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0여 년 전에 우연히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라는 책을 읽은 후로 마키아벨리에 심취하여 국내에서 마키아벨리라는 단어로 검색되는 모든 단행본을 구입하여 독파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마키아벨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 글을 통해 그에 대한 오해를 풀고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법학논문을 읽다 보면 간혹 ‘카쥬이스틱’(Kasuisitk)이란 용어를 접하게 됩니다. 도그마틱(Dogmatik)과 구별되는, 일관성 없는 개별적 사건 해결 방식이란 정도의 설명이 붙는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결의론(決疑論)이라고만 나와 있는데, 그 결의론이 무엇인지는 다시 사전에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는 네이버(naver) 지식검색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막연히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항상 뭔가 ‘나의 이해가 정확한 것인가’라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용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풍부한 설명이 어떤 책에 나오더군요.
이는 중세가 붕괴되면서 신학 내지 윤리학으로부터 새로운 학문분과로서의 “정치학”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용어입니다. 곽차섭, 「마키아벨리즘과 근대국가의 이념」, 현상과 인식 1996, 68면 주7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決疑論(casistica, casuistry)’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결코 동일하지 않은 세 가지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추상적인 일반성보다는 구체적인 실례에 더 관심을 표명하는 지적 태도를 지칭하며, 좀 더 좁은 의미로는 법조문보다는 판례를 더 중시하는 앵글로색슨적 법학 체계를 일컫는다. 가장 협의의 결의론은, 허용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는 목적으로 윤리법학적 또는 순수히 윤리적 문제를 다룸에서 도덕률을 문자 그대로 엄격히 적용하기 보다는 문제의 미묘함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좀 더 신축성 있게 해석하려는 태도로서, 전통적으로 카톨릭 신학에서 사용된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막스 베버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칸트의 지상명령에서 보는 바와 같은 “節操의 윤리”(Gesinnungsethik)가 아니라 벤담의 공리주의가 대표하는 바와 같은 “결과의 윤리”(Erfolgsethik)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나, 특히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극심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의 유럽 종교 전쟁 시대에 가장 활발히 논의되었으며 그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예수회였던 것이다. Werner Stark, “Casuistry”, Dictionary of the History of Ideas(Philip P. Wiener 엮음)(New York: Scribner, 1978-1979).
이탈리아 피렌체의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는 근대정치학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탈리아의 小國으로의 분열, 주변 강국으로부터의 계속된 간섭, 이탈리아의 戰場化를 개탄하며,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에 강력한 君主의 출현을 苦待하였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저서로 가장 유명한 것은 「君主論」인데, 따라서 그를 절대왕정의 옹호자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史 論考」라는 보다 일반적인 역사·정치저술을 썼는데, 이 책에서의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공화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과연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입장이 무엇이냐에 관하여 說이 분분합니다만, 제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마키아벨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전쟁이 없고, 개인이 자유롭게 살면서, 능력있는 자가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되고, 경제가 부흥하여 등 따시고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는 국가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플라톤 이래의 철학자들은 늘 이데아로서의 국가의 모습이란 무엇이냐만을 논하였을 뿐, 현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그런 高談峻論이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고, ‘과연 어떻게 효과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쟁취할 수 있겠느냐’에 자신의 연구의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덕성을 갖춘 사회에서는 물론 善意로서 사람들을 대하여야겠지만, 서로 속고 속이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기만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군주도 과감히 사자와 같은 폭력, 여우와 같은 교활함을 適時에 適所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군주가 구현하여야 할 공동체는 앞서와 같은 국가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군주론에서의 적나라한 표현들이 특히 교회 성직자들에게 거슬렸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저술은 그의 사후에 열린 트렌토 공의회에서 禁書로 정해집니다. 당시 카톨릭은 매우 부패한 상황이었습니다. 교황이 공공연하게 첩을 데리고 살면서, 그 자식을 추기경으로 임명하며, 돈으로 추기경과 같은 성직을 매매하고, 교황선거에서도 금권선거가 행해졌습니다. 교황은 항상 자신의 출신국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를 하였고, 항상 신성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개별국가들을 조직하여 자신의 맘에 안 드는 국가를 쳐들어가는 전쟁을 만들어내곤 하였습니다. 여러 추기경들은 자신도 교황을 해보아야 하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몇 년 안에 죽을 만큼 늙은’ 추기경만을 교황으로 선출하였고, 그래서 종신직인 교황의 그 당시 재임기간은 짧으면 2년, 길면 10년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절반 정도는 명목상으로는 교황령이었는데, 로마교황청이 부패하고 세속인들의 신앙심이 줄어들면서 교황령의 대부분은 그 지역의 귀족들이 참주가 되어 정치적으로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이런 교황령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서도 신성동맹의 이름으로 외국의 군대를 이탈리아로 불러들였는데, 그 때문에 주변 강국의 이탈리아에 대한 간섭이 심해졌고, 전쟁터가 된 이탈리아는 점점 황폐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평화에 가장 해악적인 존재가 로마교회라고 ‘감히’ 책에 썼던 것입니다.
