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민희진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친밀한 거리는 약 46cm 이내, 개인적 거리는 약 46~120cm, 사회적 거리는 약 120~360cm, 공적인 거리는 약 360cm 이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 거리를 침범할 경우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고 해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반경 46cm 안으로 진입하는 직장 상사, 2m 이상의 거리를 상시 유지하는 야속한 연인, 모두 위 기준을 위반한 것이죠.원만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정한 거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 적정선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 단어와 단어 사이의 한 칸 거리를 제대로 두면 글에 호흡이 생기고 매끄러움과 완결성이 더해지지만, 띄어쓰기는 국어 전문가도 자신 없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고 예외도 많습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는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는지, 속이 상한지, 속 이상한지, 띄어쓰기에 따라 뜻마저 달라집니다.
아래에서는 많이 사용하지만 헷갈리는 띄어쓰기 몇 가지를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과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라 소개하려고 합니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하되,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고, 의존 명사는 원칙적으로 띄어 쓴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한글 맞춤법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국어기본법
제14조(공문서 등의 작성·평가)
①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1. 데/-ㄴ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데
「의존 명사」
「1」 ‘곳’이나 ‘장소’의 뜻을 나타내는 말.
의지할∨데 없는 사람.
「2」 ‘일’이나 ‘것’의 뜻을 나타내는 말.
그 책을 다 읽는∨데 삼 일이 걸렸다.
「3」 ‘경우’의 뜻을 나타내는 말.
머리 아픈∨데 먹는 약.
-ㄴ데
「어미」 (‘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 ‘ㄹ’ 받침인 형용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사오-’ 따위 뒤에 붙어) 뒤 절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하여 그 대상과 상관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쓰는 연결 어미.
여기가 우리 고향인데 인심 좋고 경치 좋은 곳이지.
■ 어문규범에 따라 의존 명사인 ‘데’는 앞 단어와 띄어 씁니다.
■ 어미는 ‘용언 및 서술격 조사가 활용하여 변하는 부분’이지 독립된 단어가 아니므로, 어미 ‘–ㄴ데’는 붙여 씁니다.
■ 의존 명사인 ‘데’는 장소의 의미로 쓰인 경우 ‘곳’으로 바꿔 읽었을 때 자연스럽고, 나머지 의미로 쓰인 경우 격 조사
‘에’ 등을 결합했을 때 자연스럽습니다.
어미인 ‘–ㄴ데’는 ‘-이다. 그런데’로 바꿔 읽었을 때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의지할∨데(=곳) 없는 사람. ⇨ 의존 명사
그리운∨데(에) 이유가 없다. ⇨ 의존 명사
그리운데(에X) 볼 수 없다. ⇨ 어미
2. 자(字)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
「명사」 ‘날짜’를 나타내는 말.
3월 15일∨자 신문.
■ 지난 1년간 가장 많은 문의를 하신 맞춤법은 결정서 작성일 뒤에 사용하는 ‘자’의 띄어쓰기입니다.
■ ‘자’는 날짜를 나타내는 명사이므로, 어문규범에 따라 앞말과 띄어 씁니다.
대법원 2022. 1. 14.∨자 2021모1586 결정
3. 그다음 날
가. 그다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그-다음1)
「명사」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나 자리.
그다음∨날.
■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라는 뜻의 ‘그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는 합성어이므로, 붙여 씁니다.
■‘단어와 단어는 원칙적으로 띄어 쓰되, 조사, 어미, 접사는 앞 단어와 붙여 쓴다.’ 여기까지는 알 것 같은데, 이 원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합성어가 등장합니다. 띄어쓰기의 난이도를 3단계쯤 올리는 단어죠.
합성어는 둘 이상의 단어가 자주 함께 쓰여 한 단어로 굳어진 것으로,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보아 붙여 씁니다. 그런데 단어들의 조합이 한 단어인 합성어인지 띄어 써야 하는 단어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합성어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딱히 없고, 모두 외울 수도 없으니, 수상한 단어들이 나타날 때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어문규범에 따라 어떤 말을 앞말과 띄어 쓰는 일’이라는 뜻의 ‘띄어쓰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된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하고, ‘띄다 + 쓰다’로 구성되는 ‘띄어V쓰다’는 ‘띄어쓰다’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므로 원칙으로 돌아가 띄어 써야 합니다.
