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면, 너무 식상하신가요?

조사심의관 코너

2018.02.06

1년 가까이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경로로 맞춤법에 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잘 알고 있는 부분에 관한 것이면 자신 있게 답변을 드리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저도 아리송한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레 질문을 받을 경우에는 막 떨립니다. “검토해 본 후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시간을 번 후, 선배 조사심의관들의 눈길과 손길이 반영된 종합법률정보의 판례들 검색, 법원도서관 발간 「법원 맞춤법 자료집」 찾아보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 검색, 조사위원들에게 문의, 녹색 창에 물어보기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여 정확한 답변과 그 근거를 찾습니다. 때로는 협업을 하면서 알게 된 국립국어원 소속 국어학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합니다.

조사심의관을 마치 ‘맞춤법의 대가’라거나 ‘걸어 다니는 국어사전’과 같이 생각하시는 측면이 있지만, 사실은 저희도 국어의 올바른 쓰임에 관하여는 계속하여 배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다량의 판결문을 읽고 교정을 보면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오류가 무엇인지를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판결문 작성 시 자주 반복되는 오류나 저희가 판결문을 교정할 때 활용하는 기준에 대하여 구체적인 몇 가지 예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1. 다음 날과 다음날

민사판결문에서 가장 자주 교정하는 부분 중 하나는 ‘다음 날’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음날’을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로 풀이하며 그 예로 “다음날에 만나면 식사나 하죠.”를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판결문에서 사용하는 용법, 즉 정해진 날을 기준으로 바로 뒤에 오는 날을 가리키는 경우에는 ‘다음 날’로 띄어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최근 국립국어원의 일관된 입장인 것 같습니다. 다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활용하고 있는 다음(Daum)사이트 어학사전에는 ‘다음날’을 ‘어떤 날을 기준으로 하여 바로 뒤에 오는 날’로 풀이하고 있는데, 국립국어원은 현재로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위와 같은 의미가 등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풀이는 표준어 풀이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법원도서관에서는 국립국어원의 입장에 따라 위 사례의 경우 ‘다음 날’로 교정을 하고 있습니다.

2. 그중과 이 중

‘범위가 정해진 여럿 가운데’를 의미하는 ‘그중’은 합성어로서 표준국어대사전에 하나의 단어로 등재되어 있으므로 붙여 씁니다. 이와 달리 의존명사로서 ‘여럿의 가운데’를 의미하는 ‘중’을 이용하여 ‘이것들 가운데’, ‘저것들 가운데’라는 의미를 표현할 때에는 ‘이 중’, ‘저 중’으로 띄어 씁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판결문을 쓸 때 ‘그중’을 붙여 써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열심히 띄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 제가 띄어 썼던 만큼 열심히 붙이고 있습니다.

한편 국립국어원 묻고답하기 코너에는 ‘그중’과 ‘이 중’ 또는 ‘저 중’의 띄어쓰기 차이에 관하여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용자들의 항의성 질문들도 적지 않게 올라와 있습니다만, 일관된 답변은 합성어인 그중은 붙여 쓰고, 나머지는 띄어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구체적인 용법에 대해 ‘이 중’, ‘저 중’의 경우 앞 문장에 반드시 이것, 여기, 저기 따위의 지시 대명사가 있거나 화자, 청자, 대상의 위치가 정해져 있어야만 쓸 수 있지만, ‘그중’은 앞 문장에 지시 대명사가 없어도, 그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3. 가운뎃점? 쉼표? 그냥 붙여쓰기?

