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로부터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하라는 취지의 질의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합리적인 판결문 공개방안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판결문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론에도 관련 기사가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행정부(기획재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을 어느 범위까지 공개하는지는 국가마다 차이가 많은데, 미국1), 중국2)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최고법원의 판결문은 대체로 폭넓게 공개하는 데 반해 하급심의 판결문은 공개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판결문 공개 범위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만, 조사심의관의 입장에서는 ‘비실명처리’, 즉 ‘개인정보 보호’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납니다. 지난 8월호 조사심의관 코너에서 판례공보와 종합법률정보 시스템을 설명드리면서 판결문의 개인정보 비실명처리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드렸는데, 오늘은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사심의관들이 비실명처리 업무를 하는 판결문은 기본적으로 판례공보에 게재되는 판결문, 종합법률정보에 외부공개용으로 등록되는 판결문(대법원판결이 등록된 경우에는 그 하급심판결 포함)입니다. 속보자료가 발간되는 판결문들은 전원합의체 판결문의 경우 선고된 때부터 1시간 이내, 그 외의 판결문들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비실명처리를 완료하여 법원도서관 및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해 별도로 비실명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비실명처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일까요? 조사심의관들이 하는 비실명처리는 법원도서관 내규인 「판례 편찬물 등의 비실명 처리 지침」에 따릅니다. 지침에 따른 비실명처리의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자연인의 성명은 원칙적으로 비실명처리 대상입니다. 다만 해당 사건의 법관, 검사, 변호사 등은 예외이고 역사적 인물, 공지 주요사건 또는 명예훼손 소송 등의 당해 유명인의 경우도 일정한 경우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성명 외에도 자연인의 식별정보, 즉 성명에 준하는 것(호, 아이디, 별명 등), 각종 연락처(전화번호, 이메일주소, 거주지 주소 등), 각종 금융정보(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수표번호 등), 기타 특정인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소유 부동산 주소, 주민등록번호, 차량등록번호 등)도 비실명처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법인, 단체, 법인격 없는 사단 등의 명칭이나 상호, 개인사업체 명칭, 학교·병원명, 지방자치단체명 등은 원칙적으로 실명을 유지합니다. 다만 공개될 경우 자연인인 사건관계인이나 제3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때 등에는 비실명처리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에는 형사판결문의 경우 원칙적으로 비실명처리를 하고 그 외의 판결문에서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는 때 등에 예외적으로 비실명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비실명처리 대상 정보는 어떻게 ‘비실명’인 것으로 만들까요? 자연인의 성명과 법인 등의 명칭은 소송상 일정한 지위가 있는 경우에는 그 지위에 따라 ‘원고 1’, ‘피고인 2’, ‘준항고인 3’ 등과 같이 바꾸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형사 판결문의 경우에는 ‘공소외 1’, ‘공소외 2 주식회사’ 등과 같이, 나머지 판결문의 경우에는 ‘소외 1’, ‘신청외 2 회사’, ‘청구외 3 종중’ 등과 같이 바꿉니다. 당사자란의 성명, 명칭 외의 정보는 모두 삭제하고, 판결 이유 중에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종류별로 등장 순서에 따라 ‘(전화번호 1 생략)’ 등과 같이 변경합니다(주민등록번호의 경우에는 단순히 삭제합니다). 판결 이유 중에 나타난 주소를 비실명처리(‘비식별처리’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해야 할 경우에는 시·군·구 이하의 부분부터 지번 부분까지를 ‘(주소 1 생략)’ 등과 같은 문구로 대체합니다.
문제는 상호 등의 비실명처리 방법입니다. 기존의 지침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상호 등은 고유한 명칭 부분을 글자 수와 동일한 부호로 적절히 대체하는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이때 사용하는 부호의 순서도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판례공보에서 많이 보시는 ‘○○○’, ‘△△△’, ‘□□□’, ‘◇◇◇’부터 시작해서 66개의 부호가 열거되어 있었는데, 대법원판결의 경우에는 비실명처리할 대상이 그렇게 많지 않아 위의 부호들 외에 다른 부호가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급심판결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비실명처리해야 하는 대상이 많은 경우 66개의 부호로도 모자라, 다음과 같이 보기 드문 부호를 이용하여 비실명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살피건대, (중략) 피고인 2(대판:피고인 1)는 수사기관 이래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당시 피고인 3(대판:피고인 2)이 행시 22회 동기인 공소외 29
≒≒시장에게 전화하여 의암호 ∠∠∠∠ 복합타운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수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2010. 10. 15. 피고인 3(대판:피고인 2)과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1,000만 원을 주었다. (이하 생략)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를 하는 경우 가독성이 저하되고 읽을 때 지칭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실명처리 업무를 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위와 같은 방식뿐만 아니라 ‘(상호 1 생략)’, ‘(명칭 2 생략)’ 등과 같은 방식으로도 비실명처리를 할 수 있도록 얼마 전 지침을 개정하였습니다. 대법원판결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종전의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를 하고 있으나 사안에 따라서는 새로운 방식도 적용할 수 있으므로, 판례공보를 보실 때 종전과 다른 방식의 비실명처리 예가 보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지침만으로 비실명처리 업무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지침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우들이 생기고, 지침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례들도 적지 않게 나타나 조사심의관들이 상호 토론을 하면서 고심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일반행정사건 판결문에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대한 내용, 사망 경위, 학력과 관련된 사항들이 상세히 나타나거나, 사망 원인, 상세한 생활 모습과 함께 근무하였던 회사가 나타나는 경우, 조세사건 판결문에 회사의 유력 관계인의 병명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지침에 없더라도 리걸마인드를 동원하여 그때그때 비실명처리를 할 것인지, 어떤 범위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애매하면 무조건 비실명처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할 경우 판결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판결문의 비실명처리 업무가 생각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고, 판결문에 개인정보가 나타나는 사건관계인의 경우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다른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된 판결문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현재 법원행정처 재판사무국의 ‘판결서 비실명화 및 전자소송사건 스캔업무지원 사업소’에서는 민사소송법 제163조의2, 형사소송법 제59조의3에 따른 열람 대상인 판결문들을 대량으로 비실명처리하고 있는데, ‘판결서 등의 열람 및 복사를 위한 비실명 처리 기준(재일 2014-2)’에 따라 비실명처리 대상 정보를 유형 구분 없이 A, B, C 등 알파벳 대문자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법원도서관의 비실명처리 지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업소의 비실명처리 방식은 대상이 되는 본안사건 판결문 수와 외주업체 직원을 통해 업무가 수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판결문 공개와 관련된 질의나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조사심의관들은 비실명처리의 문제, 다시 말하면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상세한 판시로 개인정보가 가득 담겨 있는 판결문들을 비실명처리하는 문제는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정보들의 비식별처리 문제3)와는 성격이 달라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혜가 모여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생각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마칩니다.
1) 사실 미국은 주마다 또 연방의 제도가 달라 일률적으로 ‘미국은 이렇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2) 2014. 1. 1. 시행된 「인터넷상에 인민법원 재판문서의 공포에 관한 최고인민법원의 규정」에 따르면 혼인사건의 당사자, 형사사건의 피해자, 미성년자 등을 제외하고는 실명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판결문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글_이기리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