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로 영장 없이 체포됐다가 다른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이 허용될까?

최신판례

2018.05.10

[대법원 2015모3243]

▣ 사안의 내용 및 소송 경과

■ 사안의 내용

● 긴급조치 제9호(정식 명칭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8항은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음

● 피고인은 천안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의하여 긴급조치 제9호 제8항에 따라 1979. 7. 4.부터 1979. 7. 13.까지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고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반공법위반, 사기, 업무상횡령으로 기소되었음

● 피고인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하였는데, 항소심 진행 도중인 1979. 12. 8.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되었고, 이에 항소심은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부분에 대하여는 면소를 선고하고, 나머지 반공법위반, 사기, 업무상횡령 부분에 대하여만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며(이하 ‘재심대상판결), 그 후 항소심 판결은 피고인의 상고취하로 확정되었음

● 피고인이 사망한 후 피고인의 아들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함

■ 소송 경과

● 원심 : 원심은 이 사건 경찰관들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은 불법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위 경찰관들에게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어 책임이 조각되므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라고 보고, 위와 같은 경우 역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직무범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심대상판결 중 유죄 부분에 대하여 재심개시결정

● 검사의 재항고 : 검사는 이 사건 경찰관들의 행위는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따른 것일 뿐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므로 불법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항고

● 참고 : 원심은 재심대상판결 중 면소 부분에 대하여는 재심을 불허하였고, 재심청구인은 이 부분에 대하여 재항고를 제기하였으나, 면소 판결은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유죄의 확정판결’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재심을 허용할 수 없음(대법원 2014. 4. 25.자 2013재도29 결정 등 참조)

▣ 대법원의 판단

■ 사건의 쟁점

●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사유로서 제7호에서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를 규정하고 있음(이른바 ‘공무원의 직무범죄로 인한 재심’)

●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는 대표적인 직무범죄로서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하는 경우를 규정함

● 그런데 이 사건에서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한 것은 당시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허용하던 긴급조치 제9호에 따른 것임. 즉, 경찰관들은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시의 법령을 따랐을 뿐임. 위와 같은 경우에도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가 성립하거나 적어도 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등으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인정되는지 문제됨

■ 결정의 결과

● 검사 재항고 기각(원심의 결론 수긍, 재심 허용)

■ 판단의 근거

●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는 헌법상 영장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것임. 헌법 제12조 제3항의 영장주의는 강제처분의 남용으로부터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수단임

●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이 영장주의에 어긋나는 체포·구금을 하여 불법체포·감금의 직무범죄를 범하는 상황은 영장주의에 관한 합헌적 법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경우임

● 이와 달리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이 시행되고 있는 동안 수사기관이 그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하였다면 법체계상 그러한 행위를 곧바로 직무범죄로 평가하기는 어려움

●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국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결과는 수사기관이 직무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다르지 않음. 즉, 수사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체포·구금을 한 경우, 비록 그것이 형식상 존재하는 당시의 법령에 따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법령 자체가 원시적으로 위헌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의 확정판결에는 수사기관이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마찬가지의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임

● 만일 이러한 경우를 재심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이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국민을 체포·구금하였고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라 진행된 유죄의 확정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중대한 하자가 존재함에도 단지 위헌적인 법령이 존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하자를 바로잡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되어 부당함. 이는 위헌적인 법령을 이유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키더라도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재심제도의 이념에도 반함

● 한편, 이러한 수사기관의 행위에 관하여도 당시의 법령에 의하여 불법체포·감금죄가 성립하는 경우에만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헌적 법령으로 인하여 갖출 수 없게 된 요건을 요구하며 재심사유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 부당함

● 따라서 수사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경우에도 불법체포·감금의 직무범죄가 인정되는 경우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함

● 위와 같이 유추적용을 통하여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당한 국민에게 사법적 구제수단 중의 하나인 재심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합치적 해석이라 할 것임

●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그것이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무효이고, 그 중 제8항 역시 영장주의를 전면적으로 배제하여 법치국가원리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원천적으로 위헌·무효임(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피고인을 체포·구금한 경찰관들은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피고인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한 것이므로 재심대상판결 중 유죄 부분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함

▣ 결정의 의의

■ 종래 대법원은 위헌인 긴급조치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어 ‘긴급조치위반죄’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재심을 허용하였음(대법원 2013. 4. 18.자 2010모363 결정). 이는 처벌법규가 위헌으로 판명되었다면 재심을 허용하여야 한다는 취지임

■ 그런데 이 사건과 같이 위헌인 긴급조치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긴급조치위반죄가 아닌 다른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위 결정의 법리를 적용할 수 없음. 이 사안은 처벌법규가 위헌인 경우가 아니라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경우이기 때문임

■ 이에 관하여는 학계의 논의가 정리되어 있지 않고, 검찰도 일부 긴급조치위반죄 관련 사건에 대하여는 스스로 재심을 청구하면서도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재심사유가 인정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하급심 법원의 논리와 판단도 통일되어 있지 않음. 한편, 위와 같은 논란은 모두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의 성립 여부 또는 그 구성요건해당성에 집중한 것으로서 형사법적 해석론의 관점에 국한된 것임

■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 결정은 재심제도의 이념과 목적 및 헌법상 영장주의에 기초한 합헌적 법률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법리를 선언함으로써 재심을 허용하였음

■ 이 결정은 합헌적 법령을 위반하여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경우와 위헌적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경우는 헌법상 영장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차이가 없다고 판시하였음

■ 또한 이 결정은 영장 없는 체포·구금과 관련한 재심사유의 존부에 관하여 그 영장 없는 체포·구금의 근거가 위헌적 법령이라면 당시 수사기관에게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법리를 밝혔음

■ 나아가 이 결정은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당한 국민에게 직무범죄로 인한 재심사유를 유추적용하여 재심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헌법합치적 해석임을 명확히 하였음

■ 이 결정은 합헌적 법률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법리를 선언함으로써 재심사유로서의 직무범죄에 관한 기존의 해석상 논란을 해소하고 위헌인 긴급조치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결과에 대하여 재심의 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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