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원사]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한글전용 판결서

현장 속으로

2025.05.02

고선미 기록연구관(법원도서관)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입니다. 또, 스승의 날입니다. 1958년 충청남도 강경여자중고등학교 청소년 적십자 단원(Red Cross Youth)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를 위문하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하여, 1965년부터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세종대왕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즉 훈민정음을 창제한 참된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5월, 이달의 법원사 코너에서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부터 오늘날 한글전용 판결서 작성을 자료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세종대왕은 명확한 목적을 갖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습니다. 그 뜻은 앞서 언급한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이나 훈민정음 언해본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달의 법원사

훈민정음 언해본(서강대학교 소장)

나랏〮말〯ᄊᆞ미〮中國듕귁〮에〮달아〮

文字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百姓ᄇᆡᆨ셩〮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 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爲윙〮ᄒᆞ〮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메〮

便安？ᅙᅡᆫ？〮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리고 세종실록 곳곳에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에 기반한 사법의 정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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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장헌대왕실록(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지금 법을 맡은 관리가 형을 적용할 때에 대개 중한 법을 적용하니, 내 심히 딱하게 여기노라. 죄가 경한 듯도 하고 중한 듯도 하여 의심스러워서, 실정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경우면 법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실정이 중한 편에 가까운 것이더라도 아무쪼록 법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세종 7년 7월 19일)

“무릇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그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세종 15년 3월 5일)

“사형을 받게 된 죄인의 말 같은 것도, 이두문자로 쓰면 글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간혹 원통하게 될 수 있다.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곧바로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모두 쉽게 알아서 억울함을 품는 자가 없을 것이다.”(세종 26년 2월 20일)

“수령들에게 알아듣도록 타일러 무릇 모든 옥송을 참혹하게 하거나 오래 지체시키지 말며, 공평한 마음으로 밝게 처단하여 내가 죄인에 대하여 신중하게 심의하는 뜻에 부응하게 하라.”(세종 27년 1월 18일)

“왕이 대간의 죄상을 손수 언문으로 기록해서 의정부 승정원에 보내 치죄를 명하였다.”(세종 28년 10월)

지방으로 떠나는 관리를 만나 ‘백성은 법을 알지 못하고 억울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엄하게만 다스리지 말고 신중하게 심의하라.’하고, 문자를 만들고 스스로 작성하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백성이 훈민정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지(所志)1)를 작성하는 것까지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언문(諺文)2)으로 작성한 청원서는 우리말을 글로 옮길 수 있고 그 글을 읽으면 말소리로 곧장 이해할 수 있는 구어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이를 관청에서 접수하는 일이 관례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 개인 및 민간단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글 청원서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의 사례와 교차하여 검토한 연구가 있습니다.3) 이에 따르면, 17세기 광해군 대에 이르러서야 관리들이 한글 청원서를 거리낌 없이 접수하고 처리하는 것이 확인됩니다.

1) 조선의 청원서를 통칭하는 용어. 한글 청원서는 주로 사정을 하소연한다는 의미의 원정(原情)으로 불리기도 함.

2) 우리의 말과 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한자와 대비하여 백성이 일상적으로 쓰는 글이라는 뜻으로 구분하여 불렸던 것으로 보임.

3) 김봉좌, 「조선 후기 한글 청원서의 작성 요건과 절차」, 『한국문화』 101, 2023. 247-277.

훈민정음이 나랏말로 즉 국어(國語)로 자리 잡은 것은 1894년 11월 21일 칙령 제1호로 반포된 ‘공문식’ 제14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문을 기본으로 한문 번역을 첨부하거나 국한문을 섞어서 문서를 작성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이는 판결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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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국한문을 혼용하여 작성한 한성재판소 판결서, 1895. 9. 1.(법원기록보존소 소장)

(오)‘공문식’ 반포문과 제14조(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술국치 후 일제강점기에 사법권을 빼앗겨 조선총독부 재판소에서 일본어로 재판을 받는 등 암울한 시기가 있었지만, 광복 이후 한복을 입은 한국인 판사가 우리말로 재판을 하였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 서소문 주변은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과 같은, 가로 띄어쓰기로 작성된 판결서는 언제부터 볼 수 있었을까요? 1960년대 초입니다. 세로쓰기나 국한문 혼용은 타자기에 적합하지 않고 신속한 사건 처리에도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조진만 대법원장은 1961년 12월 29일 ‘법원공문서규칙’을 공포하여 1962년 1월 1일부터 법원의 모든 문서를 한글로 간명하게 기술하고 정자로 가로 띄어쓰기를 해서 작성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규정화하고 전면 시행하기 전 1961년에 작성된 판결서가 있습니다. 이는 기존 세로쓰기 서식으로 인쇄된 용지에 가로쓰기를 한 판결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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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세로 작성 서식에 한글전용 가로 띄어쓰기로 작성된 판결서(1961. 9. 21. 선고)

② 한글 가로쓰기 대법원 민사판결서

③ 조진만 대법원장이 한글로 기초한 서소문 옛 청사 머릿돌

④ 한복을 입고 처음 우리말을 사용한 법정 소개(조선일보, 1971. 9. 6.)

판결서는 물론 등기부와 호적부를 한글전용으로 작성하도록, 1969년 11월 19일 서소문 옛 대법원 청사에서 한글전용 전국 등기, 호적과장 강습회를 개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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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 전국 등기, 호적과장 강습회(서소문 옛 대법원 청사, 1969. 11. 19.)

그러나 일본어로 작성된 등기부나 호적부를 일거에 정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용철 대법원장이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경에 일본말 호적을 우리말로 정리하면서 전국적으로 일본말 호적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작년에 발간한 『대한민국 법원 구술총서 6. 법관의 길 김용철』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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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표창장(1974. 2. 28.)

일반인에게 법은 멀고 법원은 무섭습니다. 일상사를 일반화하고 개념화하여 법을 만들게 되니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판결서는 당연히 어려울 거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을 안정화하는 사회의 안전핀인 법을 적용한 판결서는 시민교육을 받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한 세종대왕의 법을 알리고 백성이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 신중하게 심리하는 관리를 두었던 것과 맥을 같이하여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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