사실, 마키아벨리의 사상 그 자체는 그리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고 평가받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다들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는데, 다만 마키아벨리가 최초로, 그리고 충격적인 저술을 남겼다는 의미가 있고, 후세의 사람들이 근대국가의 정치를 논할 때는 마키아벨리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는 어떤 준거점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에 관한 논의에서 마키아벨리를 직접 언급하는 것이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논의를 ‘國家理性’(Ragion di Stato, Raison d'etat')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진행합니다. 국가이성이란 넓은 의미에서 국가적 행위의 판단 기준으로서의 이성, 즉 국가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수단을 찾아내는 통치원리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국가이성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이 다양한 정치체제에 어떻게 적용되는가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려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16세기 이래로 마키아벨리의 정치교의들은 현실적으로 군주와 정치가들에 의해 하나의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며, 다만 문제는 그의 ‘사악한’ 주장을 어떻게 ‘훌륭하고 선한’ -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臣民에게는 훌륭하고 선하게 보여야만 하는 - 군주의 정치 속에 용해시킬 것인가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 사후에 최초로 「국가이성論」(1589)을 집필한 이탈리아의 보떼로(Giovanni Botero)는 예수회의 사제이자 사부아공국의 외교관이었는데, 그는 ‘마키아벨리的 국가이성’이 종교와 도덕을 도외시한다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결코 국가이성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이성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독교的 국가이성’의 개념을 통하여 정치와 도덕의 상충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려 하였습니다. 보떼로의 시도는 경직된 기독교 윤리를 새로운 정치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적절히 변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보떼로 이후 全유럽에서 비슷한 논의를 한 저술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는데, 이러한 논의는 17세기 중반을 고비로 서서히 쇠퇴하였고, 정치학의 조류는 ‘국제법 문제’로 옮겨갑니다. 국가이성 논쟁의 소멸이라는 이러한 현상이 그 저변에 있던 마키아벨리즘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국가이성 논쟁은 현실적으로 국내적인 차원에서 왕권의 강화와 자국의 독립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국내적으로 절대군주정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자 그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쇠퇴한 것입니다. 한 세기 동안의 종교 전쟁, 특히 30년 전쟁이 가져온 혼란과 참화 속에서 유럽의 정치사상가들은 무엇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여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세 이래 정치질서의 기둥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권위는 사라졌으며 각국은 기본적으로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7세기 중·후반부터 새롭게 부각된 정치 주제가 국제법 문제이며,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전쟁과 평화의 법」(1625)에서 그 체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고 합니다.
