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1] "판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판사의 시간은다르게 흐른다 

 

“판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글. 사진. 서승렬 고등법원 부장판사(특허법원)

 

I. 글을 시작하며
“60/150 클럽”
9년 전인 2011년 처음으로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등경력재판부의 고법판사로 근무하면서 종종 머릿속에 떠올렸던 단어입니다. 앞의 60은 재판부 3인의 법관경력 합계가 60이라는 의미이고, 뒤의 것은 재판부 3인의 연령을 합한 숫자가 150을 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재판부 평균 법관경력이 20년이고, 평균 연령이 50세인 재판부를 상정한 것인데, 당시 평생법관제를 염두에 두고 위 요건을 갖춘 재판부를 “원로재판부”라고 생각하며 위 재판부에 대하여는 법원에서 환갑에 따른 예우 등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9년이 지난 2020년, 저는 특허법원 제5부 대등경력재판부에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 재판부는 위 클럽 가입 기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59/150”에 도달해 있습니다. 즉 과거 생각한 “원로재판부” 입성의 문턱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재판부의 현실을 보면 “원로재판부”와는 거리가 멉니다. 재판장의 의전서열에 따라 특허법원에서 가장 젊은 재판부로 분류되고 있고 그 결과 특허법원 재판부의 행정일 중 그래도 가장 젊고 활기찬 재판부가 맡기에 적합한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제5부가 먼저 거론됩니다.
<법원 사람들> 원고 의뢰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이 지금 저의 눈앞에 있습니다. 위 공문 중 필자란의 “법원장(지원장) 또는 부장판사, 판사 이야기”란 위에 “특허법원”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존경하는 이승영 특허법원장님의 배려로 가장 젊은 재판장인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다른 재판장님들께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염치를 아는 저인지라 너무 송구하여 우리 재판부 두 분 고법판사님들이나 다른 재판부 판사님들께 의례적으로 한번 써 보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워낙 눈치들이 빠르신 분들이라 내심 그 기회를 가지기를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치시네요. 새삼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진짜 가족 같은 분들입니다.

 

판사의 시간은다르게 흐른다 

 

