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백승준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1913년 7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의 기온은 56.7℃에 도달했습니다. 당시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강력한 고기압권이 형성되어 폭염이 지속되었고, 협곡 지형인 데스밸리는 태양 복사열이 갇혀 기온이 계속 상승하였습니다. 뜨겁고 건조한 산바람까지 불면서 오전부터 50도를 넘는 기온이 이어지다가 오후에는 56.7℃를 기록하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의 때 이른 폭염이 일시적 기상이변이 아닌 새로운 기후 현실이라며 인류는 폭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와 고온다습한 기후, 도시의 열섬현상은 신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업무 집중력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재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일상과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섬세한 과정이기에 사소한 판단오류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법정도 문을 살짝 닫습니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법원의 ‘휴정기’는 사법부의 조용한 숨 고르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긴급하지 않은 기일은 열리지 않고, 재판부는 평소에 차분히 검토할 여유가 없었던 장기미제사건, 법리나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에 집중하면서 심리의 밀도를 높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재판은 멈추지 않지만, 조금은 느슨해지는 이 고요한 시기야말로 다음 분기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이 휴정기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필요한 것일까요?
휴정기의 도입과 제도화
‘휴정기’는 법령에 명시된 제도는 아니지만, 사법행정상 관행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재판부별로 다르게 운영되던 휴정 기간을 법원 차원에서 통일시키고자 2006년 5월 전국의 법관과 법원공무원 1,4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거쳐 7월 24일부터 8월 11일까지 3주 중, 각 법원의 사정에 따라 2주를 정하여 휴정기를 운영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어 2012년 11월 말에는 대법원에서 전국 법원에 동계 휴정을 권고하여 2012년 12월 24일부터 2013년 1월 4일까지 동계 휴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법원이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 사이 2~3주간을 하계 휴정기로, 12월 하순부터 1월 초순 사이 2주간을 동계 휴정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익히 아시는 것처럼 휴정 기간에는 민사·행정·가사사건의 변론기일·변론준비기일과 조정·화해기일, 형사사건의 불구속 공판기일과 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일, 그 밖에 긴급하지 않은 기일 등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사·행정·가사사건의 가압류·가처분·집행정지 심문기일, 형사사건의 구속 공판기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기일, 체포·구속적부심의 심문기일 등 기일을 미루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사건은 휴정기 중에도 계속 진행됩니다.

조선 시대의 여름과 휴식
조선 시대에도 여름철 무더위를 고려한 제도적 배려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더위’라는 검색어로 찾은 국역 기사의 수는 총 817건입니다. 왕마다 재위 기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성종(102), 선조(80), 중종(79), 세종(61)의 순으로 많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성종과 중종은 더위로 인해 경연이나 정사를 중단한 사례가 많고, 선조는 임진왜란 중 더위 속에서 고생한 신하, 군인이나 명군 장수를 위로하는 기록이 다수입니다. 한편 세종은 더위가 심하니 부역이나 공사를 중지하거나 더위로 옥중의 죄수가 죽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지시가 대부분이어서 왕들의 통치 철학이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관습도감(慣習都監, 조선 초기 설립된 궁중 음악과 민간 음악의 관리 및 창작을 담당한 기관)의 광대와 기생들이 심한 추위와 무더위, 장마에도 항상 기술을 연습하게 한다면 생계가 염려되니 4번으로 나누어 매년 춥고 더운 여섯 달을 제외한 2월부터 4월까지, 8월부터 10월까지 기술을 연습하게 하시라.’는 건의가 등장합니다(세종 25년 9월 16일 첫 번째 기사). 또한 문종실록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더위 속에서도 정사를 계속 보는 문종에게 신하들이 ‘세종께서도 무더위에는 정사를 멈추셨다.’며 휴식을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문종 1년 7월 14일 첫 번째 기사). 성종도 신하가 ‘혹서기에는 야대(夜對, 야간 경연)를 중지하자.’고 청하자 ‘그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겨울철에도 야대를 정지하는 때가 있으니 헤아려 잘 생각하겠다.’고 답하거나(성종 4년 7월 23일 세 번째 기사),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 경연을 정지하였습니다(성종 8년 5월 24일 다섯 번째 기사). 중종도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에게 때때로 제술(製述, 시와 문장을 짓는 수업)을 시켜야 하지만 지금은 무더위가 찌는 듯하니 날이 선선해지거든 실시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중종 34년 7월 14일 세 번째 기사).
삼복 더위 속에서 장시간 심문을 하거나 형을 집행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기에, 실록에는 죄가 가벼운 죄수는 보증을 받고 풀어주거나 벌금을 내도록 하고 풀어주었다는 기사가 자주 보입니다. 성종은 ‘원각사의 중이 불상이 돌아섰다는 요망한 말을 퍼뜨리니 국문(鞫問)하자.’는 신하의 건의를 ‘형신(刑訊)을 가하여도 실정을 알아내기 어렵고, 지금 더위를 당하여 고문하다가 죽는 데에 이르면 원통하고 억울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성종 11년 5월 28일 첫 번째 기사). 또 성종은 ‘호된 더위에 가벼운 범죄로 갇혀 여러 날 동안 형문을 받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자가 있을 것이니 애처롭다. 강상에 관계되거나 사형에 해당하는 자, 강도·절도 외에는 더운철 동안만 보방(保放, 죄수에게 보증을 세우고 방면함)하였다가 추국하여 그 목숨을 보전하게 하라.’고 전교한 적도 있습니다(성종 15년 7월 11일 세 번째 기사). 이는 단지 효율적 통치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세계의 사법 휴정 제도
우리나라의 휴정기는 법률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경우 휴정기를 법률로 정하거나 역사적 전통에 따라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법 휴정(judicial vacation) 제도는 단순히 업무 경감 차원을 넘어 재판의 질 향상과 제도적 재충전의 의미를 지닙니다.
프랑스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에서는 재판이 열리는 재판 연도가 역년과 달랐습니다. 1405년 법령이 재판 휴정 기간 동안 당직 판사로 구성된 임시 재판소를 설립하여 긴급한 사건만 심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구 민사소송법에도 7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민사법원의 업무가 중단되는 사법 휴정(Les vacances judiciaires) 규정을 두었는데 이 법은 1974년 폐지되었습니다. 그 대신 민사소송법이 아닌 사법조직법(Code de l’organisation judiciaire)에서 법원장이 ‘업무완화 기간’(période de service allégé)을 정하도록 개정되었습니다. 이는 법원장이 명령(ordonnance)으로 정하는 행정적 조치이며, 일 년에 약 12주의 업무완화 기간이 부여됩니다. 통상 여름에는 7월 15일부터 9월 1일까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각 2주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기간에는 법관과 법원공무원이 교대로 휴가를 가고, 일부만 근무하면서 업무 범위를 축소하여 운영합니다.
독일 민사소송법(ZPO) 제227조는 법정 휴정(Gerichtsferien) 기간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규정하면서 그 기간 중 심리가 연기되거나 기일이 변경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관행적으로는 7월 15일부터 9월 1일까지 6주간 법정 휴정 기간을 운영하는데, 법률에서는 더 넓은 기간에 대해 기일 연기의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만 운영상 이보다 더 좁혀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연방정부가 일괄적으로 정하지는 않지만, 각 주 법원이 관행적으로 같은 시기에 휴정기를 운영합니다. 가압류·가처분 등 긴급한 민사보전 사건이나 주거용 건물에 관한 분쟁, 건설공사 관련 일부 사건은 법정 휴정 기간에도 심리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형사소송법에는 그와 같은 규정이 없고 형사재판은 연중 계속 진행됩니다.

