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행]꿈과 추억이 공존하는 공간_오늘도 육림고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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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림고개를 오르는 사람들은 시간여행자가 된다. 트렌디한 감성의 상점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낸 노포들이 함께 자리한 이 낮은 언덕을 오르는 잠시가 마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행위 같다. 청년들의 꿈이 성장하고, 노포 주인들의 추억이 살아 숨쉬는 육림고개를 걸어본다.

 

그리운 육림극장의 추억

이 고개가 육림고개라 불린 건 육림극장 때문이다. 춘천 최초의 영화관인 육림극장이 고개 입구에 문을 열면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육림고개로 통했다. 그 전까지는 ‘미가리고개’라 불렸던 곳이다. 중앙시장과 육림극장을 잇는 이 고개는 1980년대 춘천지역 최고의 상권을 형성하며 전성기를 누린다.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고, 흥정하는 행위를 떠나 사람들은 이곳에서 만나 웃었고, 소식을 전했으며, 정을 나누었다. 사람 냄새 나던 육림고개는 1990년대 주변에 다른 상권들이 형성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발길을 끊자, 상점들도 짐을 쌌다. 육림고개의 침체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2006년 육림고개를 지키던 육림극장도 최신식 멀티플렉스 극장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기에 이른다. 그렇게 육림고개의 전성기는 시간 속에 박제된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육림고개라 불린다. 가장 찬란했던 시절과 함께한 이름. 주변의 육림미용실과 육림슈퍼, 육림약국 등은 여전히 남아 그 시절을 기억한다. 지금도 택시 기사님에게 육림고개에 가자고 하면 ‘육림극장이요?’라고 되묻는 걸 보면 시끌벅적하고 따뜻했던 육림고개의 풍경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직 살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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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꿈이 육림고개에 스미고 있다. 트렌디한 감성으로 꾸민 청년상점들.

 

육림고개를 일으킨 부활의 날갯짓

49개 점포 중 빈 가게가 37개에 이를 만큼 육림고개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젊은 세대에게 육림고개는 한때 융성했던 추억 속 공간으로 정의되어 갔다. 이들은 카드결제도 편하고, 상대적으로 더 청결해보이는 온라인 쇼핑이나 대형마트를 선택했다. 육림고개 상인들이 이 내리막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너무도 빠르게 변해갔다. SNS가 마케팅의 중심이 되고, 유통 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평균 50대 이상의 상인들이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육림고개가 본격적인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건 2015년의 일이다. 막걸리촌 특화거리사업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춘천시가 육림고개의 상권 부활을 위해 고개 200m 구간을 막걸리촌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전주 삼천동 막걸리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이 사업은 상인 스스로 업종을 바꾸거나 창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민주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걸리촌 조성사업이 이뤄졌다. 막걸리 가게들의 실내 인테리어는 공공미술 작가들이 도와 의미를 더했다. 막걸리 가게와 함께 한방카페와 커피집, 창작 공방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육림고개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손님들도 점차 늘어났다. 유동인구가 늘자 육림고개를 끝까지 지킨 상점 주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 창업의 꿈을 불러모으다

육림고개를 살리려는 노력은 다음해에도 이어졌다. 춘천시와 중소기업청이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육림고개의 상권도 회복할 수 있도록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을 전개했다.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은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임차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이 사업을 통해 공방과 수입 빈티지 의류매장, 닭갈비 가게 등 10개 점포가 문을 열게 된다.

2017년에도 ‘청년몰 사업’이 전개되면서 육림고개 활성화 움직임이 계속됐다. 이 역시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춘천시가 육림고개의 빈 점포를 장기 임차해 만 19~39세의 청년들에게 낮은 비용으로 임대하는 사업이다. 청년몰은 식도락 마당(로컬푸드 등 먹거리), 잔재비 마당(금속, 나무, 가죽공예, 체험공방 등), 보부상 마당(레고, 건담, 프라모델, 피규어, 키덜트 상품 등), 자연곳간 마당(꽃, 화분, 이끼 조형물) 등 네 가지 테마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이뤄졌다. 춘천시는 인테리어와 컨설팅, 홍보 마케팅 비용 등도 지원하며 사업에 총 15억 원의 국비를 투입했다.

육림고개가 지금처럼 활성화된 것은 2015년부터 매년 열린 플리마켓의 역할도 컸다. 육림고개 주민들이 수공예품과 중고 서적, 중고 장난감은 물론 직접 만든 디자인제품과 예술품, 생활용품 등을 내놓으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콘서트와 체험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해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알뜰시장을 넘어 축제의 장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청년몰 상점 주인들도 ‘맛보기 체험’ 점포를 운영하는 등 즐길 거리를 더했다. 육림고개 플리마켓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친구와 가족, 연인 등 다양한 인파가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몰려들었다. 지난해까지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3만 명에 달한다.

 

꿈과 추억이 공존하는 시간

이제 육림고개는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청년 상인들의 트렌디한 감각과 노포(老鋪)들의 아날로그 감성이 어우러지는 ‘감성 고개’가 바로 육림고개이다. 청년 상점과 노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신(新)과 구(舊)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성장한다. 노포 사이로 청년들의 아기자기한 상점이 문을 열고, 청년들의 푸른 희망과 꿈 사이로 노포 주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이곳을 찾는 젊은 손님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사고, 트렌디한 음식을 사먹으며 육림고개의 시간을 가로지를 것이다. 노포들은 옛 육림고개의 추억과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음식들을 대접하며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옛 육림고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진한 향수를 선물한다. 육림고개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물건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오늘도 육림고개에서는 청년들의 꿈과 노포 주인들의 행복이 팽창한다. 청년들에게 육림고개는 냉엄한 벽에 부딪쳐 엄두조차 낼 수 없던 꿈을 실현시켜준 따뜻한 둥지이고, 노포 주인들에게 육림고개는 청춘을 몸 담갔던, 다시 돌아온 보금자리이다.

육림고개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꿈과 추억이 공존하고 따뜻한 감성이 너울지는 이곳, 육림고개로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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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덕철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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