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의관코너] 숫자로 시간의 걸음 읽기

조사심의관 코너

2021.06.04

숫자로 시간의 걸음 읽기

글. 윤민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올립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윤민 판사입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4개월에 한 번씩 ‘조사심의관 코너’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유익한 내용으로 법원 가족 여러분께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판 업무는 남겨진 기록과 기억을 통해 제3자의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삶은 정량적으로 설명될 수 없지만, 우리는 합의된 기준에 따라 수량을 표현하고, 시간과 같은 추상적 개념도 수로 치환하여 설명해왔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걸음을 돌려 과거의 삶과 사건을 해석하는 판결문과 법률문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숫자입니다.
오늘 조사심의관 코너에서는, 그 숫자가 쓰이는 시간 표현과 단위 명사, 그리고 그에 덧붙이는 말의 용례를 모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날 그리고 그때
먼저 날짜를 표현하는 경우부터 시작해봅니다.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아라비아 숫자만으로 연월일을 표시할 때 글자 대신 마침표를 쓸 수 있고,⑴ 연과 월 또는, 월과 일만을 표시할 때에도 마침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 또는 ‘월’ 또는 ‘일’ 중 하나만 쓸 때에는 글자 대신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개최 연도: 2018년’으로 써야 하고, ‘개최 연도: 2018.’과 같이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같이 특정 의미가 있는 날을 표시하고자 한다면, 월과 일을 나타내는 아라비아 숫자 사이에 마침표를 쓰는 것이 원칙이고 가운뎃점을 쓰는 것도 허용됩니다.

앞서 서술한 연월일을 ‘같은 ○’로 표현하는 경우는 어떠할까요? 일단 ‘같은달’, ‘같은날’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하나의 단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같은 달’, ‘같은 날’과 같이 띄어 써야 합니다. ‘같은 해’나 ‘같은 달’에 이어 월 또는 일을 덧붙인다면, 숫자보다는 ‘같은 해 12월’, ‘같은 달 8일’로 명확히 밝혀 적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 분, 초와 같은 시간 단위는 의존명사로서 앞 단어와 띄어 씀이 원칙이지만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됩니다.

그때에 의미를 더하여
날짜나 시간에 덧붙여 의미를 더하는 경우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기간의 처음이나 마지막을 나타내는 ‘초(初)’, ‘말(末)’은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⑵ 뒤나 다음을 뜻하는 ‘후(後)’도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씁니다. 그래서 ‘판결 확정후’가 아니라 ‘판결 확정 후’입니다.

‘그 시간 또는 날짜에 가까운 때’의 뜻을 더하는 ‘-경(頃)’은 접미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씁니다. 날짜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라면 ‘미상’을 덧붙이되, ‘일자 미상’으로 띄어 써야 합니다.⑶

날짜를 나타내는 명사구나 간지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그때에 태어남’의 뜻을 더하는 ‘-생(生)’은 접미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씁니다.

그때와 그때 사이, 시간을 담아
다음은 기간을 표시하는 경우입니다. 기간을 표시하면서 중복되는 부분을 생략하고 ‘월’이나 ‘일’만 나타내는 경우 글자 대신 마침표를 쓸 수 있고, 시점과 종점 사이에 범위를 나타내는 이음표인 물결표(~)를 씁니다. 숫자와 물결표 사이를 띄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대로 붙이시면 됩니다. 물결표(~)로 시간대를 나타내는 경우, ‘무렵’, ‘쯤’을 의미하는 접미사 ‘-경’은 붙일 수 없습니다.

기간을 나타내는 ‘시간’이 의존명사로 쓰이는 경우,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수효를 나타내기 때문에 앞의 관형사와 붙여 쓰면 안 되고, ‘두 시간’과 같이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지만, 숫자에 접미사 ‘-여(餘)’가 붙으면 붙여 쓸 수 없습니다. ‘일’, ‘주’, ‘개월’, ‘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간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동안’의 뜻을 더하는 ‘간(間)’은 접미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10년 간’이 아니라, ‘10년간’으로 붙여 씁니다. ‘간(間)’이 ‘대상 사이의 거리나 관계’를 뜻할 때에는 의존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써야 하는 점도 유의하면 좋겠습니다.

‘동안이 얼마간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존명사 ‘만’을 쓴다면, 앞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 무엇으로 한정하거나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는 조사로 ‘만’을 쓴다면 앞말에 붙여 써야 하므로 잘 구별해야 합니다.

약속에 따라 헤아리기
이번에는 수량과 함께 단위 명사를 사용하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앞말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고, 숫자와 결합하는 경우 붙여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숫자 다음에 접미사 ‘-여(餘)’가 붙으면 반드시 띄어 써야 합니다.

판결 작성 시 각종 단위 부호를 쓸 때에는 ‘kg’, ‘t’, ‘km’로 표기하고, ‘킬로그램’, ‘톤’, ‘킬로미터’ 등으로 풀어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역시 앞말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습니다.

모두 합하여 몇임을 나타내는 관형사 ‘총(總)’은 뒤에 오는 말과 띄어 씁니다. ‘총-’이 접두사로서 명사 앞에 붙어 ‘전체를 아우르는’ 또는 ‘전체를 합한’의 뜻을 더한다면 뒤의 단어와 붙여 써야 하므로 꼭 구별해야 합니다.

단위 명사 뒤에 덧붙여 쓰는 말도 있습니다. ‘일정한 액수나 수치에 해당함’의 뜻을 나타내는 ‘상당’은 주로 ‘상당의’라는 꼴로 쓰이고, 앞말과 띄어 씁니다. ‘가량’은 수량을 나타내는 말과 결합하여 ‘정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써야 합니다. 얼마의 값이나 분량의 물건임을 나타내는 접미사 ‘짜리’ 역시 앞의 명사와 붙여 씁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우리
숫자와 결합하여 쓰이지만, 서로 함께 쓸 수 없는 단어도 있습니다. 바로 ‘최소’와 ‘이상’입니다. ‘최소 100개 이상’은 잘못된 표현이고, ‘최소 100개’ 또는 ‘100개 이상’이라고 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순우리말 하나를 소개하며 첫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순우리말로 6월은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넘치는 달, ‘누리달’이라고 합니다. 벌써 누리달, 1년의 모래시계 중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난 셈인데요, 이번 달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피카소의 3대 반전 예술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에서의 학살’도 처음으로 전시된다고 하니, 6월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생명의 소리와 시간의 걸음을 함께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⑴ ‌한글 맞춤법[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2호(2017. 3. 28.)] 부록편 ‘문장 부호’, 1. 마침표(.) (2)항. 법원사무관리규칙 제10조 제3항도 ‘문서에 쓰는 날짜의 표기는 숫자로 하되, 연, 월, 일의 글자는 생략하고 그 자리에 온점을 찍어 표시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⑵ ‘주말, 월말, 연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하나의 어휘에 해당하므로 붙여 씁니다.
⑶ ‘일자미상’ 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복합명사가 아니고 전문 용어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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