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의관 코너] 다음날, 그다음 날에

조사심의관 코너

2022.02.07

조사심의관 코너 글 윤민(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다음날, 그다음 날에

겨울은 법원 가족에게 익숙함과의 이별, 새로운 만남이 있는 계절입니다. 나그네처럼 온 세상인지라 언젠가 보내야 하고 언젠가 떠나야 해서, 그래서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지만, 보내고 돌아서면 마음이 헛헛합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조금은 성급하게 맺힌 작은 꽃망울이라도 보게 되면, 봄날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도 느낍니다. 2월 조사심의관 코너는 이러한 감성을 조금 담아, 아름다운 우리 노래, 한국 가곡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허림의 시(詩)에 곡을 붙인 창작 가곡 「마중」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지만 꽃이 되어 그 길에서 기다린다는 서정적인 가사와 함께, 클라이맥스 부분의 ‘하무뭇하니’라는 예쁜 우리말이 마음과 귀에 꽂힙니다. ‘하무뭇하다’는 ‘매우 하뭇하다’, 즉 ‘마음에 매우 흡족하여 만족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인데요, 여기서 ‘하무뭇하니’는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으로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2014년 ‘화천 비목 콩쿠르’ 창작 가곡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유튜브에서 여러 성악가의 영상을 보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버전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옵니다(개인적으로는 테너 박지민 영상을 추천합니다).
가곡(歌曲)은 시(詩)에 선율을 붙인, 문학과 성악이 공존하는 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독일의 리트(Lied), 이탈리아의 칸초네(Canzone), 프랑스의 샹송(Chanson)과 같이 모국어로 된 시어를 노랫말로 사용하여 시대의 감성을 담습니다. 1920년 홍난파의 「봉선화」로 시작된 한국 가곡은 「비목」, 「선구자」, 「보리밭」과 같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았지만, 80년대 이후로는 대중가요에 밀려 침체기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팬텀싱어’와 같은 TV 프로그램에 「첫사랑」, 「시간에 기대어」 등의 창작 가곡이 소개되면서, 우리말 시(詩)에 낭만적인 선율에 붙인 이른바 ‘K가곡’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성이 담기는 시(詩)에서는 시적(視的)인 효과를 표현하거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문법상 틀린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이를 ‘시적 허용’(詩的容許)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노래 가사에서도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 ‘시적 허용’에 해당할까요? 이에 관하여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서는, “노래 가사에서 음정, 발음, 표현 효과 등을 위하여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이것이 ‘시적 허용’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심의관 코너에서는 노래 제목과 가사를 통해, 일상에서 헷갈리기 쉬운 단어 몇 개를 살펴봅니다.

1. 다음날 vs. 다음V날
어제 아침에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헤어진 다음날」, 이현우-

판결문에 자주 쓰는 단어, ‘다음날’입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이 노래에서는 ‘이튿날’의 의미로 「헤어진 다음날」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 같은데요, 실은 ‘헤어진 다음V날’이라고 띄어 써야 합니다. ‘다음날’과 ‘다음V날’은 띄어쓰기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합성어인 ‘다음날’은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이고, ‘어떤 날의 다음에 오는 날’은 ‘다음V날’입니다. “다음날 만나 밥 먹자.”와 “다음V날 만나 밥 먹자.”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또한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를 뜻하는 명사인 ‘그다음’은 ‘추석과 그다음V날’과 같이 활용됩니다. 그리웠던 사람과는 ‘다음날’이 아니라 ‘그다음 날’ 만나기로 다짐해 봅니다.

2. 잊혀지다 vs. 잊히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봐
-「졸업」 , 전람회-

1997년 1월 발매된 ‘전람회’의 「졸업」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유명한 「Auld Lang Syne」 이 전주로 삽입되어 그 무렵 각종 졸업식에서 애용되었는데요. 여기서 등장하는 가사 ‘잊혀질까봐’는 국어 어법상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잊다’의 피동형은 ‘잊히다’이고, ‘잊혀지다’는 여기에 다시 ‘-어지다’를 결합시킨 이중 피동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잊혀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잊히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3. 손이 시려워 vs. 손이 시려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백순진 작사·작곡-

추억의 동요 「겨울바람」 의 가사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귀에 익은 노랫말과 달리, 사람의 손과 발은 ‘시려웁지’ 않고, ‘시릴’ 뿐입니다.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의 뜻을 가진 표준어는
‘시리다’로, ‘시리어’, ‘시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렵다’는 표준어가 아니므로 그 활용형인 ‘시려워’, ‘시려운’ 역시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4. 설레임 vs. 설렘
설레이는 소년처럼 얼굴을 붉힌 내 모습 너에게
- 「설레이는 소년처럼」, 신해철-

아이스크림 상표 ‘설레임’ 때문인지 저에게는 ‘설렘’보다 ‘설레임’이 더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의 뜻을 나타내는 표준어는 '설레다'로 ‘설렘’과 ‘설레는’이 맞는 표현입니다. 사동 접미사 '-이-'는 '보이다', '녹이다' 등과 같이 일부 용언에만 결합하고 '설레다'는 사동 접미사가 결합할 수 없는 동사이기 때문에 '설레이다', ‘설레임’, ‘설레이는’은 표준어가 아닙니다. ‘활짝 개인 날씨’, ‘불에 데인’도 잘못된 표현으로, ‘활짝 갠 날씨’, ‘불에 덴’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5. 그리고는 vs. 그러고는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테스형!」 , 나훈아-

2020년 하반기 가요계를 강타했던 나훈아의 「테스형!」 도입부입니다. 그렇지만 ‘그리고는’은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 부사인 ‘그리고’ 뒤에 보조사 ‘는’을 붙인 것인데,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닙니다. 동사로서 ‘그리하다’의 준말인 ‘그러다’ 뒤에는 보조사가 결합될 수 있으므로 ‘그러고’를 ‘그러고는’, ‘그러곤’으로 쓸 수 있습니다.

6. 행복하길 바래 vs. 행복하길 바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바램」, 노사연-

좋은 꿈이길 바라요
-「밤편지」, 아이유-

노사연과 아이유가 같은 뜻의 단어를 다르게 불렀습니다. 국어 어법에 맞는 표현은 ‘바램, 바래요’일까요, ‘바람, 바라요’일까요? 정답은 ‘바람, 바라요’으로 아이유의 승입니다. 소망을 말할 때 쓰이는 동사는 ‘바라다’로 “행복하길 바란다.”,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요.”로 쓰이고, 명사형은 원형을 밝혀 적는다는 원칙에 따라 ‘바람(바라 + ㅁ)’이 됩니다. ‘바래다’는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를 의미할 때, “종이가 바래다.”와 같이 씁니다.

7. 건강하세요 vs.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만날 순 없어도 그대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원써겐(1sagain)-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건강’에 관한 안부를 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건강하다'는 형용사이고 형용사에는 '-세요'와 같은 명령형 어미가 붙을 수 없으므로, ‘건강하세요’가 아니라 ‘건강하시길 바랍니다’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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