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의관 코너] 도서관의 여정: 과거와 미래

조사심의관 코너

2025.10.02

조사심의관 코너

글. 이혜진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대학교 신입생 시절 여름 방학, 친구와 처음 뉴욕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수많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뉴욕 공공도서관(The New York Public Library)’이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브라이언트 파크 옆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1911년 완공된 그리스・로마 형식의 석조 건물로, 웅장한 외관부터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대리석과 원목으로 꾸며진 넓은 로비와 긴 회랑, 대형 샹들리에가 늘어진 열람실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의 어느 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일반적인 문서 자료뿐만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성서 초판본, 토머스 제퍼슨의 미국 독립선언문 초고와 같은 역사적 사료와 희귀 도서 등 5,000만 점 이상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 내부 투어를 하면서, 관광객이 아니라 그곳 열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9,000개 이상의 공공도서관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도서관, 시립・구립도서관 등 많은 공공도서관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고, 도서관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폐쇄형 도서관

사실 원래 ‘도서관’은 이렇게 누구나 자유롭게, 게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도서관은 주로 소수의 귀족 계층이나 학자, 성직자 등 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나 학술 저장소였습니다. 즉, 인쇄술이 발명되고 제지 기술이 확산되기 전 점토판이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독피지・양피지에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쓴 자료는 당연히 매우 수량이 적고 귀했습니다. 이러한 기록물이 모여 있는 도서관은 권력층이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엘리트들이 이용하는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그곳에 있는 자료를 통해 정보를 얻고 지적 교류를 하였지만, 일반 대중들은 문맹률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 자체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회원제 도서관

이후 인쇄술과 제지 기술이 발달하여 종이로 된 비교적 가벼운 책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기록물의 저장 및 운반이 쉬워져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18세기에 이르러 이른바 ‘회원제 도서관(Subscription Library)’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주로 개인적으로 많은 책을 살 여유가 없는 중산층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회비를 내고 회원으로 등록하여 책, 지도, 과학 도구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고, 도서관은 회원들이 낸 회비로 운영되었습니다. 회원제 도서관의 등장을 통해 당시 도서관이 더 이상 개인이나 소수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1731년 필라델피아 도서관 회사(Library Company of Philadelphia)를 설립하여 회원제 도서관을 운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무료 공공 도서관

1848년에 설립된 보스턴 공공도서관은 미국 최초의 대형 시립도서관입니다. 보스턴 공공도서관은 지식과 정보가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모든 시민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한 ‘무료 공공도서관(Public Library)’으로서, 세계 최초로 시민들에게 무료로 도서 대출을 실시하였고(당시에는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1895년 어린이 전용실을 설치하고 1902년에는 어린이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많이 만드는 데에는 자본가들의 기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의 확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은 우리에게 ‘철강왕’으로 잘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입니다. 카네기는 1901년 뉴욕 공공도서관 건립에 520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이듬해 2,500만 달러를 들여 무료 도서관 건립을 위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1919년 사망하기 전까지 미국과 영국에 약 2,500개가 넘는 공공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5,620만 달러를 기부하여, 지식과 정보를 시민 사회에 널리 보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현재 세계 최대의 도서관은 미국 의회도서관입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470개의 언어로 된 자료를 소장하고 있고, 3,900만 점이 넘는 도서와 인쇄자료, 7,200만여 점의 필사본 등 약 1억 6,700만 점이 넘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 세계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더라도 미국 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식과 정보 접근성

이렇게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인 도서관의 접근성이 높아지는 변화를 통해, 극소수 특권층의 소유물이던 ‘지식과 정보’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습득할 수 있는 공공재로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확산되면서 대중의 교육 기회가 크게 넓어졌고, 지식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어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흔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공도서관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민주주의 강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사회적 인프라인 것입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이제는 온라인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가 전자화, 디지털화되고, 도서관에 찾아가는 수고로움조차 없이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너무나 많은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며 필요한 부분을 찾아 헤매지 않고, 키워드 검색으로 단숨에 정보를 찾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종이가 아니라 만질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 기록・저장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됩니다. 불과 3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만 하더라도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이런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AI 시대를 맞아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식플랫폼

앞으로의 시대에도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라는 본질적인 역할을 변함없이 유지할 것입니다. 오히려 책을 보관・관리하는 것을 넘어, 지식과 정보가 담긴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자료를 수집, 저장, 제공하고, 이를 활용하는 지식 플랫폼이자 인프라로서, 과거 공공도서관이 사회 발전에 기여했던 것처럼 정보화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우리는 매일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가도, 종종 책 향기가 나는 도서관,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책장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서가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하고 평안해지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도, 도서관은 과거의 수많은 지혜가 축적된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을 주고, 이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색의 공간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전통과 혁신을 아우르며 발전할 도서관의 미래가 무척 기대됩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