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일구다
글.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오현석 참여관
1일 차: 법원에 문을 연 나의 작은 농장
2026년 5월 30일, 작은 농장을 시작했다. 품목은 다양하다. 옥수수 10그루, 가지 3그루, 토마토 4그루, 애플수박 3그루(?)를 심었다. 내가 원한 것은 토마토지만 주위 선호도를 반영한 결과가 그렇다. 과장님께 허락받은 위치는 테니스장 뒤쪽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어딘지도 모른 채 풀숲 사이를 뒤지다 예전에 누군가 농사지었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새 생명을 이식했다. 왠지 농사에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 계장님에게 포부를 이야기했더니 농사에 관한 팁도 알려주고 땅을 갈 수 있게 도구도 빌려주었다. “농사는 장비발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물 빠지는 골도 만들고 둔덕도 쌓고 지주대도 세우고 유튜브에서 본 대로 모종을 8자 매듭으로 단단히 묶어두었다.
농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농사 팁이나 우려 섞인 목소리, 응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먹고 싶은 과일을 재배해 달라는 요구사항이었다. 지금 시기에 맞는 작물에 대해서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추가된 작물이 애플수박, 옥수수, 가지이다. 그들과 같이 식재 한 작물을 바라보며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던 즐거움은 예상치 못했던 재미였다. 비록 그들에게서 관리는 제대로 하느냐, 물은 제때 주느냐 등 간섭을 받고 있지만 그들에게 풍성한 미래를 안겨주고 싶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마음은 곧 열매라도 딸 것처럼 흐뭇하다. 귀여운 것들, 잘 자라 주렴.
2일 차: 새싹을 지키기 위한 비바람과의 사투
심고 다음 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심은 직후에 오는 비는 작물에 좋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저녁 무렵부터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잘 버티고 있을까? 아직 여리디여린 풀 수준의 것들이 이 모진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을까. 불안함에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가보았더니 이미 물바다다. 지대가 낮다 보니 물은 이미 한가득이고 계속되는 비에 물은 계속 늘어만 갔다. 일단 급한 대로 삽을 들고 물고랑을 팠지만 여의찮았다. 아무리 봐도 물을 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양수기가 생각났다. 그런데 이 조그만 농사 짓자고 양수기는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삽으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퍼낸 물은 낮은 지대에 위치한 농장으로 다시 흘러들었다.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두 손으로 삽질하는 사이 옷은 이미 젖었고 신발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망연자실 하늘을 우러러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을 느꼈다. 태풍이 불 때 뉴스에서나 접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도 그런 모습일까?’라고 생각하는 사이 눈앞에서 옥수수 한 그루가 불어난 물에 쓰러졌다. 동시에 기대도 무너졌다.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둔덕을 쌓았지만 딱 내 수준이었다. 물을 우습게 봤다. 적당히 빠져나갈 줄 알았다. 찰랑거리는 물에 곧 잠길 것 같은 갓 심은 묘목을 속절없이 바라보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다시 시작해야지….
3일 차: 다시 한번 야심 차게
늦은 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 심란한 마음으로 농장으로 갔다. 익히 뉴스에서 봐왔던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오호통재라. 앗!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일단 물이 없어졌다. 물고랑이 없는데 물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어디로 갔지? 누가 펐나? 물은 흙으로 스며든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그리고 눈앞에서 쓰러진 옥수수 한 그루를 제외하면 다들 멀쩡했다. 자그마한 생명력이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자연이란 그런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자기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삽을 들었다. 장갑도 끼고 장화도 갖추어 신었다. 본격적으로 땅을 팠다. 지렁이들의 몸이 둘로 나뉘는 광경도 보고 이름 모를 애벌레도 깨우고 개미집도 다 부쉈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물고랑도 더 깊이 팠고 그 흙으로 둔덕도 더 높이 쌓았다. 이미 심은 식물들은 어쩔 수가 없어 그 주위로 성벽을 쌓아줬다. 이제는 비가 내려도 괜찮을 듯하다. 태풍이나 장마가 와도 괜찮겠지!
4일 차: 자꾸만 보고 싶은 이유
이제 4일 차. 온통 마음은 새 생명에 가 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가서 본다. 가서 하는 것이라고는 물을 주는 것 하고 풀 몇 포기 뽑아주는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옆에서 자주 보고 싶다. 한번 포기했던 생명이라서 그런지 미안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그렇다. 벌써 키가 조금은 큰 것 같고 새잎도 나려고 하는 것 같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볼펜으로 점 찍어 놓은 것 같은 크기의 토마토가 자리 잡은 것도 보인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들 간의 대화가 사라지면서 생긴 서먹한 자리를 반려동물이 메워준다는 이야기. 그러다 보니 ‘내가 관심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나를 만족시켜 주는 대상이 꼭 반려동물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반려식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식물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정도라면 나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사라고 하기에도 우습지만 요 며칠 했다고 별생각을 다 하는 것 같아 혼자서 웃었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없어져 버렸지만, 본격적인 밭은 정말 가기 싫었다. 더위, 벌레, 풀 등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많았고 버거웠다.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었다. 아버지가 40년 정도 가꾼 밭을 남에게 팔려고 했을 때도 무조건 찬성이었다.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내가 고생하는 것도 싫었다. 절대 밭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조그만 농장은 온전히 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결실을 얻지 않더라도. 관심을 기울이며 시들 때 같이 힘들어하고 파릇파릇할 때 같이 힘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이제는 그런 것을 즐거워할 나이가 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그런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벌써 해남지원 가족들하고 같이 ‘탱탱한 알록달록 무지갯빛 방울토마토’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얼마나 즐거울지 상상만 해도 신난다.
언제 자라나… 빨리 크면 좋겠다. 내일은 비료라도 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