가운뎃점(•)의 용례는 한글맞춤법[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2호(2017. 3. 28.)] 부록 제5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부록의 내용과 국립국어원의 해설을 요약하여 소개하면, ① 열거할 어구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묶어서 나타낼 때(지금의 경상남도ㆍ경상북도, 전라남도ㆍ전라북도, 충청남도ㆍ충청북도 지역을 예부터 삼남이라 일러 왔다), ② 각각의 어구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체 집합의 필수적인 요소가 될 때, 즉 짝을 이루는 어구들 사이에(곤충의 몸은 머리ㆍ가슴ㆍ배로 구분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가운뎃점을 쓰지 않거나 쉼표를 쓸 수도 있다), ③ 공통 성분을 줄여서 하나의 어구로 묶을 때(통권 제54ㆍ55ㆍ56호, 다만 이때는 가운뎃점 대신 쉼표를 쓸 수 있다)에 가운뎃점을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국내외, 국공립, 직간접, 민형사 등과 같이 ③의 경우에 공통 성분이 줄어서 하나의 어구로 묶인 말 중에서 단어로 굳어진 말에는 가운뎃점이나 쉼표를 쓰지 않습니다. 단어로 굳어졌는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4. 접속어 뒤에 쉼표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법원도서관에서는 현재 공보 등의 간행이나 종합법률정보 등록을 위한 판결문 교정을 볼 때 접속어 중 ‘그러나, 그러므로, 그런데, 그렇다면, 그리고, 다만, 따라서, 한편, 또한’의 뒤에는 쉼표를 쓰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다음으로, 먼저, 보건대, 살피건대, 왜냐하면, 하지만, 첫째/둘째’ 등의 접속어 뒤에는 쉼표를 쓰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법원도서관이 발행한 「법원 맞춤법 자료집」에 근거한 기준인데, 그 배경을 더듬어 보면, 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4-39호로 개정(2015. 1. 1. 시행)되기 전의 「한글 맞춤법」에는 쉼표의 용법에 관하여 “다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그러나, 그러므로, 그리고, 그런데 등) 뒤에는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규정이 있었고, 이를 「법원 맞춤법 자료집」에서 참고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위 개정으로 이러한 내용은 삭제되었고, 현재 이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으며, 국립국어원의 해설에 따르면,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러므로……’ 등과 같은 접속 부사의 뒤에서는 접속 부사와 쉼표의 기능이 중복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쉼표를 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글쓴이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접속 부사의 뒤에서도 쉼표를 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법원도서관은 현재까지는 ‘그러나, 그러므로, 그런데, 그렇다면, 그리고, 다만, 따라서, 한편, 또한’의 뒤에는 쉼표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교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떠한 기준을 세워야 할지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어문 규정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공적인 간행물에서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5. 연월일을 마침표로 표시할 때에는……

글자 대신 마침표로 연월일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잘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즉, ‘1919년 3월 1일’에서 한글로 쓰인 ‘년, 월, 일’을 각각 마침표로 대신하여 ‘1919. 3. 1.’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판결문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보고서 등의 일반문서 작성 시 ‘일’을 나타내는 마침표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글자로 치면 ‘일’을 쓰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잘못된 표기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다른 숫자를 덧붙여 변조할 우려도 있으므로 ‘일’을 나타내는 마침표는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해설입니다.

한편 연과 월 또는 월과 일만 있을 때에도 글자 대신 마침표를 쓸 수 있습니다. 법원도서관에서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가급적이면 연과 월 또는 월과 일만 나오는 경우에도 마침표로 바꾸는 교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2018.’, ‘같은 달 7.’ 등과 같이 년, 월, 일이 한 번만 나오는 경우에는 반드시 글자로 써야 합니다. ‘2018년’, ‘같은 달 7일’, 이렇게 말입니다.

6. 판결의 표시

판결의 표시, 판결·문헌의 인용례에 관하여는 「법원 맞춤법 자료집」 [부록 1] 부분에 매우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중 빈번하게 보이는 부분에 관하여 말씀드립니다. 판결은 법원, 선고일, 선고, 사건번호, 판결의 순서로 기재하되, ①의 경우처럼 전원합의체 판결일 경우 ‘전원합의체’를 누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②의 예와 같이 여러 개의 판결을 인용할 때에는 판결마다 ‘대법원’을 기재하며, 선고 일자 순으로 나열합니다. 가끔 최근 선고된 판결부터, 즉 선고 일자 역순으로 나열된 경우가 보이는데, 이런 때에는 저희가 살짝 순서를 바꾸어 교정합니다. ③의 경우처럼 본소와 반소가 있는 때에도 사건의 구분을 따로 표시하지 않고 사건번호만을 기재합니다. 종합법률정보의 출처에는 본소, 반소, 참가, 병합 등이 표시되어 ③의 판결이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206270(본소), 2015다206287(반소) 판결]로 표시되는데 이를 그대로 활용할 경우 「법원 맞춤법 자료집」에서 제시한 표시 기준과 다소 달라지게 되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지금까지 법원도서관에서 비교적 자주 바로잡고 있는 사례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기초적이면서도 습관적으로 틀리기 쉬운 내용이라서 위의 사항들은 과거의 어느 시기에 조사심의관 코너에서 한 번 이상은 다루어졌던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익히 알고 계시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상함을 무릅쓰고 용기 내어 말씀드린 이유는 교정 업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한 이기심의 발로였음을 고백하오니,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이 글을 감수해 준 이기리 조사심의관의 첨언을 소개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상 PC를 이용하지 않고 곧바로 법원 내부망에서 접속할 수 있습니다. 주소창에 ‘http://stdweb2.korean.go.kr/’이라고 입력하고 즐겨찾기에 등록하시면 간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서여정(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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