영국 법원은 법률 연도(Legal Year)라는 개념 아래 한 해를 여러 개의 회기(term)와 휴정기(vacation)로 나눕니다. 주요 고등법원과 항소법원 등 상급법원은 여름,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연 3회의 휴정기를 운영하는데, 가장 긴 휴정기는 여름 휴정(Summer Vacation)으로, 대략 7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약 2개월간 이어집니다. 부활절(Easter)과 크리스마스(Christmas) 휴정기는 각각 2~3주 정도입니다. 휴정기 동안에는 일반적인 재판은 열리지 않고 긴급한 사건이나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사건만 휴정 담당 판사(Vacation Judge)가 지정되어 심리합니다. 다만 상급법원(High Court, Court of Appeal, Supreme Court)에 주로 적용되고 형사법원 등 하급법원(Magistrates’ Courts, Crown Court)은 휴정기와 무관하게 연중 계속 운영되며, 형사사건은 휴정기에도 계속 진행됩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매년 6월 말부터 7월 초 사이에 회기를 종료하고, 10월 첫째 주 월요일에 새로운 회기를 시작합니다. 이 휴정기 중에는 공개 구술변론(oral arguments)이 열리지 않고, 대법관들은 판결문 작성, 상고허가 신청 심사, 다음 회기 사건 선정, 내부 연구 등의 업무에 집중합니다. 다만 휴정기 중에도 긴급 사건은 개별적으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뉴저지 등 일부 연방지방법원은 8월 한 달을 공식 휴정기로 지정하기도 하는데, 이 기간에는 재판이 대폭 축소되고, 긴급한 사건만 처리하고 있습니다. 각 주 법원에서도 7~8월에 재판 일정을 줄이고 배심 재판을 제한하는 등 휴정기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합니다.
왜 휴정기가 필요할까요
재판은 인간의 삶과 권리를 가늠하는 고도의 지적·감정적 노동입니다. 때로는 냉정한 이성과 따뜻한 공감이 동시에 요구되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한 번의 판결이 수년의 갈등을 정리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며,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런데 그 무게를 지탱하는 이들에게도 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더운 여름 장시간 심리를 이어가는 것은 당사자나 소송관계인에게도, 법관과 법원공무원에게도 모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휴정기는 심리의 충실도를 높이고, 당사자의 피로를 줄여주며, 공정한 판단을 위한 여유를 확보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특히 민감하거나 복잡한 사건일수록 신중한 판단을 위한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업무 흐름 속에서 적절한 쉼이 꼭 필요합니다.

마치며
여름은 뜨겁고 사람은 지칩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다시 공정한 재판을 위한 힘을 비축합니다. 판결문 한 줄이 담고 있는 무게를 아는 이들이기에 그 계절의 쉼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올여름에도 법정은 잠시 조용하지만, 그 정적은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가장 분주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