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표준어, 그리고 교양어

이야기 

 

교양 있게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표준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며 적절한 빠르기로 포즈도 활용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논리적으로 말하되 유머도 섞는 것’이라는 식의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것 말고 제언의 성격을 담아 이곳에 풀어보고자 한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함.” 표준국어대사전이 정하고 있는 우리 표준어의 정의다. 그런데 ‘교양 있는’ 부분에 불만이 적지 않다. ‘교양 있는’이라는 표현이 모호해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며, “그럼 표준어를 안 쓰거나 못 쓰는 지역어 사용자는 교양이 없다는 말이냐?”는 감정 섞인 불만도 자리한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이니 방언·사투리는 교양 없는 사람들이 쓰는 지역 말 아니냐는 것이다. 일견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건 어떤가. 중국의 표준말은 보통화(普通話)라 부르고, 표준어의 일본어 버전은 공통어(共通語)다. 이것을 북경 말 아니면 ‘특수한’ 것이고, 도쿄 언어 외에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냐 한다면 너무 비약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런 논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표준어 자체가 아니다. 그 중에 과연 어느 개별 단어를 취사·선택해 어떻게 조합하고 텍스트화하며 음성언어적인 부분까지 고려, ‘교양 있는 화자(話者)’로 자리매김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려 깊고 분별 있는 외래어 사용 태도


요즘 외래어는 생성·발전·소멸 주기가 너무 빨라 거의 정착 단계일 때 우리말 순화어가 나오고, 따라서 실효성을 잃기도 하며, 때로는 순식간에 언어 생태계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이 순화어를 일일이 수용해 익히고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결국 외래어 자체를 그대로 써야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변곡점이다. 교양이란, 물론 깨치고 익힌 지식이 선행되지만 원만한 인격과 사회생활을 통해 다져진 품위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외래어를 마치 외국어 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상대 수준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고려치 않고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발로라 하면 지나칠까? 이젠 많이 배우고 똑똑하며 외국물을 꽤 먹은 사람일수록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불가피하게 쓸 때는 원어 수준의 외국어 발음이 설사 가능하더라도 순박하게 우리 식 외래어로 발음하는 사람이 ‘교양 있는 화자(話者)’라는 생각이다. ‘티브이’ ‘비전’의 [v]에 미련을 두면 ‘밸브’ ‘베란다’ ‘바우처’ ‘베테랑’ ‘바이킹’을 발음하기가 난감해진다. ‘팬’이나 ‘커피’의 [f]에 집착하면 ‘필리핀’ ‘팡파르’ ‘페놀’ ‘피지’ ‘스티로폼’ ‘사파이어’의 ‘ㅍ’ 앞에서 주저하거나 겸연쩍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리’를 표기와 달리 ‘빠리’로, ‘카페’를 ‘까페’로 하는 기제(機制)는 원음 음가에 대한 감각과 조예를 감출 수가 없어서일 텐데, 그렇게 되면 더 강력한 네이티브 [pa?i]나 [kafe] 발음의 탑재자 앞에서 다시 무력해지는 무궁동(無窮動)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적인 공간이나 상황에서는 욕구를(?) 삭이고 한국어 음운 체계에 입각한, 다시 말해 표준 표기에 준한 외래어 소리 내기가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성 평등 감수성과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언어 구사의 체화

 

언필칭 ‘여성 상위 시대’ 운운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여성 차별 단어가 아직도 오르내린다. 가장 지독한 여성 차별은 ‘미망인(未亡人)’이다. 남편이 죽어 홀로 된 여성을 뜻하며 아직(未)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亡) 의미를 담고 있다. 지독한 봉건주의적 잔재가 깔려 있기에 지칭할 일이 있으면 그저 ‘부인’이면 족하다. 다음은 ‘처녀림’ ‘처녀작’인데 문학적·비유적으로 쓰일 때 등을 제외하곤 피해야 한다. ‘처녀림’은 ‘원시림’, ‘처녀작’은 ‘첫 작품’으로 순화하는 것이 좋다. ‘미혼(未婚)’도 급속히 힘을 잃고 ‘비혼(非婚)’이 세를 얻고 있다. 여성의 결혼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내조(內助)’ ‘출가외인(出嫁外人)’도 같은 부류며, ‘복부인’ ‘김여사’ ‘여장부’ ‘효자상품’도 편향된 남성 시각의 결과물로 본다. 또한 정치권에서 상대 당을 비난하거나 조롱할 때 툭하면 쓰는 ‘불임정당(不姙政黨)’도 이 땅의 난임 부부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상처를 주는 말인지 인식했으면 한다.
다음은 장애인과 관련된 낱말·표현이다. 장님·소경·봉사·맹인이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순화·표준화되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는 ‘귀머거리’를 더 이상 사용하면 안 되며, 더불어 “귀가 먹었어?” 이런 말도 일상에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언어장애인’은 ‘벙어리’ ‘언청이’ ‘말더듬이’를 품에 안는 말이다. 팔·다리·몸통이 불편한 장애인을 아우르는 말은 ‘지체장애인’인데 ‘앉은뱅이’ ‘절름발이’ ‘절뚝발이’ ‘반신불수’ ‘외팔이’ ‘외다리’ ‘외발이’ ‘곰배팔이’ ‘뻗정다리’ ‘난쟁이’ ‘땅딸보’ 등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비유적인 관용 표현 등도 아울러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령, ‘절름발이 행정’ ‘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 ‘눈 뜬 장님, 한심한 검역관’ ‘앉은뱅이 자세’등이 여기 해당된다. 한동안 ‘정신지체’로 쓰다가 다시 순화된 표현이 ‘지적(知的) 장애인’으로, ‘저능아’ ‘정신박약아’ ‘얼간이’ ‘띨띨이’ ‘칠뜨기’ ‘팔푼이’ ‘등신’ 등을 피해 써야 한다. ‘미치광이’ ‘정신병자’ 등을 따로 ‘정신장애인’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꼽추’ ‘곱사등이’ 등은 ‘척추장애인’으로, 자폐증(自閉症)을 앓고 있는 장애인은 ‘발달성 장애인’으로 대체한다. 많이 정착된 것으로 ‘한센(Hansen)인’이 있는데 ‘문둥이’ ‘나병환자’라고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얼굴에 큰 혹이 있거나 흉이 있을 경우엔 ‘안면장애인’이 유용하다.
연전에 한 젊은 아나운서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자로 나가 퀴즈를 풀다가 “하필 한자(漢字) 문제가 나왔네요. 사실 전 한자 장애인이거든요.(웃음)”라고 말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신독(愼獨)의 정의다. 신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늘 약자·소수자를 의식하는 언어생활과 마음가짐을 지녀야 실수가 없다.
줄임말 ‘PC’하면, 전에는 으레 개인용 컴퓨터를 칭했지만 요즘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떠올리는 시대다. 인종·민족·종교·성차별적 편견이 게재되지 않도록 말의 표현이나 단어의 구사를 신중히 하자는 주장·운동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바로 교양어에 해당할 것이다. 표준어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공감과 배려의 교양어를 구사하는 노둣돌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 강성곤(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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