한편 예전에는 ‘붙여쓰기’가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지 않아 ‘붙여V쓰기’로 썼다고 해요. 그래서 당시 「‘띄어쓰기’는 붙여 쓰고, ‘붙여 쓰기’는 띄어 쓴다.」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붙여쓰기’도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어 붙여 쓰면 됩니다.
나. 다음∨날
■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으면 붙여 쓰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더니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음날’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한 단어인 표제어가 등장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다음-날
「명사」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
다음날에 만나면 식사나 하죠.
합성어로 ‘다음날’이 등재되어 있지만, 이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등재된 ‘다음날’은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이라는 뜻이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위 뜻에 한해 합성어로 인정한 것이니까요.
문서를 작성할 때 ‘기준이 되는 어떤 날의 다음에 오는 날’의 의미로 ‘다음 날’을 사용한다면, 사전에 등재된 ‘다음날’과 뜻이 다르고, 한 단어로 인정받지도 못했으므로, 띄어쓰기 원칙으로 돌아가 ‘다음∨날’로 띄어 씁니다.
■ 결국 표준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는지와 그 뜻까지 확인해야 하니 합성어의 띄어쓰기가 녹록하지 않습니다.
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2020. 1. 16. 자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발췌)
‘그다음’은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나 자리’를 뜻하고 ‘다음날’은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을 뜻하는데, ‘다음날’은 정하여지지 않은 날이라 ‘그’의 수식을 받기 어려우므로 일반적으로는 ‘그것에 뒤이어 오는 날’의 뜻으로 ‘그다음∨날’과 같이 띄어 씁니다.
4. 시(時)
가. 요구시 (X) ⇨ 요구∨시 (O)
나. 필요∨시 (X) ⇨ 필요시 (O)
■시(時)는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날 때나 경우’를 뜻하는 의존 명사로 앞말과 띄어 씁니다.
■ 그런데 비상시(非常時), 유사시(有事時), 평상시(平常時), 필요시(必要時)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하나의 단어로 등재되어 있으므로 붙여 씁니다.
5. 지/-ㄴ지/-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
「의존 명사」 (어미 ‘-은’ 뒤에 쓰여)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말.
집을 떠나온∨지 어언 3년이 지났다.
-ㄴ지
「어미」
「1」 (‘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 ‘ㄹ’ 받침인 형용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막연한 의문이 있는 채로 그것을 뒤 절의 사실이나 판단과 관련시키는 데 쓰는 연결 어미.
얼마나 부지런한지 세 사람 몫의 일을 해낸다.
「2」 (‘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 ‘ㄹ’ 받침인 형용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해할
자리나 간접 인용절에 쓰여, 막연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안녕하신지.
-지
「어미」
「1」 (용언의 어간이나 어미 ‘-으시-’, ‘-었-’ 뒤에 붙어) 그 움직임이나 상태를 부정하거나 금지하려 할 때 쓰이는 연결 어미. ‘않다’, ‘못하다’, ‘말다’ 따위가 뒤따른다.
먹지 아니하다.
「2」 (‘이다’의 어간, 용언의 어간이나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상반되는 사실을 서로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연결 어미.
콩을 심으면 콩이 나지 팥이 날 수는 없다.
■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의존 명사인 ‘지’는 앞말과 띄어 씁니다.
■ 의존 명사 ‘지’와 헷갈리는 ‘지’는 대부분 어미이므로, 일반적으로 ‘시간의 경과’와 관계된 내용이면 띄어 쓰고, 나머지는 붙여 쓰되, 애매한 경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해 봅니다.
버스가 도착한∨지 1시간이 지났다.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의 ‘경과’와는 관계 X)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여전히 아름다운지
띄어쓰기는 붙여 쓰거나 띄어 쓰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니 간단할 것 같지만, 다양한 예외가 있고 합성어도 많아 제대로 쓰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붙여쓰기, 띄어쓰기 모두 허용되어 틀린 줄 알았는데 제대로 쓴 경우도 있습니다.
법률가가 법을 몽땅 외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법전을 찾아보듯이, 단어 사이 적정한 거리 두기를 위해 애매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규범(https://korean.go.kr/kornorms),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과 ‘법원 맞춤법 자료집’등을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새로운 봄이 다가오는 설레는 2월입니다. 2024년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기호 ‘-’는 복합어의 최종 분석 단위 경계 표시로 붙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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