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단식
15초 미로 탈출기
글.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문선관 주무관
나의 아침은 손가락의 가벼운 까닥임으로 시작하고, 잠들기 직전 침대에서도 똑같이 끝난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내게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이자, 가장 지독한 기생충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주말과 퇴근 후 일과는 비교적 건강하고 생산성 있는 활동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비디오게임 외에도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스스로에게 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공부, 독서, 운동 등을 꾸준히 병행했었고, 이러한 생활이 주는 성취감이라는 보상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좋아서 선택한 취미와 활동들이 지루한 노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무언가를 읽거나 공부하는 일이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꾸준히 다니던 체육관은 결석하는 날이 점점 잦아졌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인 게임을 하면서도 변화가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소설과 같은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게임들을 주로 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호흡이 긴 서사와 영상들은 나에게 있어 오히려 게임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변질되어 있었고, 10분짜리 컷신(cutscene)을 보는 것도 견디지 못해 영상이 나올 때마다 ‘스킵’ 버튼 위로 손가락이 먼저 달려 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게임기를 끄고 관성에 이끌리듯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그것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최악의 습관이었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로 대표되는 숏폼(Short-form) 콘텐츠들의 범람 속에 나의 엄지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스마트폰 화면을 쓸어올린다. 영상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15초에서 30초 정도 남짓한 이 짧은 영상들에는 자극적인 유머, 짧게 편집된 영화 결말, 화려한 게임 플레이 하이라이트들이 담겨 내 입맛에 맞게 끊임없이 투척되었다. 손가락을 위로 튕길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쾌감이 쏟아진다.
“딱 10분만 보고 일어나자.”
그 다짐이 무색하게 정신을 차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던 경험을 몇 번씩이나 했었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는 스마트폰이 방전될 때까지 숏폼 영상을 볼 때가 많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액정 화면은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어떻게든 겨우 스마트폰을 끄고 눈을 감아도 머릿속은 이미 파편화된 정보들로 가득 차서 정작 내 생각은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천천히 물을 끓이면 서서히 올라가는 온도를 인지하지 못한 개구리가 결국 죽는다는 유명한 실험처럼, 사고가 차단된 나의 뇌는 그렇게 반사적 수용이라는 끓는 물 속에 갇혀 아무것도 모른 채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점차 일상으로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을 갈 때나 일과 중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감촉을 찾았다. 이러다 보니 어느덧 글을 읽는 능력이 점점 퇴화해 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업무 관련으로 실무제요나 판례를 찾아볼 때, 문장이 길어져서 문단을 넘어가게 되면 예전만큼 독해가 매끄럽게 되지 않았고, 난독증 환자처럼 눈앞에서 문장이 겉돌았다.
결정적인 균열은 전문 과정 수강을 위해 찾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강의실에서 일어났다. 빠르고 즉각적인 자극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의 뇌는 숏폼 영상들처럼 2배속이 아닌 정배속으로 진행되는 교수님의 강의를 ‘지루함’을 넘어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 필기하는 소리들은 나에게 왠지 모를 조급함만을 불러일으켰다. 한 교시에 50분 남짓 진행되던 강의였지만, 교시마다 강의 도중 한 번 이상은 강의실 밖을 나갔다 돌아왔던 것 같다. 당시 나의 집중력과 인내력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을 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모든 강의가 끝나고 평가를 보기 전날 밤, 배정받은 생활관 화장실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보았다. 한 시간의 밀도를 견디는 다른 이들 사이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의 초라함이 거울 너머로 일렁거렸다.
“모두에게 패스가 당연한 내일의 시험조차 너에게는 과분한 사치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거울 속의 나는 생기 없는 눈을 하고서 이처럼 말하는 듯했고, 그동안 애써 모른 척 마주하지 않았던 도파민 중독자인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이 ‘인공적인 마약’으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투쟁의 방법으로 단식하는 이들처럼, 나는 ‘시선의 단식’을 감행했다. 스마트폰에서 숏폼 관련 앱들을 삭제했고, 식사 중은 물론 기상 직후와 취침 전 1시간은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으며, 화면을 흑백 모드로 전환해 시각적인 유혹을 차단했다. 이것은 알고리즘이 만든 자극을 거부해 도파민에 길들여진 나를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첫 사흘은 지옥 같았다. 금단 현상은 물리적인 통증처럼 다가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30초, 화장실을 가는 5분,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쉬는 10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고 지루했으며, 머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무게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지루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로 했다. 지루함은 뇌가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회전’ 시간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그렇게 나는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을 들었고, 점심 식사 후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장 몇 페이지를 넘기는 데도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고요해진 내 머릿속에서는 활자들이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산책할 때는 비로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의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숏폼 영상 속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화려함이 아닌,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은은하고 깊은 색채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도파민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열쇠는 ‘비움’에 있었다. 이전에 나는 즉각적인 보상이 주는 만족감에 취해 머릿속에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자극적인 영상들을 때려 넣었다. 하지만 뇌에 자극적인 잔상들이 빠져나가 고요한 빈터가 생긴 지금, 그 공간에 묻혀있었던 중요한 생각들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고, 매일 밤 그날의 감정을 일기로 기록했다. 그리고 파편화되어 있던 내 생각들이 문장이 되어 종이 위에 안착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음을 실감했다.
얼마 전, 나는 또다시 법원공무원교육을 수강했다. 이번에는 현장 강의가 아닌 원격교육으로 신청하여 수강했고, 모니터 속 교수님의 음성은 여전히 정배속으로 흘렀다. 그러나 더 이상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중간마다 던지는 질문의 의미를 곱씹으며 나만의 생각과 답을 머릿속에 정리해 나갔다. 남들에겐 당연한 이 ‘패스’의 과정이 내게는 무너졌던 자아의 성벽을 한 칸씩 다시 쌓아 올리는 재건의 시간이었다.
여전히 나의 아침은 손가락의 까닥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손가락은 더 이상 차가운 액정 속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아침을 알리는 아날로그 자명종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고, 미로를 헤맸던 손가락이 이제는 정성스럽게 이불깃을 매만진다. 이렇게 침구를 정리하며 만드는 작은 성취감은 하루를 주도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15초의 소음이 사라진 방 안에서, 이제야 나는 진짜 세계의 박동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