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
인공지능이 법원에 스며드는 방식은 ‘단번에 판결을 내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법이 공정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지원하고 챙겨주는 촘촘한 보조에서 시작된다. 국민 입장에서는 ‘AI 법원 도우미’가 첫 관문이 된다. 자신의 분쟁사건을 일상의 언어로 설명하면 분쟁 내용을 분석하여 쟁점이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증빙의 목록, 소송 절차나 방법 등을 안내해 준다. 사진이나 음성, 대화 메시지 등은 소송서류나 증거로 자동적으로 재구조화되고, 누락된 사실은 짧은 추가 질문으로 메워진다. 합의가 가능한 사안이라면 유사사례를 근거로 조정안이 제시되고, 수락하면 즉시 합의서가 만들어진다. 관할법원 추천, 인지액과 송달료 계산, 예상 처리기간과 다음 단계 타임라인이 한 화면에 정리되고, 송달이 어디까지 갔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제출했는지, 다음 기일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변론을 앞두고는 사건의 핵심 쟁점 요약과 상대방이 흔히 드는 반론의 유형, 증거 타임라인과 공격방어방법에 대한 주요 사항이 표시된다. 선고가 나면 판결문의 쉬운 언어의 해설본, “왜 이런 결론인가, 항소는 언제까지 가능한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Q&A가 제공되고, 불복절차를 놓치지 않도록 중요 기한도 챙겨준다.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과태료 납부, 보관금 환급, 판결문 정정 신청 같은 사후 처리 절차가 자동으로 지원되면서 국민의 수고가 줄어든다.
변호사의 업무 모습도 변화한다. AI가 접수·기일 변경·상대방 제출 등 매일 챙겨야 할 수임 사건 주요 할 일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알린다. 소송서류나 변론 준비에 필요한 사실관계 분석, 논증 구조의 약한 지점—예컨대 선행판례와의 충돌이나 증명되지 않은 주장에 대한 공격방어방법—이 제시된다. 의뢰인이 올린 자료를 토대로 AI가 자동으로 논점 지도를 그려 주고, 논점별로 판례·학설이나 각종 참고 자료가 함께 제시된다. 준비서면을 쓰기 시작하면 법률요건과 사실의 대응표가 자동으로 채워지고, 지연손해금 계산이나 이자율 산정의 오류는 즉시 경고가 뜬다. 증거 누락도 실시간으로 교정 제안을 받는다. 법정에서도 AI를 통해 실시간 녹취와 요지가 논점별로 정리되고, 증인의 전·후 진술 간 모순 가능 구간을 자동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한다. 반대신문용 질문안도 제시하여 현장에서의 대응이 민첩해진다. 판사가 질문을 던지면 AI가 관련 증거 파일과 기록의 정확한 페이지를 보여주고, 기일이 끝나면 AI가 의뢰인에게 “오늘의 쟁점과 판사의 반응, 다음 기일 준비물”을 자동 발송한다. 투입시간, 유사사건 대비 리스크 지표 등이 대시보드로 정리되어 데이터에 기반한 변호사 업무 수행이 가능해진다.
법원 직원의 업무도 크게 변한다. 민원창구에서 “제 사건, 어디까지 갔나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내부 포털의 자연어 검색창에 이름이나 사건번호만 입력해도 송달 현황과 반송 사유, 다음 예정 단계가 정리되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민원인이 키오스크나 휴대폰에서 AI로부터 직접 안내받을 수도 있다. 기록 업무에서는 새로 들어오는 서류가 자동으로 메타데이터 태깅을 거쳐 당사자, 쟁점, 날짜, 증거 유형이 붙고, 스캔본조차 의미 검색이 가능해진다. “2022년 겨울에 처음 임대료 미지급이 발생했다는 진술이 있었나?”라고 입력하면 해당 페이지와 주변 맥락이 바로 제공된다. 송달은 주소 정합성과 전입·반송 패턴을 반영한 최적 경로가 추천되어 반송률이 줄고, 전자송달과 우편송달의 조합이 상황별로 자동 조정된다. AI를 통해 반복 작업이 줄어들고, 사건의 특성에 맞춘 세심한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하게 된다. 나아가 AI가 각급법원별 사건 처리 현황이나 민원 처리 시간 등을 분석하여 인사나 예산 배분, 민원 대응 체계의 개선 등을 보조하여 데이터에 기반한 사법행정을 가능하게 한다.
