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2] 엄마의 김장

엄마의김장 

 

엄마의 김장


글,사진 양운우 사무관(서울행정법원)

 

‘엄마’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나는 따뜻한 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엄마 팔베개를 하고 낮잠이 들었다 깼을 때 엄마가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불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셨던 엄마.

 

그런 엄마가 아프시다. 2016년 12월 어느 날 큰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운우야, 엄마가 아프시다. 유방암이래.” 머리가 띵했다. 엄마가 유방암이라니 유방암은 원래 젊은 여성에게서 많이 생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연세가 70이 넘으신 엄마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셨을까. 원래 엄마는 젊어서부터 위도 안 좋고 비염도 있어서 항상 잔병치레를 많이 하셨다. 그래도 골골백세라고 잔병치레는 많이 하셔도 기력은 좋으셔서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아빠도 내가 고3때 췌장암이 발병하여 1년 만에 돌아가셨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애들 다 크고 먹고 살만하니까 뭐가 그리 급하신지 자동차 한번 사서 몰아보고 싶어 하셨는데 그 소원 하나 이루지 못하고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만 몰다 돌아가시다니 지금 내가 아빠 나이가 되어보니 아빠 인생이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말쯤 법원행정처 3년 근무를 마치고 서울동부지방법원 야간영장 업무를 지원하였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치고 싶어서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고 추가 수당으로 필드라운딩을 다닐 계획이었다. 고향 가까이 사시는 형들, 누나 모두 일을 하시니 엄마 병원 모시고 다니기 쉽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어 서울 큰 병원으로옮기자고 하여 서울로 모시고 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가슴 전절제 수술을 하였다. 엄마는 한쪽 가슴이 사라지자 마음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브래지어에 넣는 인조유방을 사시는 모습을 보고 ‘아, 70이 넘으셨지만 엄마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검사와 수술하는 근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다.

 

엄마의김장 엄마의김장 

 

엄마는 집에 계시면서 옛날 얘기를 가끔씩 하시곤 하셨는데 얘기를 듣다 보면 우리 엄마의 일생을 책으로 한번 써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배운 것 없던 아빠와 엄마가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당신들처럼 힘들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없는 살림에 구례에는 인문계고등학교가 없어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내고 대학교육까지 시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을까.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으셨는데 유일하게 돈과 자식들 공부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자식들을 미국유학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아빠의 벌이가 넉넉하지 않다보니 엄마가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하셨다.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는 대한생명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해서 약 20년 정도 일을 하시다 지금은 시장에서 잡화점을 하고 계신다. 첫 월급날 노란 봉투에 시장표 닭튀김을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살림만 하시다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해 남들한테 보험 들어 달라 부탁을 하고 다니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유방암 수술 및 항암 4차를 무사히 마치고 여성호르몬 차단제를 처방받고 6개월 내지 8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다행히 기력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엄마와 우리 형제들은 이제는 다 나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2019년 8월 정기검진에서 다시 한 번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2년 6개월 만에 암이 가슴뼈로 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가슴 쪽에 통증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유방암은 가까운 가슴뼈로 전이가 많이 된다고 한다. 엄마는 주위에사시는 동네 아주머니들 15명이 유방암 수술을 하고도 아무도 재발이나 전이되지 않았는데 당신만 전이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해 봄에 내가 사무관시험을 합격하고 발령이 난 후여서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방사선치료를 권하셨다. 매일 1회씩 18회에 걸친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나니 암 부위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은 약을 바꿔서 처방을 해주시면서 3개월에 한번 씩 내원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3개월에 한번 씩 검사를 받으러 올라오실 때마다 엄마는 가슴부위 통증을 호소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 6월 경 의사선생님께서 이번 달부터 보험적용이 되는 신약을 써보자고 하셨다. ‘입랜스’라는 유방암치료제로 보험적용 조건이 까다로운데 엄마의 케이스에 적용 가능하다고 하셨다. 입랜스를 복용하고 나서부터 엄마는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3개월 후 CT를 찍어보니 뼈가 조금씩 재생되고 있다고 하셔서 우리 가족은 이제 조금씩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아니 더 악화되지만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올해도 그 와중에 엄마는 텃밭에 배추를 심으셨고 11월 말쯤 김장을 하신다며 내려오라 하셨다. 토요일 새벽같이 출발해서 엄마가 계시는 구례로 향했다. 사실 내가 김장을하기 위해 시골에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약 5년 전 쯤부터다. 그 전에는 서울에서 맞벌이하는 막내아들의 당연한 권리인 듯 김장 후에 엄마가 택배로 부쳐주시는 김치를 받아서 먹기만 했다. 벌초, 시제 같은 집안 행사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사시는 두 형들과 형수님들 그리고 이모들이 해마다 엄마와 함께 김장을 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형들과 형수님들의 눈치가 보여 시골 일을 힘들어하는 아니 두려워하는 와이프는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둔 채 혼자서 시골에 내려가서 김장을 해 보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김장이라는 것이 단순히 배추 속에 버무린 양념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텃밭에서 배추를 뽑는것부터 시작해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배추를 버무리기 전까지 준비 과정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처갓집을 비롯해서 요즘 대부분 가정에서는 인터넷이나 농협을 통해 절임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면 간단하지만 엄마는 해마다 여름이면 텃밭에 씨를 뿌리고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손수풀을 메가며 수확하신 배추로 김장을 하다보니 유독 힘쓰는 일이 많아서 남자의 일손이 꼭 필요했고 그 후로는 매년 김장철이되면 도저히 미안해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김장 

