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미 기록연구관(법원도서관)
1945년 8월 15일 정오, 쇼와(昭和) 일왕(日王)이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는 라디오 방송을 했습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였고, 조선은 카이로 선언대로 일본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하여 매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라디오를 가진 조선인은 많지 않았고 일왕의 발표내용은 난해한 한자어를 섞어 쓴 문어체 일본어인 데다가 방송 잡음이 심하여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일에는 잘 몰랐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고 김용철 대법원장님도 비슷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처음엔 해방된 걸 몰랐습니다… 여름방학이 됐는데… 형님들 얼굴을 보고 김천에 가니까 다들 말은 못하는데, 공기가 이상해. 함부로 말했다간 큰일이 나니 말 못하지요. 성주로 가는 목탄버스 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그게 16일입니다. 내가 뭐, 라디오를 들었겠습니까, 라디오도 귀할 때니… 쑥덕쑥덕거려 들어보니 ‘일본이 항복했다.’ 그래. 그렇다고 정말 항복했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요. 잘못 말하면… 금방 잡혀가니까. 초전면 소재지에 내리니까 거기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어요. 얼마나 반갑습니까?… 세상 무서워서, 눈치를 많이 보고 살던 때지요. 그렇게 해방을 맞이했어요.”1)
일왕의 라디오 방송 원고(왼)/
미 해군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重光 葵) 그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공격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음(1945. 9. 2.)
미 해군 역사센터 소장 오픈 자료(오)
1) 법원도서관, <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6. 법관의 길 김용철>, 2024, 32~33쪽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 법조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대상 변호사시험이 매년 한 번씩 있었는데, 마침 2일 차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8월 14일 첫날 민법, 형법 시험은 정상적으로 치러졌습니다. 두 번째 날인 8월 15일 오전 상법 시험도 잘 치러졌는데 오후 경제학 시험부터 16일, 17일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시험 등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일왕의 항복으로 시험을 주관할 주체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당시 필기시험 응시자 200여 명 중 연락이 닿은 106명은 변호사 자격을 달라고 항의하였습니다. 그들이 교섭을 담당한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은 이법회 또는 의법회였습니다. 이법(以法)은 문자 그대로 법대로 하자는 의미였고, 의법(懿法)은 법을 기리고 존중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변호사시험 중단의 책임은 일본국 정부나 조선총독부나 시험위원회에 있는 것이고, 만일 끝까지 시행하였더라면 응시자 전원이 합격하였을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조건 불성취의 책임을 수험생 측에 전가한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므로, 응시자 전원에게 변호사시험 합격 증서를 교부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106명에게 변호사시험 합격증서를 교부하였고, 그들 중 일부는 1945년 사법관시보로 채용되어 실무수습을 마친 다음 판사와 검사로 임용되었으며, 또 일부는 1947년 3월 29일 자 조선변호사시험령에 의한 변호사시험 가운데 예비시험과 필기시험을 면제받고 구술시험만을 거쳐 변호사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2)
조선 변호사시험 합격증서(1945. 8. 17.)
법원도서관 소장
2) 법원행정처 편, <법원사>, 1995, 199쪽
1945년 9월 7일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는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하고 그 지역과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실시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른바 미군정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포고문입니다. 그리고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마지막 조선총독의 항복 조인식이 있었습니다.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 조선 주민에 포고함(1945. 9. 7.)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총독(1945. 9. 9.)_국사편찬위원회 소장 /
조선총독부 국기 게양대에서 내려지는 일장기(1945. 9. 9.)_서울역사편찬원 소장
미 군정청은 군정장관, 민정관, 7개국(局)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초대 군정장관은 아놀드(Archibald V. Arnold) 미 육군 소장, 법무국장은 우돌(Emery J. Woodall) 소령이었습니다. 1946년 3월 29일 법무국은 사법부(司法部)로 승격되었고, 1946년 6월 27일 최초의 한국인 사법부장으로 김병로가 취임하였습니다. 법원조직을 새로이 규정하기에 앞서 일본인 판검사를 면직하고 한국인 판검사 등을 임명하였습니다. 1945년 10월 11일 자 미군정 대법원을 구성하는 임명사령 제12호를 주목할 만합니다. 영문 문서의 ‘Supreme Court’를 국문 문서에서 ‘대법원’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재판소구성법에 명시된 최고법원은 ‘고등법원’이었습니다. 이것이 평리원, 대심원으로 변경되었는데 지금과 같이 ‘대법원’으로 처음 명명되었습니다. 이는 법원조직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 군정청 임명사령 제12호 판사ㆍ검사 임명 건(1945. 10. 11.)
3년간의 미군정 시기를 지나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여 업무의 인수인계가 이뤄졌습니다. 1948년 8월 16일 행정권 이양을 시작하는데 대법원은 분립하여 이양하기로 한 것3)으로 보입니다. 8월 21일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와 이인 법무부 장관이 사법사무 이양 임시조치에 조인하였고 23일 이양을 완료하여 24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4) 이어진 9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8월 24일 하지 중장이 제출된 보고서에 서명하지 않아 사법부는 여전히 군정의 사법부로서 대한민국의 사법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5) 9월 13일 대통령령 제3호로 ‘남조선 과도정부기구의 인수에 관한 건’이 제정되었습니다. 동령 제3조에 ‘대한민국 대법원은 과도정부 법원과 그 소속기관을 인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일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대법원장 회의실에서 사법부 미국인 고문이 입회한 가운데 미군정 대법원장 김용무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았고, 대법원장들의 퇴임식과 취임식이 이어서 거행되었다6)고 합니다. 우리 법원에서는 2015년부터 9월 13일을 ‘대한민국 법원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신, 구 대법원장 사무인계식 거행(조선일보, 1948. 9. 14.) /
1928년 서소문 옛 대법원 청사 신축 당시 회의실_일본 사이토 마코토(薺藤 實) 기념관 소장
경복궁 앞에 상징성도 겸비하여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해체되었습니다. 옛 대법원 청사는 1928년 신축된 삼재판소(고등법원, 경성복심법원, 경성지방재판소) 청사로, 대법원 청사를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하여 국민의 문화생활을 일조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1. 중앙정부종합청사로 사용했던 구 조선총독부 건물_국가기록원 소장
2. 해체되는 조선총독부 건물(1995. 7. 5.)_국가기록원 소장
3. 1928년 서소문 옛 대법원 청사 신축_일본 사이토 마코토 기념관 소장
3) 대법원 분립이양(경향신문, 1948. 8. 20.)
4) 사법부 행정이양 조인(동아일보, 1948. 8. 22.)
5) 사법부와 대법원 23일 인수완료(동아일보, 1948. 8. 25.)
6) 신, 구 대법원장 사무인계식 거행(조선일보, 1948.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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