국제법의 대두는 두 가지 점에서 마키아벨리즘의 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국제법 개념은 기본적으로 독립주권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마키아벨리즘이 사상적으로 그리고 현실의 정치관행에서 절대군주정의 강화에 기여함으로써 각 국가가 대외적으로 독립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로, 종교 전쟁의 과정에서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수단들이 흔히 마키아벨리의 정치 격언과 국가이성의 이름 아래에서 행해졌으며 국제법은 이러한 행위를 금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제법 개념은 대내적으로 마키아벨리즘을 이념적 기반으로 하여 군주의 권력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린 유럽국가들이 대외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며 마키아벨리적 행태로 맞설 때 야기되는 무질서를 자연법에 근거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통해 제어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키아벨리가 그리 ‘사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즘, 특히 英美에서 정치철학 및 법철학의 화두는 ‘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近代 자본주의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고, 자본주의의 폐해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한계에 대한 인식은 단지 자본주의의 사회적 폐해에 대한 인식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것이며, 정치에 대한 무관심, 공동체의 파괴, 문화적 일탈 등에 대한 것도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질서와 공익만을 강조하면 전체주의가 될 수 있으니,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건전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現代 정치철학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 대안으로서 한편으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폴리스的 가치에 대한 재평가,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사상, 특히 유교에 대한 재평가를 하여 그들을 새로운 대안의 핵심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플라톤인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플라톤의 사상과 유교 혹은 공자, 주자의 사상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입니다(그래서 大家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이러한 사상의 조류를 통칭하여 공동체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이 유력한데, 미국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도 넓게는 이에 포함됩니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군주 혹은 국가가 자신의 지위,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현재 미국의 패권(Pax Americana)이 과연 영구적으로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언제까지만 지속될 것인가, 혹은 어떻게 패권을 계속 유지하여 나갈 것인가라는 논의로 현재화되고 있습니다. 종래 미국은 금권(경제력)과 폭력(군사력)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유지하였는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EU, 중국의 등장, NGO 및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테러집단의 활동 때문에 단순한 “일방적 권력”에 의존하는 정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저명한 교수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는 ‘전통적인 Hard Power와 대비되는 Soft Power에 관심을 갖자’라는 주장을 하여 미국 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Soft Power라는 것은 세계인들로부터 미국이 호감과 존경심을 받아내고, 그럼으로써 자발적 추종을 이끌어내자는 것입니다.
쉬운 얘기지만, 그간 미국의 정치외교 실무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그 교수의 독창적인 논의가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논의를 모방한 것입니다. 1930년대에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운동을 하였는데, 단지 무장봉기에 의한 정권탈취만을 지향하는 투쟁방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폭력적 방식과 대비되는 ‘이데올로기적 방식’, 즉 ‘헤게모니論’을 주창하였습니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논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대중의 공감을 받자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그람시의 이론도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람시가 투옥생활 중에서 쓴 저술, 소위 「옥중수고」의 제1장의 제목이 바로 “현대의 군주”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서 ‘사자의 힘’과 ‘여우의 교활함’을 강조하였는데, 전자를 통치수단으로서의 ‘폭력’으로, 후자를 통치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법학이란 것은 상당 정도 이념과 가치, 원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法學徒가 자신의 법학연구에 마키아벨리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법학자의 사명이라는 관점에서는 그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를 읽고 싶으신 분에게 책을 추천하여 드리자면,
1. 우선,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는 소설과 같이 부담 없으면서도,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며, 마키아벨리를 교과서에서 비열한 인간으로 한 줄 언급되는 ‘죽은 인간’에서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어, 향후의 독서에 동기를 유발시켜 줄 것입니다.
2. 마키아벨리의 原典으로는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데, 번역본으로는 모두 서강대 정치학과 강정인 교수의 번역본이 가장 충실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알려진 前者보다는 오히려 後者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책입니다만, 고대 로마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관심이 있어야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논평이기 때문입니다.
3. 2차 문헌으로는 서울대 외교학과 박상섭 교수가 쓴 「국가와 폭력」이라는 책이 마키아벨리에 대하여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4. 한자문화권에 있는 동양인에게 통치술에 관한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이종오(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을 추천합니다. 이종오는 1930년대 중국 사천성에서 활동한 지식인인데, 자신의 조국이 열강들에게 할거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약소국 중국이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전술로서 후흑학을 제시합니다. 후흑학은 이종오가 중국의 古史에서 추출해낸 성공한 정치가들의 통치·외교술입니다.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등과 같은 古史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읽기가 수월합니다. 후흑학은 기본적으로 중국 古史에 대한 정치비평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나 후흑학을 개인의 처세술로서 변용하려는 조류가 있는데, 이종오는 그의 책 서문에서 후흑학은 오직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통치·외교술로만 사용하여야지 이를 개인의 처세술로 사용할 경우 그는 인간말종이며 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종오는 후흑학 이외에도 동양의 3대 사상인 儒·佛·仙을 상충이 아니라 조화롭게 해석해내는 사상적 단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때 마키아벨리를 읽다가 ‘순간 깨달음을 얻고 설레임에 잠을 못 잔’ 적이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大家라는 사람들이 추구한 사회질서가 거의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정치철학을 공부하였을 것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法學徒로서의 나의 임무는 그러한 보편적 깨달음 위에 국가를 구성하는 개별 제도들을 구축하고, 정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글에 저의 깨달음을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_이상덕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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