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진짜 주인] 강아지 하나, 아이 둘, 행복 셋

강아지 하나, 아이 둘, 행복 셋


글. 사법연수원 양승배 주무관


2020년 12월, 

동그란 눈에 축 처진 귀, 손바닥만 한 몸에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던 

자그마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


작고 여린 몸으로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아이는 그렇게 우리 부부의 품에 안겼고, 그날부터 잔디는 우리 부부의 첫 아이가 되었다.


그해 겨울, 산책을 나갈 때마다 잔디는 내 잠바 속으로 쏙 파고들어 안기곤 했다. 아직은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걷는 것보다 따뜻한 품에 안겨 있는 것이 더 익숙했던 꼬맹이였다. 잠바 지퍼를 살짝 열어두면 그 틈 사이로 조그마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바깥세상의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잠바 속에 들어온 작은 몸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나는 그 조그마한 생명을 품에 안고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성장 속도는 정말 놀라울 만큼 빨랐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 무렵에는 어느새 안아 올리기조차 버거울 만큼 훌쩍 커버렸고, 가을이 되자 오히려 내가 잔디의 목줄을 붙잡고 끌려다니는 쪽이 되어 있었다. 손바닥만 하던 강아지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제법 늠름한 성견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렇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매일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처음 만났던 그 작은 강아지가 남아 있었다.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조그마한 몸, 잠바 속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던 작은 머리. 잔디는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커버렸지만, 내 기억 속 잔디는 여전히 그때 그 작고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


물을 무척이나 무서워하던 잔디가 처음 수영을 배우던 날도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물가 근처에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강아지가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더니, 잔디도 조금씩 물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 번 멈췄다가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던 잔디는 몇 시간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마치 다이빙 선수라도 된 것처럼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누군가 먼저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스스로 두려움을 이겨낸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잔디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서운 마음보다 궁금한 마음을 조금 더 앞세워 한 발 내딛던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는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그날의 잔디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거의 4년 동안 잔디는 우리 부부의 유일한 아가였다. 우리의 모든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럽게 잔디에게 향했고, 잔디 역시 그 사랑을 너무나 당연하고 편안하게 누리며 자랐을 것이다. 집 안의 중심에는 언제나 잔디가 있었고, 잔디가 있는 풍경이 곧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2024년 10월, 

우리 집에 어여쁜 남매 쌍둥이가 찾아왔다.


그날 이후 집 안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용하고 평온하던 집은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우리 부부의 시선과 손길도 자연스럽게 두 아이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잔디에게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 변화였을 것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가득 찬 집 안에서 잔디에게도 분명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기들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잔디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다. 마치 ‘나는 여기 조금 떨어져 있을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잔디의 존재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잔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아들은 잔디만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잔디를 발견하면 온몸을 들썩이며 꺄르르 웃었고,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잔디는 또 몇 걸음 슬쩍 물러났지만, 아이는 그런 잔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다가갔다. 어쩌면 짝사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가 아직 아이들을 조금 어려워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잔디를 향한 호기심과 애정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두 돌 가까이 되었을 무렵,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어린이집 하원길에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태양아, 한별아. 멍멍이 이름이 뭐야? 집에 멍멍이 가족 있다면서.”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도 조금 의아했는지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셨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림책 속 강아지도, 길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도 모두 ‘멍멍이’였지만 잔디는 멍멍이가 아니라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요즘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들이 잔디에게 다가가도 잔디가 예전처럼 황급히 몇 걸음씩 물러서지 않는다.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곁에 앉으면 잔디도 어느새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고,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잔디의 털을 쓰다듬으면 잠시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받아주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피하던 잔디였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들에게도 잔디는 더 이상 신기한 강아지가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면 만나고 저녁이면 함께 잠드는 너무나 익숙한 가족이 되었다.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결국 누구보다 용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잔디처럼, 두 아이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낯설고 두려운 순간들 앞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씩씩한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잔디를 그저 ‘멍멍이’라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잔디’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소중한 존재로 바라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시간에 우리 가족이 되었지만, 

이제는 같은 하루를 함께하는 세 아이.

강아지 하나, 아이 둘.

우리 집의 행복과 웃음은 그렇게, 어느새 세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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