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순간] 두 시간 반의 자유

두 시간 반의 자유


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손호영 부장판사



목포지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하자, 사람들은 축하 다음으로 “멀겠네요”라고 말했다. 어떤 분은 축하보다 그 말을 먼저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로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처음 부장판사가 되는 것은 설레었지만, 매주 그 긴 거리를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무엇보다 두 시간 반이 마음에 걸렸다. 요즘 나는 한곳에 오래 붙잡혀 있는 일을 잘 견디지 못한다. 영화관에서도 가끔 ‘앞으로 두 시간이나 꼼짝없이 있어야 하나’ 싶다. 그런 내가 매주 두 시간 반씩 기차를 타야 했다. 


첫 출근 날, 새벽 첫차를 탔다. 기차를 놓치는 장면을 너무 성실하게 상상한 나머지 새벽 세 시부터 깨어 있었다. 잠을 더 자기는 틀린 것 같아 일어나 씻고 집을 서둘러 나섰다. 

새벽의 기차역에는 낮과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말을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 각자의 할 일을 마음속에 품은 채 조용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대학 시절 새벽 버스를 타며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그들의 하루는 이미 출발해 있었다. 그날은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해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모르는 누군가와의 동행을 반길 만큼 넉넉한 마음은 아니었는지, 나는 속으로 조금 기뻐했다.

차 안에는 노모와 함께 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외투를 여며주며 알뜰히 챙겼다. “계란 드실래요?”, “음료수 드릴까요?”, “조금만 기다리면 내려요.” 노모는 연신 괜찮다고 했고, 아들은 다시 한번 물었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그 짧은 대화가 유난히 다정하게 들렸다. 

맞은편의 누군가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한잠 자도 될 만큼 먼 곳으로 가는 사람 같았다.

나도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역 앞 편의점에서 사 온 바나나맛 우유를 꺼내 마시고 초콜릿을 하나 먹었다. 몸은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해 있었지만, 입 안에서는 잠시 초등학생이 되었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답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기차는 나를 붙잡아 두는 대신, 다른 일들로부터도 잠시 떼어놓고 있었다. 운전할 필요가 없었고, 집안일을 할 수도, 누군가를 만나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당장 처리할 수 없는 일은 바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공식적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동 중인 사람에게 세상은 답을 조금 늦게 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판사로서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집에서는 가족의 일원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둘 다 소중했지만,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을 챙기는 일은 자주 뒤로 밀렸다. 그런데 기차 안에 있다는 것은 훌륭한 부재 사유였다.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합법적으로, 그리고 떳떳하게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마트에 다녀와 달라고 하면 대체로 군말 없이 나섰다. 늘 “산책 삼아 갔다 오지”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생수와 우유와 휴지를 들고 돌아오는 산책이라니, 지나치게 실용적인 산책이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무엇을 사 오는 것이 목적이었겠지만, 집을 나서 마트까지 걷는 동안만큼은 아버지도 잠시 자기만의 걸음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장바구니는 볼일이었고, 오가는 길은 작은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도 목포로 가는 길은 두 시간 반의 자유가 되었다.


처음에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몇 개만 보려던 쇼츠에 금세 빠졌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두 시간 반을 남의 강아지가 소파에서 떨어지는 영상에 모두 내주기는 아까웠다. 

노트북을 꺼내 무엇이든 써보기로 했다. 몇 문장을 적다가 문득, 이렇게 별다른 목적 없이 이야기를 쓰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글씨쓰기 숙제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문장을 공책에 따라 쓰는 일이 곧 지루해져, 어느 날부터 내가 만든 이야기를 적었다. 선생님은 별다른 지적 없이 도장을 찍어주셨고, 나는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열 살 남자아이의 이야기였으니 싸우고, 화해하고, 의리를 지키고, 승부를 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삽화도 그리고 나름의 세계관까지 만들었다. 그러다 글씨쓰기 숙제가 끝났다. 숙제는 끝났는데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감질이 난 나는 다른 공책에 뒷이야기를 이어 썼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왠지 부끄러워져 공책을 숨겼다. 그것은 나만의 은밀한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숨겨둔 물건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공책을 들킨 날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했다. “너 이거 잘 썼더라. 재미있던데?” 나는 공책을 들킨 일은 곧 잊었다. 대신 어디가 재미있었는지, 정말 잘 썼는지 자꾸 물었다. 비밀이 밝혀진 부끄러움보다 칭찬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만큼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상상하는 일이 줄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정리하고, 쟁점을 나누고, 근거를 찾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내 이야기를 쓰는 일은 어려워졌다. 어느새 상상보다 쓸모와 정확성을 앞세우는, 꽤 공무원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만큼은 잠시 그 순서를 바꾸었다. 마음 가는 대로 몇 줄씩 써 내려가다 보면, 가끔 그 아이가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내가 쓰는 것은 거대한 모험담이 아니라 출근길과 아버지의 마트길, 바나나맛 우유에 관한 이야기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그때는 몰랐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다. 



목포지원 사람들에게 기차를 오래 타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힘들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타보니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물론 그 긍정의 일부는 체념일 수도 있다. 매주 타야 하는 기차이니 좋아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시간에 애정을 붙이는 능력도 삶을 살아가는 재주일 것이다.

목포역에 도착하면 ‘호남선 종착역’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 글자를 보며 정말 멀리 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멀어서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멀었기 때문에 얻은 시간도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출근했다면 갖지 못했을 두 시간 반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쓰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어도 되었고, 노트북을 덮어도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당장 하지 않아도 되어서 자유로웠다.

목포에 오길 잘했다. 멀리 와서야 나는 나에게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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