대문에서 정원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관리가 잘되어 있어 놀랐다. 현재는 개인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안내 글에 후다닥 대문에서 멀리 떨어졌다. 이 건물을 유심히 보던 딸이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집 같다고 얘기한다. 듣고 보니 외형도 일본식 주택이었지만 촌스러울 것 같은 옥색으로 칠한 벽면과 다홍색 지붕이 묘하게 어울리며 독특한 일본 느낌을 내뿜는 듯했다.

예전에 이 관사를 쓸 시절만 해도 이곳 관리인도 별채에 상주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시절 법원과 검찰의 위상이 어땠는지 혼자 상상해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옛 관사건물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군산 관광안내소가 있다. 안내소와 그 옆 건물인 게스트하우스 사이에 작은 일본식 정원이 숨어 있다.
그 정원 한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못에는 연꽃이 만개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관리하는 정원이어서 그런지 연못에 물고기들도 많아 그곳에서 숙박하는 가족들뿐 아니라 우리도 같이 물고기를 한참 구경했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어서 그런지 일반 숙소나 카페들도 일본식 정원을 콘셉트로 꾸며놓은 곳이 많다.
군산에 가족들과 놀러 온다면 일본식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군산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우리 가족에게 이 동네는 산책을 나오는 곳이었기에 지금까지 딸과 같이 있는 군산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번 기회에 딸과의 추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밖에서 볼 때는 건물 한 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정원까지 있어 규모가 컸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다다미방이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었다. “이 큰 주택을 지으려고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이 고생을 했겠냐”는 남편의 말에 단지 일본양식의 주택이라는 사실보다 더 묵직한 무언가를 느끼며 걸었던 것 같다. 빨리 초원사진관에 가자는 딸의 재촉에 서둘러 히로쓰가옥에서 나왔다.


초원사진관은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성당에서 빵을 구매한 후 제일 먼저 들르는 코스 중 한곳일 것이다. 군산에서 뭇국으로 유명한 ‘한일옥’도 맞은편에 있어 식사 후 들르기에도 좋다. 이 사진관은 1998년 상영된 심은하, 한석규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우리 또래를 비롯하여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본 친구들이 있을까? 아마도 영화 자체보다 유명한 주연배우들이 나왔기 때문에 들르는 곳이 아닐까 한다.

종종 주말에 나와 산책하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딸에게 진짜 군산 여행을 해보자고 했다. 딸은 ‘여행’이라는 한 단어만 덧붙었을 뿐인데도 엄청 좋아라했다. 사진관 앞에서는 정말 관광객처럼 사진도 찍었다. 여행이라고 말하고 나니 나도 괜히 설?다. 영화 제목처럼 8월에 이곳에 왔으니 제때 온 것일까. 진짜 크리스마스에 다시 딸과 함께 와봐야겠다.

월명동에서의 짧은 산책을 끝낸 후 우리는 조금 쉬면서 산책을 마무리할 겸 집 근처에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에 가기로 했다. 이 철길마을은 놀거리가 꽤 있어 아이와 함께 종종 오는 곳이다. 이성당과 거리가 있어 관광객들이 필수코스로 들르는 곳은 아니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제지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철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현재 철로는 운영되지 않고 남겨진 철로를 따라 관광지가 되었다. 황정민과 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 영화 촬영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알록달록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1970~80년대 건물에 추억의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와 그 당시 교복을 입고 스냅촬영을 할 수 있는 사진관들이 많이 모여 있다. 우리도 딸과 함께 달고나 체험도 하고 뽑기도 해보며 즐겁게 산책을 마무리했다.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지금까지 군산이 나에게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을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걸으니 느낌이 무척 새로웠다. 이것이 현지인의 관점과 관광객의 관점 차이인 듯하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여행객들은 군산에 오면 옛날 항구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에 놀란다. 물론 군산이 낙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군산을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풍부하게 남아있는 도시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