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삶을 생각하는 시간. ‘법관의 서재’에 출연한 김동현 판사를 <법원사람들>이 만났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읽고 써 내려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작지만 단단한 용기를 이번 인터뷰에서 전한다.
글. 박성하 / 사진. 최다영
Q 먼저, 판사님의 여정을 짧게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인 김동현 판사입니다. 저는 지금 법정에서 직접 재판을 하지는 않고,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재판과 제도의 방향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2년, 로스쿨에 다니던 중 예기치 않은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판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변호사로 일하거나,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갖게 되면서 제 진로를 다시 돌아보게 됐고, 시각장애인 판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만의 방식으로 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Q 회보 <법원사람들> 인터뷰에 참여하게 된 계기
법원도서관에서 기획한 <법관의 서재>는 책을 중심으로 법관의 시선과 사유를 공유하는 영상 콘텐츠입니다. 저 역시 이 콘텐츠에 참여해 제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책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회보 인터뷰를 통해 <법관의 서재> 콘텐츠를 홍보하고, 제가 그동안 만난 책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다시 삶을 바라보게 된 이야기들을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최근 집필한 에세이를 통해 독서가 주는 작지만 확실한 위로도 함께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Q 평소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시는지, 또 책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점자책은 아직 제가 점자를 능숙하게 읽지 못해서 자주 보지는 않아요. 오디오북도 사람이 직접 읽어주는 음성은 속도를 조금 높이면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어서, 저는 스크린 리더를 통해 글자를 음성으로 듣는 방식을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만화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들에서 예전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그 즐거움과 깊이를 책에서 찾게 되었고, 책이 제 일상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훨씬 더 커졌습니다.
Q 에세이 집필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21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로 주변에서 “책을 써볼 생각은 없느냐”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막연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지만, 마침 가까운 지인이 본인이 집필한 책의 초안을 보여주었습니다. 글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으며 진심을 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에세이 집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 또한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도전하며 성취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고, 그 뜻을 담아 책 제목도 『뭐든 해 봐요』로 정하였습니다.
Q 글을 쓰는 데 있어 길잡이가 되어준 책
첫 에세이 집필이다 보니, 글쓰기 관련 책이나 다른 분들의 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그중 글쓰기 책으로는 강원국 작가님의 『강원국의 글쓰기』가 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세이로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가장 먼저 읽었고, 양희은 선생님의 『그러라 그래』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점은 문체가 매우 편안해서 ‘나도 이렇게 편하게 써도 되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에세이나 판결문을 작성하실 때, 특별한 방식이 있으신가요?
글을 쓸 때 특별한 방식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컴퓨터로 타이핑하며 원고를 작성합니다. 다만 다른 분들이 눈으로 글을 읽고 확인하는 반면, 저는 소리로 듣고 내용을 점검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오탈자나 문장의 어색한 부분을 찾을 때는 법원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작성한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보며 다듬는 과정을 거칩니다. 책을 읽는 방식도 다소 다릅니다. 종이책이나 전자책은 시각장애인에게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는 ‘국가 대체자료 공유 시스템’을 주로 이용합니다. 장애인 도서관에서 제작한 음성 기반 대체자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인데요, 그 안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청취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 방식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독서의 방식입니다.
“저에게 책은 세상과 이어지는 창입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설 속 이야기에 기쁨을 느끼며,
그렇게 책은 저와 세상을 잇는 소중한 소통의 창구가 됩니다.”
Q 후배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제가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 철학적 개념들을 강의 형식으로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한 번 읽어 보시고 생각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도서로 꼽는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들인데요, 스토리 전개가 매우 흥미로워 자주 읽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용의자 X의 헌신』이 있고, 약간의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 밖에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인 『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Q 끝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최근 출판업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짧고 빠른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되어,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깊이 있는 글을 천천히 읽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쁘고 빠른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책을 펼쳐보시면, 다양한 지식과 생각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께도 시간이 될 때면 긴 호흡으로 책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법관의 서재’ 영상은 법원도서관 유튜브 채널과 법원 TV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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