판사는 분쟁해결에 ‘더 좋은 집중’을 하게 된다. AI가 준비하는 사건 대시보드에는 배당된 사건들이 난이도, 논점 수, 사회적 파급도, 기일 긴급성 등으로 자동 정렬되어 한 눈에 보여주고, 매일 다뤄야 하는 사건에 대하여 청구취지, 쟁점 요약, 핵심 증거, 선행 판례 등 핵심사항을 정리하려 묶어서 보여 주어, 새로 배당된 사건이라도 짧은 시간에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기록 화면을 열면 사실관계 타임라인과 증거의 출처·신뢰도가 표시되고, 금액·기간·이자율처럼 계산이 개입되는 사안에서는 수치의 불연속이나 분모·분자의 착오가 빨간 선으로 표시된다. 양형이나 보석처럼 통계 참고치가 도움되는 국면에서는 비교 지표가 제공되고, 지표가 어떤 데이터에 근거했고 대표성과 한계가 무엇인지가 함께 명시되어 “보조는 하되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 선이 분명해진다. 변론 중에는 실시간 녹취가 쟁점별로 구조화되고, 불명확하거나 상반된 진술 구간에는 ‘추가 질문’ 제안이 제공된다. 기일 말미에는 다음 기일 준비사항—누가 어떤 서류를 언제까지 보완해야 하는지—가 자동으로 정리되어 양측에 배포된다. 판결문 초안 단계에서는 논증 흐름의 비약, 사실인정의 불안정 조각, 인용 불일치가 표식되고 대체 가능한 법리 경로가 제시되어, 초안의 품질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선고와 동시에 대국민 요약본이 자동 생성되어 공개되므로, 판결문에 대한 접근성은 높이고 일반 국민의 이해가능성 격차는 줄어든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AI 보조는 상세한 로그로 남아 사후 검증이 가능해지고, 판사의 책임과 재량의 경계가 흐려지지 않는다.
이런 변화가 쌓여도 많은 이들의 질문은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AI 판사가 사람을 대체하느냐.” 지금의 궤적은 명료하다. 가까운 미래는 AI-보조 사법이다. AI가 발전하더라도 적어도 당분간은 사실인정과 신빙성 평가, 가치 충돌의 조정, 사회적 의미 부여,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 등의 가치 평가는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던진 문제의식—확률이 곧 정당화가 되는 순간 발생하는 위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 판사와 AI 보조가 함께 기여하고, AI의 기여가 판결서에 별도 표기되어 당사자가 그 부분을 표적 반박할 수 있는 ‘공동판결’ 모델로 발전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해도 AI 학습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AI 결론이 법리의 언어에서 납득 가능해야 하며, 독립된 교차검증과 모형 다변화,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외부 통제, 국민적 수용성 같은 전제들이 먼저 성숙해야 한다. 그 이후에 먼 미래의 언젠가는 일반 국민들이 요구하는 독립된 AI 판사의 출현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간 과정에서 인간과 AI 사이의 협업이 사법 영역에서 신뢰를 얻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법 AI의 개발과 운용을 통해 재판의 독립,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등 일반 국민이 사법에 요구하는 본질적 가치가 보다 더 효과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AI가 사법 전반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국민에게는 사법 서비스에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변호사에게는 보다 세밀하고 효율적으로 의뢰인을 위한 수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AI 변호 도구가 될 것이고, 법원 직원에게는 반복 업무의 경감과 정합성을 통한 민원 만족도 제고 어시스턴트, 판사에게는 정교한 사실·법리 보조를 통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지원 툴이 된다. 먼 미래 언젠가는 AI 판사가 사람을 대체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라도 AI는 사법 영역에서 수많은 세밀한 변화를 이끌어서 헌법이 추구하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다 더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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