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의관 코너] '한 번'에 관하여 '한번' 알아봅시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2.04.08

조사심의관 코너

글 손광진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한 번’에 관하여 ‘한번’ 알아봅시다

안녕하세요.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손광진 판사입니다. 앞으로 조사심의관 코너를 통하여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유익하고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사심의관에게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판례공보를 비롯한 여러 발간물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업무를 하다 보면 특히 정확한 맞춤법과 적절한 단어 사용법을 자주 확인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그중 인상 깊었던 것 하나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한번? 한 번?

1) 우리 재판부의 재판 기일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립니다.
2) 아래와 같은 내용을 한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문장의 ‘한 번’과 ‘한번’ 중 어떤 것이 제대로 쓴 것일까요?
결론은 둘 다 옳게 쓴 것입니다.

“우리 재판부의 재판 기일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립니다.”의 ‘한 번’은 재판 기일의 횟수를 세는 것이므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위 문장에서 ‘한 번’은 수(數) 관형사 ‘한, 두, 세 ···’와 의존명사 ‘번’이 결합하여 차례나 횟수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42항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글 맞춤법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먹을 만큼 먹어라.          아는 이를 만났다.
네가 뜻한 바를 알겠다.   그가 떠난 지가 오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번(番)

[Ⅱ] 「의존 명사」

「1」 일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
· 둘째 번.

「2」 일의 횟수를 세는 단위.
· 여러 번.
·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
· ‌몇 번을 그 앞을 왔다 갔다 하여 보았지만, 들어갈 기회는 얻을 수가 없었다. ≪김동인, 젊은 그들≫

「3」 어떤 범주에 속한 사람이나 사물의 차례를 나타내는 단위.
· 4번 타자.
· 1학년 2반 34번.
· 1번 버스.

그렇다면 ‘한번’은 틀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하나의 단어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번(한番)

[Ⅰ] 「명사」

(주로 ‘한번은’ 꼴로 쓰여) 지난 어느 때나 기회.
·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지.
· 언젠가 한번은 길에서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친 일이 있었어.
· 한번은 네거리에서 큰 사고를 낼 뻔했다.
[Ⅱ] 「부사」

「1」 ‌(주로 ‘-어 보다’ 구성과 함께 쓰여)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을 나타내는 말.
· 한번 해 보다.
· 한번 먹어 보다.
· 제가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2」 기회 있는 어떤 때에.
·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 시간 날 때 낚시나 한번 갑시다.
· 언제 한번 찾아가 뵙고 싶습니다.

「3」 ‌(명사 바로 뒤에 쓰여)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 춤 한번 잘 춘다.
· 공 한번 잘 찬다.
· 너, 말 한번 잘했다.

「4」 일단 한 차례.
·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 한번 먹으면 멈출 수 없는 맛이다.

이처럼 ‘한번’이라는 단어는 ‘지난 어느 때나 기회’라는 뜻의 명사나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을 나타내는 말’, ‘기회 있는 어떤 때에’ 등의 뜻을 가진 부사로 쓰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한 단어로 붙여서 써야 합니다. 특히, 부사로서의 ’한번’이라는 뜻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같은 단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우리말의 오묘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하지만 오묘하게 달라지는 의미 때문에 우리는 막상 쓸 때마다 헷갈리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한 번’의 ‘한’을 다른 수로 바꿔 써보는 것입니다. ‘한 번’을 '두 번’, ‘세 번’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면 ‘한 번’으로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한번’으로 붙여서 쓰면 됩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올라온 예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유명한 속담인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라는 문장입니다. 여기서 ‘한번’을 ‘두 번’으로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한번’으로 붙여 써야 합니다. 물론 ‘두 번’ 엎지른 물도 다시 주워 담지는 못하지만, 위 속담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뜻이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한 번 실패하더라도 두 번, 세 번 다시 도전하자.”라는 문장은 어떨까요? 여기서는 반대로 ‘한 번’을 ‘두 번’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므로 ‘한 번’으로 띄어 쓰면 됩니다.

인사이동이 있는 철이면 우리는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거나,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는 기회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많이 하지요.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기회가 있는 어떤 때에’ 밥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것이므로, ‘한번’으로 붙여 써야 합니다.

굳이 상대방과 밥을 ‘한 번’만 먹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신 것이라면, “밥 한 번 먹자.”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뒤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정말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우리 매주 한 번씩 밥 같이 먹자!”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겠지요?

작년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예선 3차전 도미니카공화국전 기억하시나요? 우리나라가 9-15로 뒤진 채 맞은 4세트 작전타임에서 김연경 선수가 갑자기 동료들을 독려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경기를 시청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만약 이때 김연경 선수가 “한번 해보자.”라고 외쳤다면 어땠을까요? 이때 ‘한번’은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한다’는 뜻의 부사로 쓰인 것으로 보이니 붙여서 써야 하겠습니다. 저 말을 “두 번 해보자, 세 번 해보자.”로 바꾸는 것은 뭔가 어색하니까요. 역시 상상의 사례이지만 만약 김연경 선수가 박정아 선수에게 “네가 두 번 공격하고, 내가 한 번 공격하자.”라고 했다면, 이때는 횟수를 말한 것이니 띄어서 써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짚어 봅시다

이제는 ‘한 번’과 ‘한번’을 구별하기가 쉬워지셨나요? 다시 한번 더 되짚어 보겠습니다. 잠깐, 다시 한번? 또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올라온 다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다시 한 번 손님을 쳐다보았다.
2) 다시 한번 손님을 쳐다보았다.

위 두 문장은 어떤 것이 맞게 쓴 것일까요? 얼핏 보면 두 가지 다 의미가 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 문장과 같이 문맥만으로는 의미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 예전에는 그 뜻이 ‘시도’, ‘기회’, ‘강조’의 의미라면 ‘다시 한번’으로 쓰고, 반대로 ‘횟수’의 의미가 뚜렷하다면 ‘다시 한 번’으로 쓴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혼란이 이어지자 국립국어원에서는 논의를 거쳐 의미에 상관없이 ‘다시 한번’의 형태에서는 ‘한번’을 항상 붙여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하니, 이제 ‘다시 한번’은 언제나 붙여서 쓰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위 문장은 결국 “다시 한번 손님을 쳐다보았다.”와 같이 써야 합니다.

또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을 때

이처럼 어려운 맞춤법을 이제 잘 아는 것 같아도 글을 쓰다 보면 ‘또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지난주에 봤던 재미있는 영화를 ‘또 한번’ 더 보러 가고 싶을 때도 있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 위 문장과 같이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또 한 번’과 같이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한글 맞춤법 제46항에는 아래와 같은 규칙도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 제46항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좀더 큰것 이말 저말 한잎 두잎

그래서 비록 횟수를 세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또 한 번’은 ‘또 한번’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어떠신가요? 이렇게 두 글자가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으셨나요? 머리 아프시다고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도 잠시 읽어보시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사심의관 코너를 통하여 헷갈리고 궁금한 것들을 찾아 쉽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 아래와 같이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이번 조사심의관 코너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A: <법원사람들>에 실린 조사심의관 코너 읽어 봤어?
B: 어젯밤에 집에서 ‘한번’ 읽어 봤는데, 난 이해가 잘 안 되더라.
A: ‘한 번’만 봐서는 이해 안 되지. ‘다시 한번’ 읽어봐.
B: 그래, 이따 시간 날 때 ‘또 한 번(또 한번)’ 읽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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