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1] 세이킬로스 비문의 노래

세이킬로스 

 

세이킬로스 비문의 노래 - 삶과 고통의 관계

 

글. 문재욱 사무관(대구고등법원)

 

현재 시점까지 고고학적으로 ‘완성곡의 악보가 온전히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트랄레스의 유적(현재는 터키의 아이든 지역)에서 발굴된 한 원형 기둥모양 비석에 기재된 어떤 노래라고 합니다. 비록 이 노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악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모습인지 파악 가능한 가장 오래된 노래라는 점에서 일단 나름의 고고학적 의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가 갖는 고고학적 의의에 더하여, 노래의 음과 가사가 갖는 깊은 울림에 더욱 감명을 받았던 바 있어 오늘 이 글을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위 비석의 비문(碑文)은 서문과 악보, 마지막으로 글쓴이로 추정되는 인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서문에는 나는 묘비요, 우상이다. 죽지 않는 기억의 상징으로서 세이킬로스가 나를 이곳에 세웠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고, 마지막의 인명 부분에는 ‘세이킬로스, 에우테르페에’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에 위 비석의 비문을 ‘세이킬로스의 비문’이라고들 부릅니다. 위 비문의 중간 부분인 악보에 기재된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이킬로스 

 

위 가사에 대하여는 ①세이킬로스가 에우테르페라는 여성(아내 또는 어머니)을 추모하며 지은 것이라는 해석과 ②음악의 여신 무사(뮤즈) 중 하나인 에우테르페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 등이 있습니다. 약 2천 년 전을 살았던 사람들의 사고가 현대를 사는 저와 같지는 않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①의 해석이 더욱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위 노래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떠나, 가사의 내용 자체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볼 때, 일단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많은 해석자들이 이 노래에 대해 말하듯 ‘인생은 짧으니 현재의 삶을 즐겨라(Carpe Diem)’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지은이의 생각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월 동안 무엇 때문이었는지 많이 힘들어하던 일이 종종 있었던 저는, ‘삶에 고통 받지 않기를’이라는 말이 더욱 와 닿았고, 그 앞의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이라는 말 역시 그 말과 연결되어 ‘비록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고통 받지 않기를, 살아 있는 동안은 빛나기를 기원한다’는 위로의 노래로 들렸습니다. 제가 우연히 이 노래를 복원해서 부른 음악을 들었을 때가 다년간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막 지났던 때였고, 또한 그 곡조가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짧은 생각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의 고통, 고뇌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양의 고통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낮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높을 수도 있겠죠. 또한 고통을 겪게 되는 사건·사고의 횟수나 그 정도의 심각성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게 되는 원인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종교 관념과 도덕관념으로부터, 어떤 누군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로, 또 누군가는 또 다른 원인으로.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삶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것이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소수는 아닐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까지는 별다른 고통을 겪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고통을 야기할 수 있는 불행한 사건이 앞으로도 그 사람을 엄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 다수는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는 내내 고통이나 고뇌를 거의 겪지 않는 것 같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는 고뇌를 겪었으나 현재는 이를 이겨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본받아 보려고 노력하기도해 보지만, 세상에 날 때부터 우리가 각자 받은 것들(재산, 가정환경, 타고난 성격이나 능력 등 무엇이든)의 차이를 느낄 때면 그러한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곤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누군가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당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서 더욱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신이 그토록 고뇌에 차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 고통 받는 사람들 사이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므로, 가장 최악의 고통을 받는 사람을 제외하면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여도 나보다 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받는 우리 개개인 대부분의 입장에서는 ‘내가 고통을 받고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나보다 더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비교적·상대적인 위치가 우리에게 위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적으로 다년간 많은 고뇌를 겪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고뇌의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후에는 ‘나는, 더 나아가서 우리는 왜 이토록, 가끔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가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하는 종교가 있기에 종교적인 해답을 구하려 하였고, 다음으로는 다른 학문을 통해 해답을 구하려고도 해 보았는데, 모든 분야에 학식이 짧은 탓에 명쾌한 답은 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고민하던 중 저는 우연한 기회에 위 세이킬로스 비문의 노래를 복원한 곡을 듣게 되었는데, 이때 저는 참 부끄럽게도 가슴이 뭉클한 느낌이 들더니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는 위 노래의 가사만 보았을 때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을 했습니다. 세이킬로스의 노래는 마치 제게 ‘삶이 그대를, 더 나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대체로 원래 그러한 것이니, 이에 대한 해답을 굳이 찾으려 하기보다는, 짧은 삶이지만 살아가는 순간을 빛나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니?’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렇다고 ‘어차피 삶은 짧고 빨리 끝날 거니까 고통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들리지는 않았던 것은, 마지막 가사가 ‘시간(χρονος)은 끝을 청할 테니’라는 유려한 표현이기 때문이었을지도, 아니면 곡조가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Carpe diem’을 노래한 오래된 시나 노래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이 노래보다는 비슷한 시기 로마의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의 송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호라티우스의 송시는 너무 많은 이국적인 고유명사들이 등장하고, 문장이 짧지 않아 의미하는 뜻이 명확한 편이어서 다른 해석의 여지는 적으며, 결정적으로 이에 맞추어진 음악의 악보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과 고통’이라는 측면을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요. 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저는 호라티우스의 송시보다는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더 선호합니다.
인터넷에서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복원한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저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다른 많은 현대인들 역시 이 노래에 많은 감명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세이킬로스, 당신의 기억은 죽지 않는 것에 성공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세이킬로스가 아내의 무덤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아내를 추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2천 년 전의 노래가 이토록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입니다. 서구권에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Nihil sub sole novum)’는 말이 있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의 내용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2천 년 전 노래의 가사와 곡조가 현대인들에게도 국적을 불문하고 감명을 부여하는 것은 제게는 여전히 신기한 일입니다. 특히 가사도 가사이지만, 곡의 선율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연히 이 글을 읽어보시게 된 많은 분들께도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세이킬로스 

▲ 제주도 서남쪽 끝 송악산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삼방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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