II. 시간의 상대성
(16, 24, 25), (16, 24, 25), (16, 24, 25), (15, 24, 25), (20, 24, 26), (16, 24, 26), (16, 24, 26), (24, 27, 28), (24, 27, 28), (24, 27, 28)
위 숫자를 보고 뜬금없이 무슨 의미 없는 숫자를 나열하였느냐고 나무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미소를 지으시는 분들도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예, 위 숫자는 지난 10년간 제가 근무한 재판부의 사법연수원 기수를 가, 나, 다 순서로 나열한 것이고 모든 집합에 공통된 ‘24’가 저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처음 3년과 끝 3년의 숫자가 똑같은 것은 재판부 구성원이 바뀌지 않은 때문이고, 중간(6, 7번째)은 숫자는 똑같지만 재판부 구성원은 변경된 경우이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위 숫자는 2011년부터 시작되어 10년이 된 대등경력재판부 역사의 일부이기도 합니다만, 주관적으로 위 숫자는 저에게 물리학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이론으로 평가받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체감시켜준 소중한 경험의 시간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2010년까지 뉴턴의 역학을 믿는 사람이었고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프레임 하에서 세상과 나를 규정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판사들에게 흐르는 시간이 똑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대등경력재판부라는 전혀 다른 중력장이 지배하는 공간에 진입하면서 시간이 전혀 다르게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2010년 제가 창원지방법원 형사재판부에 근무할 때의 중력장이 (24, 38, 39)이었음을 생각하면 제가 느낀 중력의 차이를 쉽게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대등경력재판부라는 제도가 기존에 없던 아주 새로운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가 있는 판사들’이라 그 공간의 장에 접어들면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결국 모든 화제를 집어삼키는 블랙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재판연구원이 대등경력재판부에 배치 된 이후에는 재판연구원들이 가, 나, 다 판사님들 각자로부터 별개의 장소에서 줄거리는 유사하지만 등장인물은 조금 다른 정말 뻔한 스토리(대체로 나 때는 말이야 야단치는 것이 장기이고 배석판사들 판결문 해체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부장님들과 새벽까지 폭탄주를 마시면서도 제때 수준 높은 판결문 초고를 작성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들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성장한 것 같다. 요즘은 나를 비롯하여 그런 성격을 가지신 분들은 없는 것 같으니 편안하게 근무하라는 이야기 등이다)를 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풍문도 들립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고법판사로 있으면서 7년간 ‘나’주심으로만 있었는데, 당시 ‘가’부장님들께서 유독 저에게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들었는데 요즘 문득 생각해 보면, “내가 (고등법원에서) 나 주심을 할 때는 말이야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냐”의 줄임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이, 아니겠지요.....나이가 드니 쓸데없이 의심만 늘어가는데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제가 대등경력재판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사실 앞선 7년간은 구성원 간 기수 차이가 상당하여 사실상 불완전한 대등경력재판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분도 고등부장과 고법판사로 명백하게 구별되었고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이 완전한 대등경력재판부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 재판부와 완전한 대등경력재판부의 경우 가, 나, 다의 중력비가 일정하여 재판부 결성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궤도로 재판부가 운행되는 반면, 불완전한 대등경력재판부는 가, 나, 다의 중력비가 달라 그 결과의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이지요. ‘가’ 중력이 클 경우 일반 재판부의 운행궤도와 비슷하게 운행되고, ‘나’, ‘다’ 중력이 클 경우 완전 대등경력재판부의 궤도 비슷하게 운행되는데, 상세한 궤도는 재판부의 합의 내용처럼 비밀로 분류되어 밖에서는 알기 어렵고, 다만 “카더라”라는 소문으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대등경력재판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기억은 같지가 않으므로 몇 사람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그 전모를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등경력재판부의 시간은 분명히 다르게 흐릅니다. 그리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분명히 다릅니다. 확실한 것은 판결문을 작성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신건 합의, 속행 합의 등을 하다보면 출근하여 몇 줄 적지도 않았는데 퇴근 시간이 되어 있습니다. 판사 경력이 상당한 정도가 되다 보니 모두 남의 판결문을 보는 눈은 높아져 하일성, 허구연 해설위원(요즘으로 하면 송재우, 김형준 해설위원)의 수준에 이르렀고, 판결문을 작성함에 있어서도 마음으로는 류현진, 양현종 투수처럼 높은 퀄리티를 가진 판결문을 내보일 것 같지만 막상 현실은 내년 재계약을 걱정하여야 하는 노장 투수처럼 구종은 다양하고 제구력은 좋으나 구속이 예전 같지 않고 100구를 던질 것 같지만 30구만 던져도 벌써 지친 기색이 완연하다는 것입니다. 더 문제는 예전 같으면 곧바로 판결문을 작성하며 보냈어야 할 시간을 판결문 작성에 관한 걱정을 하며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의 역설’입니다. 오랫동안 재판을 하다 보니 사건을 보면 대략 소요되는 시간에 관한 견적이 나옵니다. 옛날에는 그런 식견이 없고 퀄리티에 관한 자긍심도 없다보니, 무작정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하에 일단 일을 시작하고 늦어지면 밤을 새워 하며, 표현 방식보다는 내용이 빠짐 없이 담겨 있음에 기쁨을 느꼈지만 지금은 “야, 이 나이에 밤을 새울 수는 없잖아, 조금 간략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고민으로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다 보니 결국 초읽기에 몰린 바둑기사 같은 심정으로 판결문을 작성합니다. 물론 재판연구원의 도움으로 지금은 위와 같은 일이 상당 정도 경감되었지만 말입니다.
대등경력재판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처(대전지방법원 이헌숙 판사)입니다. 우리 부부는 2010년 창원지방법원 합의부 부장으로 함께 발령받았습니다. 그 이후 처는 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로서의 길을, 저는 고법판사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10년이 지나 보니 처에게 흐른 시간과 저에게 흐른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집에서의 위상, 몸의 상태, 젊은 판사들과의 호흡 정도 등에서 현격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가사에 관한 사항이라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한다면 처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했던 대법원에 근무하는 지귀연 부장판사가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와 “형님, 이헌숙 부장님과 배석모임 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연히 집배석인 형님도 참석하셔야죠”......그 말을 듣고 저는 충격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하지 못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나는 집에서 배석이 아니라 가사연구원인데.....”

 

판사의 시간은다르게 흐른다 

 

III. 글을 마치며
할당된 지면이 다 되어 맥락 없이 갑자기 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대등경력 재판부에 근무하는 판사의 시간이라는 용을 그리려다 저의 넋두리라는 뱀을 그리고 말았습니다. 끝나기 전에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고법판사로서 지내는 기간 동안 대등경력재판부에서 ‘가’라는 공간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더라도 ‘나’를 버리고, ‘다’버리고 꼭 ‘가’야만 되는 설탕이 묻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때때로 ‘가’진 분들에게 ‘나’를 버린 사람처럼 행동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가’라는 공간에 머물러보니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Reality is not what it seems)』라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 제목처럼 ‘가’라는 자리가 ‘가’면을 쓰고 ‘가’식으로 버티기도 해야 하는 ‘가’여운 자리라는 깨달음도 생겼습니다. 이제와 힘든 ‘나’를 이끌고 고난의 행군을 하셨던 이광만 원장님(2011~2013), 황병화 원장님(2014), 이승련 부장님(2015), 이균용 원장님(2016), 김용석 원장님(2017)께 뒤늦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사족이지만 김용석 원장님께서는 금년에 서울고등법원에서 “90/175 클럽”을 달성한 재판부에 계시더군요. 그곳은 ‘가’, ‘나’, ‘다’의 땅이 통합된 완전 대등의 세계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올 “100/180 클럽”의 대등경력재판부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그곳에서는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처럼 시간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나이와 씨름하는 과거가 많은 판사님들(이를 정량적으로 정의하면, 판사로서 지내온 기간이 정년까지 남은 판사기간보다 많거나 비슷한 판사님들을 말합니다)의 분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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