 

12시쯤 도착하니 벌써 이모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들이 큰 통 5개에 어제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를 씻고 계셨다. 빨간 대야 3개에 물을 가득 담고 세 차례에 걸쳐 차례차례 배추를 씻어 소금기를 빼서 평상에 물기가 빠지도록 쌓았다. 올해에는 배추가 크고 속이 꽉 차서 잘 되었다고 한다. 텃밭에 심은 배추가 200포기인데 4등분을 하니 800포기쯤 되었다.


저녁에는 배추 속에 넣을 김치양념을 만들었다. 큼지막한 크기의 빨간 통 2개에 각각 고춧가루, 찹쌀죽, 새우젓, 멸치젓, 생새우, 생강, 마늘, 배즙, 사과즙, 멸치육수, 갈은 조기, 매실 등 갖가지 양념을 넣고 저어야 하는데 작년에는 집에 있는 작은 나무 주걱으로 젓다 보니 힘들었는데 올해에는 재작년에 고향으로 귀향하신 작은아버지께서 시멘트 반죽용 전동공구를 준비하신 게 아닌가. 유레카~ 처음에는 공구 작동이 서툴러 양념이 이리 저리 튀었지만 조금 지나 익숙해지니 아주 편하게 양념을 저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제 밤 동안 숙성시킨 양념에 청강, 무 생채, 쪽파, 대파, 양파, 갓 등을 넣어 섞어김치속을 만들자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되었다.

먼저 이모들, 엄마, 작은어머니, 큰누나, 형수들이 김장매트 주위에 자리를 잡고, 등기소 공익요원인 조카가 마당에 있는 물기를 뺀 배추를 방으로 옮겨주면 나는 방 안에서 김장매트에 버무릴 배추와 양념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부어 주었다. 나에게는 이모가 7명이 있는데 큰 딸이었던 엄마를 포함하면 자칭 8공주였다. 이모들 모두 흥이 넘치셨는데 그 중에 최고는 큰이모였다. 큰이모는 김장하면서 요즘 대세인 트롯을 부르는가 하면 사돈인 작은아버지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김장의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10시쯤 되자 다들 출출하던 참에 형수님이 삶은 돼지수육과 굴 무침을 갓 버무린 배추김치에 싸서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김장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김장을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을 먹으니 이런 재미로 엄마가 힘들지만 김장을 하는 것이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모들은 엄마 같은 큰 언니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제발 일 좀 그만하라고 하며 김장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내년부터는 각자 사서 먹자고 했다. 벌써 몇 년째 계속되는 얘기지만 엄마는 텃밭이 있는데 어떻게 일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아무리 힘들어도 밭일을 놓지 않으신다. 참 자식 사랑, 동생 사랑이 유별난지라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시는 것이리라.
12시쯤 김장이 끝나고 갓 담은 김치로 점심을 먹고 각자 김치통을 차에 싣고 집으로 떠나면서 엄마의 올해 김장도 이렇게 끝났다. 올해 김장은 배추가 좋아서 김치가 맛있었다. 엄마는 당신께서 직접 농사지어 이모 7분, 작은아버지,우리 5형제까지 모두 열세 가족이 한 해 동안 먹을 김장을 해줬다는 사실에 흡족해 하셨다. 우리 모두 떠나고 나면아마 엄마는 며칠은 끙끙 앓으실 것이다. 그래도 내년 봄이 되면 엄마는 텃밭에 감자를 심고 여름이 되면 배추씨를 뿌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겨울이면 다시 모여서 김장을 할 것이다. 부디 엄마가 건강하셔서 계속 김장을 하러 구례로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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