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신대호수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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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필객] 신대호수의 생태계

2024.03.05

수원지방법원 남문 앞 신대호수는 서쪽의 원천호수와 더불어 광교호수공원이라 불린다. 1929년 축조된 신대저수지(윗방죽)와 원천저수지(아랫방죽)가 광교신도시개발로 인해 2013년경 202만m2이 넘는 면적의 광교호수공원으로 재탄생했다. 2개의 호수와 동산, 6.5km가 넘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습지와 꽃밭, 잔디밭, 동산, 쉼터와 오두막, 정자 등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김지연 판사(수원지방법원)

(물닭의 수상비행)

물닭과 민물가마우지
신대호수에는 까만 새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보통 이마와 부리에 걸쳐 선명한 곡선 모양의 흰색 무늬가 돋보이는 쪽이 물닭, 그렇지 않은 쪽이 민물가마우지라고 한다. 대개는 더 귀여운 쪽이 물닭인 것 같다. 운 좋게도 신대호수와 만난 첫날부터 물닭이 물수제비마냥 수면을 박차는 장면을 우연히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민물가마우지가 자기 머리통만 한 물고기를 잡아 한 번에 삼키는 장면도 보았는데, 가마우지는 먹이를 통째로 먹기 때문에 혀가 필요 없어 작게 퇴화했고, 콧구멍도 없다고 한다.

뿔논병아리
신대호수 탐방 중에 배추도사의 눈썹처럼 앞머리가 V자로 뻗친 새가 호수에 많이 보였다. 생김새가 재미있어서 찾아보니 뿔논병아리였다. 언젠가부터 뿔논병아리 한 쌍이 호수 가운데에 둥지를 틀었는데, 이 둥지가 여름에 비가 올 때마다 산책용 원형 데크가 있는 곳으로 떠내려왔다. 데크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암수 한 쌍이 서로 번갈아 가며 둥지를 지키고, 호수를 돌아다니며 수련잎과 줄기 등을 모아 둥지에 덧대며, 알도 번갈아 가면서 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부화 시기가 다가오자 둥지 앞 데크에는 대포같이 커다란 카메라와 삼각대를 든 탐조인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화를 기다렸다.
어느 날 오전에 우배님께서 알이 부화한 것 같다고 알려주셨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과연 탐조인들이 둥지 앞 데크에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다. 절로 신이 나서 우배님과 함께 얼른 내려가 탐조인들의 대포카메라 사이로 소박하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탐조인들은 풋내기 탐조인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시선으로 내게 자리를 내주었고, 그날 아침 몇 시쯤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지 알려주면서 친절하게 부화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들의 친절에 힘입어 사진을 찍으면서 살펴보니 4개의 알 중 1개는 부화하지 못했고, 부화한 새끼는 부모새의 등에 타서 머리통만 간신히 보였다. 새끼들을 업고 다니면서 키운다니, 정말 멋지고 귀여운 새다. 볼 때마다 왠지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님들이 생각나 숙연해지기도 한다.

남생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그런지 뿔논병아리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남겨두고 둥지를 떠나버렸다. 돌아와서 다시 품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어느새 남생이 한 마리가 위풍당당하게 알 위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남생이가 불쌍한 알을 품어주는 줄 알고 자연의 품앗이에 감동했는데, 알고 보니 먹으려고 찜한 거란다. 호수에 물고기가 하도 많아서 입 벌리고 헤엄치면 배가 부를 것 같던데 굳이 그 알을 먹어야겠니. 남생이는 모처럼의 특식이 기뻤는지 개선장군처럼 알 위에 자리를 잡고 일광욕을 하다가 알과 함께 사라졌다.

느긋하고 우아한 백로와 왜가리
뿔논병아리 외에도 신대호수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자주 보인다. 이 새들은 둘 다 황새목 왜가리과에 속하고, 습지를 좋아하는지 주로 갈대, 창포, 수련, 노랑어리연꽃이 우거진 원형 데크 부근에서 돌아다니는데, 몸동작이 아주 느긋하고 우아하다. 백로는 사계절 내내 살고 있으니 백로 중에서도 텃새인 쇠백로인 것으로 보인다. 왜가리는 우는 소리 때문에 ‘으악새’라고도 불리는데 아직 제대로 들어보진 못했다. 둘 다 자기 영역에 동족이 오면 싸워서 쫓아낸다는데, 백로와 왜가리는 서로 다른 종으로 여기는지 본 척 만 척 평화롭게 지내는 듯했다.

고라니와 청설모
재판부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신대호수와 원천호수 사이의 동산에서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본 적 있다. 우거진 숲속을 펄쩍펄쩍 뛰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얼마나 재빠른지 사진을 찍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한번은 새끼 고라니 2마리가 정자 부근에서 호숫가까지 뛰어 내려와 물장구를 치더니 도로 뛰어올라가는 모습도 보았는데, 이때도 너무 빨라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청설모도 나뭇가지 사이를 날듯이 뛰어가는 모습만 자주 보았는데, 가을에 산책로 부근에서 도토리를 갉아먹는데 정신이 팔린 청설모 사진은 찍을 수 있었다. ‘도토리 줍지 말고 다람쥐에게 양보하세요’란 공원 플래카드에 조금 다른 의미로도 깊이 공감한 순간이었다.

딱따구리, 물까치, 딱새와 흰뺨검둥오리
한번은 검정 바탕에 흰색 띠무늬가 있는 날개, 밝은 주황색 아랫배를 가진 엄청나게 화려한 새를 보았는데, 알고 보니 오색딱따구리였다. 박쥐처럼 잽싸게 나무를 거꾸로 타는 청딱따구리도 곁에 있었다.
생김새는 까치와 똑같지만 영롱한 하늘색 꼬리깃이 인상적인 물까치는 여러 마리가 북적북적 몰려다니곤 하는데,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패싸움에 강하다고 한다.
참새목에 속하는 딱새는 한 입 거리도 안 될 것 같이 작고 동그란데, 검은 날개에 선명한 흰색 무늬가 있고, 배는 진한 주황색이어서 갈색 보호색을 가진 참새와 달리 눈에 확 띄었다.
부리 끝이 샛노랗고 날개 아랫깃이 시원한 청색인 흰뺨검둥오리는 사람을 겁내지도 않고 오리발로 터벅터벅 걸어 데크를 산책하며 돌아다니곤 한다.

작은 생태계
내가 간신히 포착한 일부 동물들만 해도 이 정도이고, 호수공원에는 지면상 소개하지 못한 온갖 꽃과 나무들과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되고, 나도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인근에 이렇게 멋진 작은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면서, 2023년 봄의 호수공원 사진과 함께 2024년 봄을 맞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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